부재는 존재를 증명하고야 만다는 사실
나에게는 두 살 터울의 남동생이 있다. 올해로 24살이 된 그는, 작년 12월에 전역을 했고 지금은 언제 군인이었냐는 듯 대학생 신분의 민간인으로서 활발한 사회생활을 하고 있다.
남동생과 나는 어릴 적부터 지금까지 참 많이 다른 사람이다. 성격도, 가치관도, 좋아하는 것에 있어서도 교집합보다는 교집합을 제외한 합집합을 보이는 관계성이다. 즉, 비슷한 구석이 거의 없다는 점이자 다른 말로 하자면 그만큼 싸울 일도 많았다는 거다. 동생이 입대를 하기 불과 1주일 전에도 극적으로 화해를 했을 만큼 심하게 싸우기도 했다. 그런 동생이 입대를 하고 난 직후에서부터 나에게는 조금씩 변화가 생겼다. 그리고 그 변화는 아주, 지극히, 정말 사소한 일상에 기반을 둔 사건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인생이란 것이 늘 그러하듯 말이다.
사건의 시발점은 여느 때와 같이 학교에서 돌아와 나홀로 '불금'의 허기를 달래려고 하던 재작년의 어느 금요일이었다. 공교롭게도 집에는 나의 안주가 되어줄 닭강정 박스가 하나 놓여 있었고 이것을 먹으며 아주 만족스럽고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는 중이었다. 평소 누구보다 닭강정을 좋아하던 남동생의 생각도 한번 해주면서.
그렇게 닭강정을 다 먹어갈 때 즈음이었나? 남동생으로부터 영상통화가 걸려왔다. 당시 의경으로 군 복무를 하던 남동생이 자기 전의 안부를 알려주기 위해 전화를 걸어온 것이다.
평소 나와 여동생보다도 세심한 성격인 그는, 입대 후에도 비슷한 시간대만 되면 매일 빼놓지 않고 집으로 전화를 주었다. 정말 한번도 빠짐없이 말이다. 엄마는 전화기 너머 동생에게 조금 전까지 내가 먹었던 닭강정을 보여줬고 그는 굉장히 먹고 싶어 하며 외출을 나오면 먹겠다는 다짐을 했다. 그것을 끝으로 우리 가족은 평소와 같이 ‘오늘도 파이팅!’을 외쳐주고는 전화를 마쳤다.
나의 눈은 이내 아까 그 닭강정 박스로 향했으며 초반에 아주 잠시 스쳐 갔던 동생의 모습은 너무나 구체적으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집에 있을 때면 동생은 늘어진 반소매에 수면 바지를 입고서는 소파 한 가운데에 앉아 자리를 차지하곤 했다. 그가 좋아하던 닭강정을 가져다 놓고 먹으면서 말이다. 혼자서 맛있는 부위들을 제일 먼저, 많이 먹어버리고는 한 발짝 늦는 나를 화나게 하는 동생이었다. 거기다가 웃기지도 않은 개그 프로그램 하나를 틀어놓고는 뭐가 그리도 웃긴 지 볼 때마다 크게 웃으며 괜히 나를 성가시게 하던 동생이었다.
그런 동생이 그냥 보고 싶었다. 자주 닭강정을 먹으며 박장대소하던 동생의 웃음소리가 듣고 싶었고, 화가 난 나를 놀리던 동생의 방정맞은 표정이 보고 싶었다. 그런 동생을 한심한 듯 쳐다보며 온갖 잔소리를 하고 날개뼈를, 팔을 툭툭 때리고 싶었다. 정말이지 별거 없없었던, 심지어는 만나기만 하면 투닥거렸던 동생과의 기억이 그가 부재하는 나의 시공간에서 생각지도 못했던 ‘특별함’으로 다가왔다.
뭐랄까, 그리움에 실체가 있다면 누군가 그 위에 휘발유를 끼얹고 불을 붙인 것 마냥 내 안에 움츠리고 있었던 감정의 불씨가 바깥을 향해 발화되는 느낌이었다. 그간 동생의 부재에 대해서 생각보다 아무렇지 않다고 생각해왔던 나는 사실 괜찮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우리가 일상에서 '이미 인지하고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 어떤 부재는 때때로 전혀 예상치 못한 타이밍에, 특정 매개체를 통해 대상의 존재를 증명해내고 만다. 마음만 먹으면 우리의 내부를 완전히 파괴시킬 수 있을 만큼 강하고 잔인하게 말이다. 그러나 줄곧 목격하는 삶의 아이러니함에 따르자면 우리는 이러한 메커니즘을 통해서야만 비로소 대상의 소중함을 깨달을 수 있다.
동생이 군대에 가있던 어느 날 밤의 내가 그랬듯 말이다. 아무튼 생각도 못했던 상황과 감정에 어쩔 줄을 몰랐던 나는 결국 밤새 눈물을 흘리며 그리움을 걷어내야만 했다.
사람 쉽게 변하지 않는다고 전역 이후 남동생을 너무 많이 봐 온 탓인지 가끔씩 그의 군 복무 시절 깨달았던 소중함들을 간과하고는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노력하고 있다. 내가 23년 동안 제대로 해주지 못한 '다정'한 누나의 역할을 앞으로는 조금 더 열심히 수행하기 위해서 말이다. 그간 떨어져 있던 시간들이 그리움의 층위가 되어 쌓여 온 만큼 동생에 대한 나의 이해와 애정의 밀도는 점점 더 커져가는 듯하다.
한때는 한없이 철없고 어리게만 보였지만 이제는 완연한 청년이 되어가는 동생을 옆에서 지켜보고 있자면 엄마도 아닌 내가 괜히 뭉클해지기도 하고 뿌듯하다. 과거에나 지금이나 여전히 가족을 우선으로 챙기는 동생을 보며 나 또한 좋은 사람이자 누나이자 언니가 되도록 노력할 것이다. 또한, 동생의 부재를 통해 알게 된 ‘일상’이 갖는 가치와 행복에 대해서 조금 더 신경 쓰고 살필 줄 아는 사람으로 살아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