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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자주 울게 된 건, 모두 유년기 탓

잃어버린 눈물들을 찾았습니다.


나는 눈물이 많다. 남들이 생각할 때 '이런 상황에서 운다고?' 싶은 상황에도 이 놈의 눈치 없는 눈물은 어떻게든 흘러내리려 안간힘을 쓴다. 그러다 어느샌가 두 뺨이 축축해진다. 문제는 나 같은 사람(상황 봐가면서 울지 못하는 사람)일지라도 일종의 눈물의 단계가 있다는 거다.


1단계는 누구나 쉽게 감정 이입하며 보고 들을 수 있는 슬픈 이야기, 대표적으로 가족 및 생사와 관련하여 우는 것이다. 이 경우에는 오히려 울지 못하는 사람이 도리어 눈총을 받기 쉽다. 가끔 가다가 듣는 순탄치 않았던 내용이 8 할인 부모님 세대의 '라떼는 말이야' 에피소드를 들으며 흘리는 눈물도 이에 속한다.


2단계는 화가 나거나 억울할 때 우는 것이다. 나를 화나게 하고 억울하게 한 사실과 사람에 대해 논리적으로 묻고, 따져도 그 일을 해결하기 어려울 판에 아무런 말도 못 한 채 눈물을 뚝뚝 흘리며 울고 있으니 이 얼마나 몸과 마음이 따로 놀며 답답해 죽을 지경인가. 속으로는 분노가 치밀어 오르고 억울함이 턱 아니 귀 밑까지 가득해 증발하기 일보 직전인데도 눈물만이 앞을 가려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설상가상으로 콧물까지 동시다발적으로 흐르는 날이면, 내 앞에 있는 사람들이 나의 가족이라는 사실이 세상 고맙고 다행으로 느껴지는 것이다.


대망의 3단계는 울지 않아야 하는 순간에 우는 것이다. 울지 않아야 하는 순간이라 하면, 다시 말해 웃을 필요가 있는 상황이다. (흔히 슬플 때 웃는 사람이 일류라고들 말하는데, 이걸 뒤집어 보자면 나는 행복할 때 웃지 않고 울 줄 아는 사람이므로 일류가 될 수 있는 건가? )예를 들자면 결혼식이 그러하다. 신부가 아버지의 손을 잡고 남편에게 가는 그 순간이 너무나도 슬픈 거다. 특히 신부가 막 신랑에게 가닿았을 무렵, 나는 신부로부터 물리적으로 멀어진 아버지와 그 장면을 가장 가까이서 보는 어머니에 감정 이입하여 결국에 눈물을 터뜨리고는 했다. 함께 간 나의 가족들은 그런 내게 조용히 준비해둔 티슈를 건네기 바빴다.


같은 맥락에서 '돌잔치'도 그렇다. 결혼식과 마찬가지로 우는 타이밍은 정해져 있다. 어느덧 주변의 불이 다 꺼지고 아이의 지난 모습으로 가득한 사진들이 가득한 영상들, 그리고 그 영상에 눈을 떼질 못하는 부모님의 모습을 동시에 봤을 때다. 아직 출산은커녕 결혼도 하지 않은 나는, 마치 내가 그 아이의 보호자라도 된 것처럼 그 아이와 희로애락을 함께 했던 것처럼 가슴속 깊이 뭉클함을 느끼고선 혼자서 눈물을 훔치곤 했다.


평소 자타공인 공감능력의 왕으로서 스스로를 잘 아는 나는 이런 내 모습이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다. 나의 경우, 사는 게 곧 공감하는 것이고 공감하는 게 곧 사는 것이나(?) 다름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건 뭐 바보도 아니고, 아니 바보일지라도 이렇게까지 단계를 왔다 갔다 하며 울지는 않을 거다.

 


그래서 한 동안은 이리도 자주 우는 까닭에 관해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이 있다. 그러다 우연히 책 하나를 보게 됐는데, 작가는 말하길 성인이 되어서 유난히 크게 드러나는 '나'의 모습들은 사실 유년시절 내가 경험했던 것들에 기초하는 경우가 크다고 했다. 그러니까 어렸을 때 어떤 것을 보고, 듣고 했느냐에 따른 결과가 지금의 '나'라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을 그는 '잃어버린 것들은 모두 유년에 가 산다'라고 했다. 그리고 이 책을 읽으며, 불현듯 나의 어린 시절 기억이 강. 력. 하. 게 떠올랐다. 그 단서가 될 만한 유년시절의 한 기억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건 바로, 조금 과장해서 말하자면 우는 것을 병적으로 싫어했던 아빠였다.


아빠는 나와는 다르게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강인하고 강인하며 또 강인한 사람이다. 그러한 까닭에 무엇보다 우는 것을 가장 싫어했다. 여기에는 아마 '남자는 태어나서 세 번 울어야 한다'라는, 한국 가부장제의 틀에 박힌 고정적인 멘트가 한몫했을지도 모르지만 아마 아빠 스스로가 그토록 강인하게 살아온 사람이었고 그런 사람이었으니, 아빠에게 '눈물'이라는 건 더더욱 허용이 안 되는 것이었을 거다.


아무튼 덕분에(?) 어릴 적부터 줄곧 가장 많이 들으면서 컸던 말이 '울지 마라'라는 소리였다. 따라서 내가 아무리 어렸건, 마음이 약했건, 응당 울어야 했던 일이 있었건 아빠 앞에서 우는 모습은 보이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강해질 수밖에 없었다. 사실 유년기 때만큼 자신의 감정들을 온전히 드러내며 이랬다, 저랬다, 요랬다가 저랬다가 할 수 있는 나이가 어디 있겠는가? 백 번을 울더라도 그때 다 울고 끝내 버렸어야 할 나의 눈물들이, 지금에 와서 그들의 옥죄었던 답답함과 억울함을 보란 듯이 표출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생각해 보면 눈물이 이렇게까지 많아진 건, 청소년기가 다 지난 후의 어느 순간부터였던 것 같다.


어찌하다 보니 틈만 나면 우는 사람의 이야기에서 유년 시절의 이야기까지 이어졌는데 그러니까 결론은, 그냥 그랬다는 거다. 지금의 내가 이렇게 자주 우는 것의 이유가, 어느 책에서 말했던 것처럼 정말 유년시절에 아무것도 모르고 억압되었던 눈물샘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고 여느 사람들처럼 두드러지는 내 '성향' 중 하나일지도 모르는 거다.


다만 멋 모르고 감정적으로 자유로울 수 있었을 때 슬펐으면 슬펐던 대로, 아팠으면 아팠던 대로 나아가 억울했으면 억울했던 대로 조금 더 쉽게 울 수 있었다면 지금의 나는 눈물을 덜 흘리는 사람이 되었을까? 싶은 생각에, 유년기까지 거슬러 내 눈물의 연대기를 추적하고자 노력해봤다는 것에 관한 글이다. 오늘 이 시간이 지나 마주하는 어떤 일들에 지금껏 울어 왔던 만큼 자주 울겠지만 그럼에도 그냥 우는 것보다는 내 행동에 대한 나름의 성찰 갖고 우는 것이 더 낫겠다는 생각에서다.



ps. 여기서 언급된 그 '책'은 박연준 시인의 저서인 <소란>입니다. 제가 무척 아끼고 좋아하는 에세이집이에요. 조만간 독서후기로 올릴 테지만, 꼭 읽어 보시길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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