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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괜찮으니까, 쫄지 말고 그냥 건너" 라고 말했다

자꾸만 숨고 싶어 질 때면 생각하는 그 말


때는 상수로 막 넘어가려고 하는 홍대의 경계선 그러니까 홍대에서 길을 찾는 사람에게는 하나의 이정표 같은 '상상마당'을 지나, 홍대보다는 상수에 더 가까워지려는 무렵이었다. 상수에 완전히 다다르기 위해서는 한 차례의 횡단보도를 건너야만 했고 나와 그는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하며 초록불로 바뀌기만을 기다렸다.


그곳은 서울이라고 불리는 곳들 중에서도 사람 많기로 유명한 동네이기에 질주하는 차들을 보는 것쯤은 당연한 일이었다. 적어도 서울이라는 곳이 익숙한 사람들에게만큼은 말이다. 즉, 나에게는 당연한 일이 아니었다. 아무리 많은 차가 달린다고 해도 대개 2차선 도로가 전부인 곳에 사는 나로서는 한치의 양보도 없이 여기서 달려오고, 저기서 달려오는 차들이 마냥 무섭게 느껴질 뿐이다. 더군다나 작은 소리에도 깜짝 깜작 놀라고 마는 새 심장을 지닌 사람이기에, 서울의 횡단보도에 서기만 하면 늘 반쯤 정신이 나가 있곤 했다.



그날도 그랬다. 겨우 초록불로 바뀌어 건너고 있는데도 도로 위를 빼곡히 매운 채 서있는 차들이 무서웠다. 마치 '지금은 초록불이라 어쩔 수 없이 기다려주지만, 빨간불로 바뀌려고 하기만 하면 결코 봐주지 않을 거야'라는 기세 등등한 태도로 모든 차들이 우리를, 나를 예의 주시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달까. 그러다 보니 아무래도 나보다는 키가 크고 덩치도 큰 그의 측면에 가까이 서서 반쯤은 숨어 건너고 있었다. 그런 나를 보며, 그는 한마디 아니 두 마디를 뱉었다.


" 야, 쫄지 마. 왜 쫄고 그러냐? 만에 하나 빨간불이어도, 횡단보도에서는 보행자가 우선이야. 심지어 지금은 초록불인데 뭐가 무섭다고, 괜찮으니까 쫄지 말고 그냥 건너"


그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자니 이게 위로하려는 말인지 아님 걱정하는 말인지 그것도 아니면 다그치는 말인지 도무지 모르겠는 거였다. 다만 '아니, 차가 이렇게나 많은데 쫄 수도 있는 거지, 그걸로 뭐라고 하네'라는 생각을 잠시 했다. 물론 입 밖으로는 내뱉지 않았다. 어찌 됐건 그 상황의 나는 밑도 끝도 없이 두려워했던 게 맞으니까. 언제나 나보다는 맞는 소리를 많이 하는 그였기에 반박할 수 없었던 것도 있다.



그 이후로도, 여전히 밖에만 나갔다 하면 내 마음과는 달리 세상 자유롭고 시끌벅적한 도로로 위의 차들을 마주한다. 그럴 때면 홍대와 상수 사이의 건널목에서 그가 했던 두 마디를 생각한다. 아니 생각한다기보다 생각난다는 게 더 맞을 것 같다. '아, 맞다. 지금은 초록불이고, 나는 그저 내가 가야 하는 길이 있는데 괜히 쫄 필요가 없지!'  


그런데 이상한 건 그 말이, 도로 위를 건널 때에만 생각나는 게 아니라는 거다. 사실은 이따금씩 도로 위 차들에 둘러싸여 이도 저도 못하는 듯한 답답함과 실체 없는 두려움이 밀려올 때마다 생각한다. 그러니까 내가 가야 할 곳은 분명 정해져 있는데 그걸 알면서도 자꾸만 옆으로 빗겨나가려고 할 때,  뒤로 숨고만 싶을 때면 말이다.


신기하게도 그의 말을 되새기면 되새길수록 내 안의 켜진 초록불의 시간은 더 늘어나는 것 같았고, 이에 따라 다시금 나만의 속도와 여유를 찾을 수 있게 되었다. 굳이 일어나지도 않을 '상상'에 가까운 생각들을 하며 쓸데없이 겁먹지 않아도, 아무 일도 생기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함께 되뇌이면서 말이다.


당시만 해도 한껏 움츠린 나를 위로는커녕 질책하는 거냐며 온갖 서운한 목소리로 툴툴대고 싶었는데 이렇게 돌아보니, 정말 나를 잘 아는 사람이구나 싶었다. 내가 두려워했던 건 홍대와 상수 사이의 횡단보도를 건너는 일도, 그 주변의 차들을 경계하는 일도 아니었을지 모른다. 내가 두려워했던 건 사실 없을지도 모르겠다. 정말 두려워서 두렵다고 하기보다는 두렵기 위해서 두려움을 선택해왔던 것은 아니었을까?



사건도, 실체도 없는 일에 관하여 지레 상상하며 나타나지도 않은 위협을 신경 쓰느냐 줄곧 쫄아 있었던 나를 생각한다. 생각해보니 그날 그가 내게 했던 말은, 마치 횡단보도를 건너며 두려워하는 내가 아니라 살면서 자주 기가 죽고 그래서 자주 도망갈 궁리를 하던 나를 두고 했던 소리나 다름 없었다. 물론 지극히 개인적인 내 생각이다. 정말 그랬을지도 모르고, 그게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다만 중요한 건, 그때 그의 말이 여전히 내게 유효하다는 거다. 정신없는 횡단보도를 건너는 나든, 불확실한 미래를 걱정하는 나든, 언제 어디서 갈피를 못 잡고 정신을 반쯤 놓아버릴지언정 다시 돌아오게 하는 그 말을 내가 아직 기억한다는 거다. 그리고 이 말은, 벌써 몇 개월이 흐른 지금에도 그가 여전히 내게 중요한 사람이라는 것이겠지.



사진은, 본문과는 관계없는 이태원 부근의 도로. 하늘이랑 가까워 보이는 듯한 구도가 마음에 들어서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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