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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인사는 하고 '삽시다'

당근마켓 때문에 불편해진 나, 비정상인가요?  


"당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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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근!"

 

여기저기서 울려 퍼지는 짧은 외마디의 알림. 내가 토끼도 아닌 것이, 이렇게 당근 소리를 자주 듣는 건 요즘 핫하다는 지역 중고거래, "당근마켓"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알림이 몇 번씩 울린다는 건, 아마도 팔려고 내놓은 물건들이 많다는 사실이 되겠다. 줄곧 맥시멀리스트의 삶을 유지해온 나로서  가지고 있던 물건을 남들에게 내보인다는 것 자체가 어쩌면 큰 용기라고 할 수 있다.



판매내역의 후보가 되는 순간, 사실 반은 내 물건이 아닌 것이 되어버리니 말이다. '이 물건에도 과연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줄까?' 싶은 것에 의도치 않은 관심과 쪽지들을 받을 때면, 마치 아르바이트나 회사 서류 전형에 합격했다는 문자를 받을 때처럼 막 가슴 벅차오르곤 한다.

 

당근마켓을 시작하고 한 3주 되었을 때까지만 해도 그랬다. 항상 반가울 것만 같았던 당근마켓 알림이 요즘에는 어쩐지 달갑지 않은 경우가 더 많아졌기 때문이다. 그 이유를 생각해보니 요란 법석한 알림의 소음 때문도, 당근마켓에 관한 권태 때문도 아닌 '사람'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내가 내놓은 물건을 구매하려고 하는 사람들 말이다.

 


근 두 달 동안 당근마켓을 하다 보니 내게 쪽지를 보내오는 사람들의 유형과 패턴이 대강 보이기 시작했다. 같은 물건을 사려고 해도 제각기 다른 방식의 첫 문장으로 시작하는데 그럴 때마다 '세상 참 다양한 사람들이 있구나' 싶은 생각을 한다. 그리고 그들은 크게 두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인사로 시작하거나 아님 그렇지 않거나.


전자의 쪽지는 대개 정중한 "안녕하세요~ "라는 말로 시작되기도 하며, "늦은 시간대에 연락해서 죄송합니다만~"으로 시작되기도 하며 "~물건에 대해서 궁금해서 문의드립니다"라고 시작하기도 한다. 반면 후자의 쪽지는 시작되는 말이 없달까. 바로 본론에 들어선다. "택포 해주세요" 혹은 "이거 살 건데, 내일 가지러 갈게요" 혹은 "택배로 얼마, 얼마에 해주세요" 이런 식이다. 뭐랄까, 밑도 끝도 없이 돌진해오는 느낌이랄까? 어떤 느낌이었냐면, 마치 오늘 처음 만나 가까스로 말을 튼 사람이 내게 친한 척을 하며 아무렇지 않게 밥 한번 사주라는 듯한 느낌이었다.

 

다른 사람에게는 어떨지 모르겠다. 지극히 '나'의 입장에서는 썩 유쾌하지 않았다라기보다, 그냥 불쾌했다. 나는 K-유교걸에 가까운 사람으로서 상당 부분 '기본'적이라 하는 것을 지키려 하고, 따라서 중요하게 생각한다. 때문에 당근마켓을 하건, 온라인에서 사람과 대화를 하건, 아니면 DM이나 메일을 주고받건 간에 문의받는 사람에 대한 문의 하는 사람의 예의는 당연히 '첫인사'라고 생각했고 지금도 변함없다. 정보가 필요한 사람은 결국 문의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살면서 늘 유쾌한 것보다는 불편하다고 느끼는 일에 귀 기울이는 일이 많았던 나는 혹시 또 나만 예민한 사람이 된 건가 싶어 주변 사람들에게도 물어봤다. "아니, 인사도 없이 이렇게 물어보는 쪽지에 불편한 건, 내가 꼰대라서 그러는 거야?, 이에 그들은 꼰대까지는 아니고 단지 예의를 중요하게 생각하다 보니 그럴 수도 있겠다는 말을 했다.


흔히 '인사'라는 건, 좋은 첫인상을 남기고 싶을 때뿐만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에 있어 소통의 시작을 알리는 시발점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한다. 그게 눈인사든 아니면 가벼운 목례든, 90도 인사든 방식은 상관없지만 인사가 있는가, 없는가에 따라 많은 것이 결정된다고 본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경험으로 봤을 때도 인사부터 잘 챙길 줄 아는 사람이 끝까지 좋은 인상으로 남았던 기억이 많다. 그러한 까닭에 당근마켓을 하면서도 인사 먼저 건넬 줄 아는 사람들에게 더 친절해지려 하는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왜, 자신이 대접받고 싶은 대로 상대방을 대접하라는 말이 있다. 당근마켓을 하는 요즘 자주 느끼는 건데 이 말은 참 오래 두고 볼 말이다라는 생각을 한다. 이건 비단 당근마켓에서의 문제가 아니다. 작게는 일상에서, 크게는 사회생활에서 만나게 되는 '누군가'에게 던져지는 '나'의 첫 문장은 보통 어떻게 시작해왔는지를 돌아볼 필요도 있는 것 같다.



쓰다 보니 어쩐지 '꼰대'라는 용어가 나와 그리 멀지 않은 세상의 것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당근마켓에서조차도 인사를 해야 하는 게 맞는 거 아니냐며 남들은 '쿨 거래'를 외칠 때 혼자 '예의'를 외치고 있는 나의 모습을 보면서 말이다. 동시에 과연 '꼰대다운 꼰대'에는 명확하고 구체적인 기준이 있는 것일까?라는 생각마저 하게 되었다.


사회가 아무리 많이 변했다고 해도, '그럼에도' 지켜져야 할 필요성이 있는 것들이 있다. 이런 나를 두고 예민하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고, 충분히 그럴 수도 있겠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세상에 절대적으로 존재하는 것은 없다고 생각하므로, 이제는 크게 상관없다고 생각한다. '나'가 불편하면 불편한 것이고, 예민하게 받아들여진다면 예민한 것이니 말이다.


그러니까 결론은 당근마켓에서 물건을 파는 것도, 사는 것도 모두 좋지만 이왕 쿨거래 하자는 거, 인사 정도는 하고 사자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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