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영 소설, '대도시의 사랑법' 을 읽고서
/ Jung's Saying
다양한 모양과 질감의 사랑이 공존하는 대도시
그 속에서 주저앉기와 일어서기를 반복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 방식대로 살아가고
사랑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세상에는 여러 가지의 추상적인 단어가 있다. 그중에 제일은 단언컨대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가장 추상적이기에 쉽게 설명할 수도, 증명할 수도, 정의할 수도 없는 것. 그 불확실성을 게이인, 주인공 ‘영’과 그를 둘러싼 인물들을 통해 솔직하고, 발랄하게 드러낸 책이다. 특히 장마다 다양한 ‘대도시’의 모습이 공간적 배경으로 활용되는데, 이를 통해 불특정하고 가변적인 사랑의 실체를 자세히 묘사하고 있다. 사랑 이야기가 8할이기는 하지만, 가족과 우정에 관한 에피소드들도 함께 등장하며 모두 '영'에게 중요한 4인의 인물들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너무나 다른, 이들과의 관계성만큼이나 펼쳐지는 사건들 또한 스펙타클하다는 게 관전 포인트라고 할 수 있다,
그 첫 번째는 신실한 기독교인으로서 암 투병 중인 엄마다. 그녀는 종교적인 이유로 인해 '영' 이 자라오는 매 순간순간 그의 동성애를 부정했다. 사실 그녀는 아들의 정체성에 대해서는, 그가 커밍아웃을 하기 전부터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조금이라도 이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려 할 때면 할 때면 늘 피하기 바빴던 그녀다. 그러다 보니 '영'은, 엄마에 대한 애정과 동시에 증오를 키워왔고, 암 투병을 과정에서 부쩍 많아진 그녀의 히스테리를 경험하며 어느새 애정보다 증오가 더 커진 모습들을 비치곤 했다.
그 두 번째는 20대 때 한 철학 강좌에서 만나 끝까지 운명이라고 믿을 뻔했던, 한 운동권 출신의 연상 남자다. 모든 면에서 '라떼는 말이야'가 등판하셨더라지..그럼에도 언제까지고 첫사랑일 줄 알았지만 그 타이틀은, 두 번째의 운명적 만남을 가정하고 나타난 연하남, '규호'로 이어졌다. 읽다 보면 누구나 느낄 수 있는 내용인데 영에게 찐 사랑은 규호였다. 때로는 함께 살고, 놀고, 여행도 가며 세상 행복한 시간을 보내다가 또 때로는 싸우고, 울고, 화내며 세상 힘들고 슬픈 시간을 보내기도 했던 이들. 모든 순간들이 극과 극을 달릴 수밖에 없었던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서로를 너무 좋아하고 사랑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영'의 첫 동거 메이트이자 가장 친한 여자친구인 '재희'. 어떻게 보면 규호만큼이나 중요한 캐릭터이면서 '영'만큼이나 입체적인 인물이라고 생각한다.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주로 '요구'되고, '소비' 되었던 여성 캐릭터와는 다르게 굉장히 털털하며 종잡을 수가 없는, 거칠함이 매력인 여캐다.
동시에 이러한 캐릭터의 여성일지라도 오늘날, 여전히 존재하는 성차별과 위험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을 책에서는 보다 구체적이고 섬세한 언어들로 드러내고 있다. 이를테면 스토커, 육체적인 경험, 임신, 출산의 요소들을 중심으로, '여성'에 관한 성희롱과 모성애 강요 등에 의한 것들이다. 그럴 때면 천하의 재희도 당혹스러움을 내비쳤지만, 언제나 자신과 '영'의 도움으로 잘 헤쳐나가곤 했다.
이 소설은 보이는 것만큼 그렇게만 왁자지껄하고 가벼운 내용의 로맨스 소설은 아니다. 아무리 개방적인 사회가 되었다고 해도 동성애에 관한 부정적인 인식과 편견들은 여전한데 그러한 시선들을 이 책에서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개인적으로 사랑이라는 건 무엇보다 당사자들이 행복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하고, 또 그게 맞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현실은 현실이고, 그 현실을 가장 잘 드러내는 게 아이러니하게도 소설인 탓에 읽으면서도 안타까운 생각들이 종종 들고는 했다. 나아가 동성애자로 살아가는 '영' 뿐만 아니라 이성애자 여자로 살아가는 '재희'의 조화와 친목을 통해, 이 사회에서 '소수자'로 불리는 이들의 취약함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며 비판의 메시지를 전하고자 하는 것이 인상 깊었다.
살면서 '대도시'가 갖는 성질에 관해 이토록 많은 생각을 해본 적은 처음이었다. 물론 '사랑'에 관해서도 그렇다. 이 두 가지에 관해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한 책이다. 어떤 유형의 삶이든, 사랑이든 자유로운 형태로 존재할 수 있는 대도시. 아마도 저자는, 이 책은, '대도시'라면 허락될 수 있는 다양한 사랑의 모습들을 게이인 '영'을 통해 보여주면서 변화의 가능성들을 열어두고자 했을 것이다.
그러니까, 이러한 공간적 배경은 어쩌면 저자 박상영이 바라는 오늘날 우리 사회의 모습이자 책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일 것이다. 때로는 사회에 상처받고 사랑에 힘들어도 기어코 자신의 방식대로 사랑하고 마는 사람들의 현실을 박상영 특유의 자조적 문체와 재치로 담담하게 풀어냈다.
아무튼, 책의 주인공 '영'의 지난 날들처럼 많은 사람이 각자 자신의 방식대로 사랑을 하고, 주고받으며 그 자체로충분할 수 있는 날들이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가장 소중한 사람으로부터 매 분, 매 초 자신의 정체성을 부정당하는 일은 이미 그것에 익숙해졌을지라도, 언제까지고 감히 상상하고 싶지 않은 일이므로.
/Apilogue
개인적으로 작가의 문체가 너무 마음에 들었다. 자조적이긴 한데, 그게 막 자기혐오나 자기비하가 중심이 된다기보다는 뭐랄까 무거운 것을 가볍게 받아치니까 오히려 그 문제의식이 더 드러날 수 있는 느낌이었다. 아주 최근에는 아니지만, 최근에 '오늘 밤은 굶고 자야지'라는 에세이 신작을 내신 것 같은데 그것도 읽어볼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