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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기초』로 목격한 결혼과 로맨스의 민낯

노력이 전제되지 않는 한, 로맨스라는 것은 허구일 뿐이다.


Prologue

누군가 내게 '가장 좋아하는 작가가 누구인가?'라고 묻는다면, 그 순간 내 머릿속에는 장르와 분야를 불문하고 잘 봤던 책의 작가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갈 것이다. 그러나 '가장'이라는 말의 사전적 정의(여럿 중 어느 것보다도 정도가 높음을 지칭하는 부사)에 따라 한 명만 골라야 한다면, 나는 '알랭 드 보통'을 말할 것이다.엄청난 고민을 거치기는 하지만 로맨스 소설에 관해 이야기가 나올 때면 늘 등장하는 인물이 알랭 드 보통인 것을 보면 스스로 답정너 같다는 생각도 든다.


특히, 나는 그의 로맨스 소설에 진심이 사람인데 책을 읽을 때마다 감탄이 절로 나오는 지경이었다. 가끔 에세이든, 소설이든 뭐든 '도대체 작가는 어떤 삶을 살았을까?' 혹은 '어떤 사랑을 했던 걸까?' 싶은 생각이 들 때가 있는데 그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알랭 드 보통' 이었기 때문이다. 대개 소설이 일종의 거울로써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라고들 하는데 그의 소설은 현실성의 끝판왕에 놓여 있다고 보면 된다. 읽다 보면 그가 사실은 작가가 아니라 심리학자는 아닌지 혹은 프로이트의 제자(?)는 아닌지에 관한 물음이 들 정도로 인간상과 삶에 관한 구체적이고도 섬세한 묘사가 엿보이기 때문이다.




1) 그 첫 번째 책, '사랑의 기초' - 한 남자



Jung's Saying

사랑과 결혼의 경계선에서 방황하는
한 남자의 방황기, 그 자유롭고 혼란스러운 과정을 통해 결혼의 실체를 밝히다
노력이 없는 로맨스란, 사실 허구일 뿐이다


흔히 사랑의 완성은 `결혼`이라고 말하고, 또 그렇게 믿는다. 당장 우리나라만 해도, 누군가와의 만남이 시작되는 그 순간부터 함께 먼 미래를 그리는 계획들, 즉 결혼이 전제되는 경우가 많고 이러한 현상은 곧 결혼의 필요성 혹은 중요성을 방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연애'라는 시작점에 대치되는 '결혼'은 결국 '사랑'이라고 하는 추상적인 개념을 구체화해내는 작업인 동시에 그 중심에 놓인 이들의 영원함에 대한 서약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먼 미래, 완성, 영원함, 그렇다면 결혼은 정말 사랑의 완성, 즉 종착지가 맞을까? 결혼만 하면 언제까지나 불안정하기만 할 것 같았던 사랑은 머지않아 안정적인 것이 될 수 있는 걸까?라고 했을 때 이 책은 `아니다`라고 단호하게 말하고 있다.


이 책은 사랑하는 아내와 딸을 둔 남편 `벤`의 다사다난한 결혼 생활을, 전지적 작가 시점에서 서술하고 있다. 여기서 '벤'이라는 인물은 한편으로는 누구보다 현실적인 인물인 동시에 누구보다 이상주의적인 인물이기도 하다. 청년기에서부터 중년기에 이르기까지 그의 마음 한 편에는 자신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사랑'의 존재가 자리 잡고 있었고, 그 때문에 사랑을 무언가로 정의하려고자 했던 필사적인 몸부림이 늘 동반되어 왔으나 그럼에도, 그의 과거를 돌아봤을 때 본인의 생각만큼, 삶이 로맨틱하게 전개되었던 적은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 문제는 특히 결혼 생활에서 두드러졌다. 아내, 엘로이즈와의 일상은 결혼생활 다운 결혼생활이기보다 주변 인물들에게 치이고, 아이에게 치이며 점점 '나'를 잃어가는 과정들의 연속이었기 때문이다. 그 속에서 벤은, 자괴감과 열등감, 허무함 등 온갖 부정적인 감정들뿐인 자아를 형성하게 됐고 그러다, 사실상 행동으로 옮겨서는 안됐을 사고,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본인의 의지에 따라 움직인 결과들이었으므로 사건의 주인공이 될 때도 있었다.


그러니까, 이 소설은 한 남자의 결혼 생활에 관한 이야기라고는 하지만 어쩌면 방황기에 더 가까운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한 명의 남편이자, 한 명의 남자이자, 한 명의 아빠로서 나아가 한 명의 '개인'으로서 존재하는 그가, 결혼 생활을 하면서 직면하는 여러 가지 문제들에 관해 '이렇게 솔직해도 되는 걸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면밀하고 진솔하게 드러내고 있다.


작가는 결국, 마음이 하루도 바람 잘 날 없는 '벤'이라는 인물을 통해 우리가, 인류가 오랫동안 꿈꿔오고 생각해왔던 '사랑', 나아가 너무도 당연하게 그 종착지로 여겨왔던 '결혼'이 지닌 허구성을 드러내고자 했던 것 같다. 이를 통해 결혼이라는 것은 안정성에 기반한 제도적인 장치,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사실을 통해, 중요한 것은 결혼에 대한 정의보다 결혼 이후의 사랑을 둘러싼 끊임없는 노력과 희생이 중요하다는 것을 일깨워 준다.


물론 이러한 깨달음의 끝에는 주인공 '벤'의 태도 변화 및 개과천선이 동반되기 때문에, 나름 반전이라면 반전이겠으나 추리물에서 등장할 법한 크나큰 반전을 기대할 수 있는 소설은 아니다. 그러나 기존에 '로맨틱함'의 요소들에 따라 형성되어온 사랑과 결혼을 둘러싼 로맨틱함의 실체를 벗겨냄으로써, 보다 현실적이고 실천적인 차원에서 로맨스를 바라보게끔 하는 책이다.


세상에 당연하게 이뤄지고 당연하게 유지되는 것은 단언컨대 하나도 없다. 특히 사람과의 '관계'라는 것이 그러하다. 만약 지금껏 소중한 누군가와의 관계가 별 문제 없는 일들의 연속이었다면 그건 어쩌면, '우리'라는 이름의 관계를 위한 상대방의 부단하지만 잘 보이지만은 않은 수고로움과 희생이 존재했기에 가능했던 것은 아닐까? 살아 있는 한 그리고 사랑하는 한 우리는 끊임없이 성찰하고, 고민하며 노력하는 존재로 나아가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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