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나는 그 사람을 '왜 사랑하는가?'라는 생각이 든다면
/Jung's Saying
마르크스주의, 아리스토텔레스, 운명론 등
철학적인 개념으로
사랑의 본질을 추적하는 알랭 드 보통 식 로맨스 소설!
사랑은 사실 무엇보다 구체적이며
논리적인 것임을 증명한다.
세상에는 여러 가지의 추상적인 단어가 있다. 그중에 제일은 사랑일 것이다. 가장 추상적이기 때문에 쉽게 정의할 수도, 설명할 수도, 증명될 수도 없는 것. 가수 십센치(10cm)에 의하면 사랑은 '은하수 다방 문 앞에서 만나 홍차와 냉커피를 마시며 매일 똑같은 노래를 듣다가' 오는 것, 철학자 롤랑 바르트에 의하면 사랑은 '한 번의 웃음으로 속수무책이 되던 자신을 보며 나의 전부가 너를 원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작가 알랭 드 보통에 의하면 사랑은 '자신을 알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저마다 살아온 배경과 가치관에 따라 그 방식에는 차이가 있으나, 우리는 늘 쉽게 사랑을 정의하고 이야기한다. 그래서 무엇이, 어떻게 사랑인데? 하며 누군가 구체적으로 따져 묻기라도 한다면 쉽게 설명하지도 못하면서 말이다.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는 그런 사랑의 구체성에 도전한다. 사랑이란 자신을 알게 되는 것이라 했던 알랭 드 보통. 이 책에서 그는 마르크스주의, 아리스토텔레스, 운명론, 파스칼 등 인간사를 둘러싼 여러 가지 철학적 개념을 사용하여 예리하면서도 유쾌하게 사랑의 본질을 밝혀낸다.
클로이라는 연인을 둔 한 남성 화자의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전개되는 내용은 그와 클로이의 관계 변화에 따라 보편적 연인 간의 사랑이 어떻게 시작되고, 그 시작은 또 어떻게 이별로 귀결되는지를 다양한 사건을 중심으로 보여준다. 그 사건들은 대단하거나 화려하지 않다. 대개 지극히 일상적이고 사적이다. 이는 그들의 '개인'으로서 삶이 사랑의 문제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음을 보여준다. 이 과정에서 평생 운명적이었던 순간으로 기억될 뻔한 첫 만남에서부터 비로소 연인이 되기 전까지의 단계, 연인이 된 이후의 친밀함과 사랑의 구축 그리고 그에 동반되는 시시콜콜한 싸움 등 사랑을 둘러싼 필연적인 사건들을 통해 사랑이란 어제 좋았다가도 언제 그랬냐는 듯 오늘은 또 악화될 수 있는, 가변적이면서도 연약한 것으로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늘 견고한 가치는 아니라는 점을 드러낸다.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여기서 이 책의 주제 의식이 분명해진다. '나는 너를 사랑한다'는 의미를 동반한다는 점에서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라는 질문은 곧 사랑을 둘러싼 이 모든 딜레마와 열악함 그리고 복잡함마저도 상대방에 대한 자신의 사랑이 완성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이며 결국 그만큼 '너를 사랑한다'라는 단호한 말이나 다름없다.
대부분의 로맨스 소설이 그렇듯,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또한 사랑에 기반한 두 사람의 세계 위주로 전개되지만, 그렇다고 처음부터 끝까지 이상적인 로맨스에 관한 클리셰로 무장한 로맨스 소설과는 다르다. 알랭 드 보통 특유의 통찰력을 통해 자칫 진부할 수도 있는 사랑 이야기들을 전혀 진부하지 않은 방식으로 사랑의 가치를 증명하고 있다. 특히 로맨스 소설을 읽는다고 했을 때 흔히 볼 수 없고 떠올릴 수 없는 철학 및 사회과학적인 사례들을 인용했다는 점에서 큰 의의를 지닌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지점들이 사회학을 전공했던 나에게는 굉장히 흥미롭게 다가왔다. 그래서 마지막 장을 다 덮고 나면 몇 시간에 걸친 사랑 교양 수업을 들은 것 같은 느낌이다. 문득, 나는 지금 내 옆에 있는 사람을 '왜 사랑하는가?'라는 생각이 들 때 우리의 궁금증에 방향성을 제시해줄 수 있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