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 만한 인간'을 읽고서야 비로소 쓸 만한 인간이 되었다.
Prologue
/ 주로 가수들을 덕질해왔던 나는, 사실 좋아하는 드라마나 영화는 있어도 좋아하는 배우는 특별히 없었다. 종종 눈에 들어오던 배우는 있었지만 극 중에서의 이미지가 매력적이었던 게 컸기 때문에 '팬'이라는 이름을 붙일 정도는 아니었다. 그랬던 내가 '어떤 배우의 팬이다'라고 스스로 말하고 싶어 진 순간이 기어코 오게 되었는데, 그 배우는 바로 '박정민'이라는 사람이다. 박정민이라는 배우는 윤동주 시인의 이야기를 다룬 <동주>에서 처음 알게 되었는데, 영화의 소재상, 대부분이 어둡고 잔잔했던 스크린 속에서 그의 존재감은 빛을 발했던 걸로 기억한다.
그때부터 배우 박정민의 팬이 되었다. 나는 특히 그의 눈을 좋아하는데, 살짝 풀린 듯하면서도 섹시한 눈빛은 어떤 역할을 하든, 그의 연기에 감칠맛을 더해주기 때문이다. 동시에 어딘가 모르게 거친 듯하면서도 섬세하고, 관대한 듯하면서도 단호함을 겸비한 그의 정체성을 드러내 보이기도 한다.
Jung's Saying
/글을 말로 전하는 사람에서
말을 글로 전하는 사람이 된 배우 ‘박정민’
그가 전하는 날카롭고도 따뜻한 이야기들이
우리의 일상에 담담한 위로가 된다.
34p. 내년에는 새로운 계획 같은 거 짜지 말고 지금 하는 거 쭉 해나가길 바란다. 한 살 더 먹으면 살이나 찌겠지만 느낌 아니까, 뭐가 됐든 해내자는 거다.
111p. 너도 새해 복 많이 받고 하는 일 다 잘되길 빈다는 내용이다. 그리고 다음 나 아침, 밤사이에 온 답장들을 살피다가 하나의 메세지를 저장한다. '이미 네가 나한테 복덩이야.' 당신도 누군가에겐 이미 복덩이다. 분명 그럴 것이다. 분명히 그럴 것이다.
161p. 그들은, 그리고 우리는 그저, "...,"의 침묵과 "그랬구나. 가끔은 그럴 수 있어."의 동의가 필요한 순간인데 말이다.
그리고 내 예감이 맞았다. 평범하지 않아 보였던 박정민은 배우로서 뿐만 아니라 작가로서도 뛰어난 사람이라는 것을 그의 에세이 『쓸 만한 인간』을 읽고 깨달았다. 그는 이미 인터넷 전문 잡지인 'TOP CLASS'에서 언희(言喜)라는 필명으로 열심히, 꾸준히 활동해온 어엿한 작가였다는 것 또한 그 뒤에 알 수 있었다. (참고로 언희란, 한자 뜻 그대로 '말로 기쁘게 한다'는 의미를 지닌다.) 왜냐하면 그 글들을 엮은 것이 바로 이 책이기 때문이다.
그의 에세이 또한 여느 에세이와는 다를 바 없이 박정민의 사적인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한 명의 아들이자, 한 명의 친구이자, 나아가 한 명의 배우로서 그가 경험했던 일들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지극히 평범한 에세이는 아니다. 아무래도 오랫동안 글을 써왔던 사람이라 그런지 그만이 보여줄 수 있는 필력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의 문체는 매번 거침이 없었고, 간결하며, 솔직했다. 즉, 마냥 친절하지만은 않은 느낌이었다. 그러나 이 말은 결코 퉁명스럽다거나 성의 없음을 의미하지 않는다.
뭐랄까 어떤 느낌이냐하면 언젠가 울고 있을 때 평소 무뚝뚝하고, 무신경해 '보였던' 사람이 다가와 손수건과 따뜻한 커피 한 잔을 쓱 건네주고서는 아무 말 없이 함께 앉아 있어 주다가 울음이 그치는 것까지 확인을 한 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돌아가는 느낌이었다. (쓰다 보니 도대체 이게 다정이 아니면 뭐가 다정인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냥 친절하지 않았다는 말 취소해야겠다) 생각해보면 이건 영화 시사회, 인터뷰 영상 등에서 비치던 그의 성격과 분위기와 많이 닮아 있음을 느꼈다.
이제는 자타공인 국민배우가 되었음에도 영화와 팬들을 대하는 진지함과 겸손함을 잃지 않는 배우 박정민. 그의 손 끝에서 나온 이야기들이 배우를 넘어 인간 박정민을 들여다보게 만드는 책이다. 동시에 많은 독자에게 ‘당신도 충분히 쓸 만한 사람’이라는 담담한 위로를 전하고 있다. 언젠가 자신의 가치가 의심되는 순간이 온다면 그건 박정민의『쓸 만한 인간』 을 읽을 때가 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여태껏 책이라는 건 커피 한 잔의 여유와 함께 해야 한다고만 생각했는데 그의 책, 『쓸 만한 인간』 은 맥주 한 잔과 함께 해야 할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것도 흑맥주 그중에서도 스타우트도, 기네스 드래프트도 , 코젤도 아닌 기네스 오리지널을 천천히 음미하며 읽어야만 할 것 같다. 그리고 그 옆에 함께 흑맥주를 한 잔 하며 나에게, 우리에게 현실 조언을 해줄 것만 같은 박정민의 모습이 자연스레 그려지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