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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소시오패스가 사랑할 때

 <이태원 클라쓰>의 조이서가 보여주는 '사랑'

세상에는 여러 가지의 추상적인 단어가 있다. 그리고 그중에 제일은 사랑일 것이다. 아마도 전 세계 인류를 통틀어 갈등이 일어나는 원인의 8할은 모두 사랑으로부터 비롯된 것이 틀림없다. 가장 추상적이기 때문에 쉽게 정의할 수도, 설명할 수도, 증명될 수도 없는 것. 그러한 사랑에 대해 나는 종종 생각하곤 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사랑은 무엇인가?'에 관한 것이었다.


가수 십센치(10cm)에 의하면 사랑은 은하수 다방 문 앞에서 만나 홍차와 냉커피를 마시며 매일 똑같은 노래를 듣다가 오는 것이다. 철학자 롤랑 바르트에 의하면 사랑은 한 번의 웃음으로 속수무책이 되던 자신을 보며 나의 전부가 너를 원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것이다. 또한, 작가 알랭 드 보통에 의하면 사랑은 자신을 알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다른 분야의 세 전문가들로부터 정의되는 사랑 역시 각기 다른 형태를 지닌다.




사랑이라는 것은 정말 무엇인가.

제대로 된 사랑을 아직 해보지도 못한 나는 이상하게 그것에 관해서만은 나만의 정의를 만들고 싶어했다. 그러다 언젠가, 최근에 잘 보고 있는 드라마 <이태원클라쓰>의 한 장면을 보고서 비로소 '사랑다운 사랑'을 찾았다.

JTBC - 포토갤러리
간단한 줄거리

조이서(김다미)는 위기의 순간마다 우연히 나타나 자신의 인생에 참견하던 박새로이(박서준)의 모습에 강한 끌림을 느낀다. 거기다 지극히 개인주의적이고 현실주의적인 삶을 살아온 자신과는 달리 이상주의적이고 박애주의적인 삶을 살아온 박새로이를 경험하면서 이전에는 느낀 적 없던 감정들을 느끼게 된다. 이것은 다름 아닌 '사랑'이라는 것을, 그녀는 아주 분명하게 직감했고 앞으로의 삶을 박새로이(박서준)에게 걸기로 결정한다. 그러나 박새로이(박서준)는 그녀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큰 상처를 지닌 남자인 동시에 생각할 수 있는 것보다 강한 남자였다. 이러한 사실은 종종 그녀를 아주 힘들게 했지만 그만큼 그를 더 생각하고 사랑하게 만드는 강력한 계기를 마련한다. 더 나아가 그녀의 삶 또한 변화시킨다.




극 중 조이서(김다미)는 아이큐 162의 똑똑한 소시오패스다.

소시오패스란 반사회적 인격장애의 하나로 분류되며 정신과적인 차원에서 많은 심리학자들이 사용하는 용어이다. 이들의 가장 대표적인 문제는 공감 능력의 결여이며 이에 따라 잘못된 행동에도 죄책감을 느끼지 못한다. 따라서 자신의 이익과 목적 달성을 위해서라면 남을 해하는 행위 또한 서슴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녀의 말을 따르자면 자신은 늘 가지려고 했던 것을 가지지 못했던 적은 한 번도 없었고, 가지고 싶다면 모든 것을 망가뜨리는 수가 있어도 자기 것으로 만들어내고 마는 사람이다. 

이것은 곧 다른 사람의 상황이나 감정 더 나아가 상처 등은 그녀에게 부차적인 요소이자 일의 진행에 있어 걸리적거리는 것 그 이하도 이상도 아님을 의미한다.



<이태원클라쓰> 7화 방송분 캡처

그런데 줄곧 그렇게 살아온 그녀가 여기 한 남자의 무릎을 베고 누워 그의 몸 이곳저곳에 새겨진, 적지 않은 상처들을 매만졌다. 어느 한 상처도 그냥 스쳐 보내지 않으려 하는 정성스러움이었다. 


이내 눈물을 보였다. 그리고 그 눈물은 마냥 가볍게 흘러내릴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꽤 오랜 시간을 조이서(김다미)의 눈에 머물며 박새로이(박서준)의 상처들을, 과거들을 추적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에게 있어서는 '이제와서 말할 수 있는 거지만' 의 대상이 되어, 지나갔기에 애써 덤덤할 수 있는 것들. 그러나 다른 누군가에게는 결코 경험하지 않고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어 까마득한 것들. 그의 상처들이 가져온 까마득함을, 조이서(김다미)는 느꼈기 때문에 눈물을 보이지 않고서는 어찌 할 도리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니까 그 눈물은,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한 모든 것을 응축하고 있는 '무언가'인 동시에 눈물의 형태를 가장한 조이서(김다미)의 '사랑'이었을 것이다.


아니, 그건 사랑이었다.

틀림없이



<이태원클라쓰> 7화 방송분 캡처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사장님의 과거에 내가 아픔을 깨달을 때
좋아하는 이 마음이 사랑임을 깨닫는다.
사장님의 먹먹한 목소리, 복받치는 감정
 다시는 혼자 아프게 두지 않겠다는 생각들이
이 남자를 건드는 놈들은
다 죽여버리겠다고 다짐한다. 사랑한다.
<이태원클라쓰> 7화 방송분 캡쳐

많은 시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선명한 상처를 두고도 박새로이(박서준)는 무덤덤한 목소리로 '괜찮다'라고 말한다. 그의 성격을 감안했을 때 너무나 예측 가능한 대답이었다. 지금까지 그가 살아온 인생은 괜찮다고 생각하지 않으면 도저히  살 수 없었던 것이기 때문이다. 끝까지 스스로에게 무책임할 만큼이나 무덤덤하고 태연한 박새로이(박서준)를 보며 조이서(김다미)는 고였던 눈물을 끝내 터뜨리고 만다. 그녀는 턱없이 작은 두 손으로 그의 팔을 감싸며 밖으로 내보일 수 없는 것들을 새벽 내내 삼켜내야 했을 것이다.


나에게 있어 이 장면은 흡사 매우 잘 삶아진 계란 열개를 한 번에 먹다가 잘못 삼켜서 제대로 얹힌 답답함과 먹먹함이었다. 아니, 그 이상이었다. 무엇이 나를 그토록 서럽고 벅차게 만들었던 것인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다만 '지금 울지 않으면 이후의 밤과 새벽이 꽤나 힘들어지겠다는 생각' 뿐이었고 그래서 고였던 눈물이 왈칵 쏟아졌던 것 같다. 여러모로 의미가 있던 장면이었다. 무엇보다 내가 그토록 정의해내고 싶던 사랑의 형태를 마침내 찾은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조이서(김다미)가 박새로이(박서준)의 상처들을 어루만지며 몇 번이고 삼켜낸 눈물과 다짐들. 그때 내가 목격한 사랑은 그 사람에게 새겨진 흔적과 상처를 통해 과거를 들여다보고, 눈을 통해 현재를 마주하며, 손을 통해 미래를 기약하고 마는 것이었다.




인생이 너무 씁쓸하다는 박새로이(박서준)의 취중진담에 '당신의 밤이 조금은 더 달달해졌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던 조이서(김다미)


그녀의 사랑은 사실 여기서부터 시작이었다.

<이태원클라쓰> 1화 방송분 캡처






제가 참여한 공저시집입니다. 나이도, 성별도, 지역도 모두 다른 6명의 작가들이 6가지의 개성으로 엮어낸 사랑,청춘,인간관계, 삶에 관한 이야기가 담겨져 있어요! 하나하나 진심을 담아 쓴 시 입니다. 홈페이지에 대표시들이 수록되어 있으니, 자유롭게 보시고 많은 관심 부탁드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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