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많던 시츄는 어디로 갔을까?

시간은 많이 흘렀고, 그만큼 변해 있는 것들


지난 7년간 시츄를 키우고, 산책시키며 느낀 게 하나 있다. 어쩌다 밖에서 만나게 되는 반려견의 종류가 생각보다 한정되어 있다는 것이다. 나갈 때마다 보이는 견종은 크게 푸들, 말티즈, 비숑이 있다. 그중에서도 푸들과 말티즈를 많이 보는데 그러면서 드는 생각은 '어릴 적만 해도 많았던 시츄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라는 거다.



그러니까 내가 초등학생 5학년 무렵이었을 것이다. 우리 가족이 살던 아파트 바로 근처에는 꽤 큰 공원이 하나 있었는데 그곳은 예나 지금이나 산책을 하는 반려견과 주인들이 한 번쯤은 거쳐 가는, 일종의 산책 집합로였다. 물론 그 당시 개를 키우지 않았던 나는, 개와는 아니고 친구들과의 산책 겸 수다를 위해 떨러 자주 가는 곳이었다. 시간이 꽤 흘렀음에도 분명히 기억이 나는 건 그때 내가 자주 봤던 개들은 주로 시츄나 요크셔테리어 아니면 치와와였다. 가끔은 코카스패니얼도 심심찮게 보이고는 했는데 개 중에서도 시츄가 특히 많았던 걸로 기억한다.


다른 견종에 비해 유난히 눈은 더 돌출되고, 코는 더 눌려 있으며 진갈색이거나 황토색이거나 그것도 아니면 고동색의 털을 지니기도 한 시츄. 언젠가 시츄를 키우게 될 사람이 내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던 나는 당시만 해도 '으이구, 참 멍청(?)하게 생겼는데 보면 볼수록 너무 귀엽네' 싶은 생각으로 저마다 다르게 생긴 시츄들을 바라보고는 했다. 시츄 특유의 둥글한 생김새와 세상 여유롭고 느긋한 태도를 보고 있자면 소위 예쁘게 생겼다고 하는 여느 개들보다도 더 귀엽게 다가오는 것이었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는 옛말이 있듯, 지금 내가 시츄를 키우고 있어서 쓰다 보니 편향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그렇지만 과거에도 난 시츄에 남다른 애정이 있었던 건 분명하다.)


그 이후로 시간은 10년 하고도 더 되게 흘렀고, 10년 전만 해도 한국 사회의 주류(?)였던 견종인 시츄를 많이 볼 수 없어 종종 아쉬운 마음이 든다. 언젠가 한 번은 유튜브에서 시츄에 관해 다루는 한 영상을 봤는데 그 댓글에는 나와 한마음인 사람들이 꽤나 많았다. 누구는 몇십 년 전부터 시츄와 함께 살고 있지만 어느샌가 다른 시츄들을 별로 볼 수 없게 되었다고 하고, 또 누구는 우리가 어릴 적 봤던 시츄들도 이제 함께 나이가 들어 자주 밖에 나올 수 없는 것이 아닐까라는 추측을 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내 눈을 의심하게 한 댓글도 있었는데, 시츄는 외형적으로 귀여워 보이는 탓에 사람들이 키우기 시작했다가 막상 조용하고 지루한 성격임을 알게 된 사람들이 마음이 변해 유기하는 경우가 많은 종류의 견이라는 거였다. 그래서 자주 보이던 옛날에 비해 오늘날 잘 보이지 않는 것일 수 있다며. 만에 하나 정말 그런 것이라 해도, 성격이 무던하고 온순하다는 사실이 어떻게 그 개가 버려질 수 있는 이유가 되는 것일까? 나는 시츄에 관해 쓰인 여러 댓글 중에서 그 얘기만은 사실이 아니길 바랐다.




살면서 시츄들을 가장 많이 목격했던 시절에 밖에만 나갔다 하면 보이던 시츄 한 마리가 있었다. 아주 가까이서 보지는 못해 수컷이었는지, 암컷이었는지는 모르지만 주인 할아버지와 함께 날마다 산책을 나왔다. 집 앞 슈퍼마켓, 놀이터, 산책로 등 집을 나섰다가 들어갈 때 거치는 다양한 동선마다 그들을 볼 수 있었으니 말이다. 나뿐만 아니라 동네 사람들 모두 그들의 존재를 알고 있었을 만큼의 존재감이었다고 할 수 있다.


할아버지는 그 개를, 때로는 안고 계셨고 때로는 산책 줄을 잡아 함께 걸으시기도 했다. 그때 나는 '또 그 시츄와 할아버지를 만났네!' 하는 생각 이상도, 이하도 하지 않았다. 한 번도 그 개의 가까이서 눈을 마주치고, 인사를 해볼 생각도 못했다. 날마다 마주치던 그 존재가 너무 당연하게 생각되었던 까닭이다. 그런데 그렇게 날마다 마주치던 시츄를, 한 번은 가까이서 눈여겨봐 둘 걸 그랬다. 할아버지와 이야기도 좀 하며 시츄와의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여쭤볼 걸 그랬다. 이제는 당시의 할아버지도, 시츄도 볼 수 없게 된 근래에 들어 그런 생각을 자주 한다.


한편으로는 시츄에 관해 이야기하던 누군가의 말마따나 내가, 우리가 어릴 적 자주 봤던 시츄들도 함께 나이를 먹어 이전만큼 볼 수 없는 시대가 와버렸구나 싶어 지나온 시간들이 훅 와 닿는 느낌이랄까. 내가 지금 그리운 건 '시츄'일까 아니면 시츄를 지금보다 훨씬 많이 볼 수 있었던 '그때'일까.



며칠 전 복곤이를 산책시키다가 7년 만에 처음으로 나이와 견종이 같은 시츄를 보게 되었다. '시츄를 본 것도 아주 오랜만인데 거기다 나이도 같다니!'라는 생각에 시츄러버로서 혼자 감격(?)했던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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