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단 둘이 떠난 '첫' 유럽 여행
엄마는 늘 여행에 목마르고 아쉬운 사람이었다. 나에게 한 번씩 휴가철이 되면 꼭 어디든 함께 갔으면 한다고 입버릇처럼 말하곤 한다. 하지만 늘 나는 그 제안을 거절했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지금도 여전히 그렇지만) 나는 엄마와 여행을 떠난다는 사실이 어색하고 한 편으로는 불편한 기색도 들었다. 엄마와 난 막역한 것처럼 보이지만 거리가 분명하게 존재했다.
그리고 2014년 8월. 나는 여러 번의 제안 중 죽기 전에 엄마와 가보는 마지막 여행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엄마의 오랜 바람을 이루어 드리고자 했다. 딱히 어려운 제안은 아녔었지만. 급하게 잡힌 여행의 일정은 빠르게 다가왔고 나는 캐리어를 끌고 공항에 도착할 때까지도 실감을 하지 못했다.
10일 동안 짧고 굵은 여행길에 올랐던 엄마와 난, 우려대로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나는 원치 않는 여행을 따라나온 것처럼 엄마의 옆자리를 어색해했고 사진을 찍는 상황마저 줄곧 거리를 두었다. 엄마는 그런 내 모습에 속상함이 묻어나는 듯, 다른 사람들에게 하소연을 나지막하게 드러냈다. 하루는 이동하는 버스에서 말없이 내 손을 꼭 잡아주셨다.
엄만 지금 이 순간이 좋아. 너도 그랬으면 좋겠어.
나는 그 목소리를 들었지만 고개를 겨우 끄덕이며 애꿎은 창밖만 바라보았다. 그렇게 지친 일정에 잠든 엄마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했다. 많은 시간을 함께 해온 엄마였지만 나는 한 순간도 엄마를 제대로 바라본 적이 없었다. 어떤 얼굴을 가졌는지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야속한 시간들이 더 많았다.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엄마를 생각하며 가슴을 부여잡고 울었던 날도 많았다. 왜 우린 그렇게 다르기만 해야 하는 걸까 라며 세상을 원망해보기도 했었다. 그러다 문득, 병원에 있던 짧은 며칠이 지나갔다. 엄만 내 얼굴만 보면 헤아리기 어려운 슬픔을 표현하곤 했다. 다 안아주지 못하는 마음, 아프게 태어나게 했다는 마음 그리고 대신 아파줄 수 없는 마음. 아마 엄마는 내 답답함을 먼저 읽고 있었는 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누워만 있게 하고 싶지 않아 온 힘을 다해 나를 향해 손을 내밀었을 엄마였을텐데. 그 생각을 깨닫고 나니, 돌아갈 날이 되었다. 나도 엄마에게 답을 해주고 싶었다. 수많은 마음의 오해를 풀어주고 싶었다.
나는 엄마랑 있던 모든 순간이 행복해. 엄마도 그랬으면 좋겠어.
비록 자는 얼굴에 대고 나지막하게 대답했지만 나름의 용기가 필요했다. 엄마는 아직도 나에게 어려운 사람이지만 이제 가끔 '엄마'가 되어보려고 노력한다. 작은 품으로 엄마를 안아줄 수 있는 큰 마음이 생길 수 있도록 여전히 노력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