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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 정 Jun 02. 2022

22.06.02

5일만 써보자


  하루에 열 줄만 쓰자고 시작한 일기는 얼마나 쓸 수 있을까?


  장애등급이 2에서 3으로 내려갔다. 숫자만 내려갔고 중에서 경으로 내려가는 차이에 비해서는 미미한 편이지만 기분이 상했다. 주변에서는 아직 모르는 사람이 더 많지만 나와 열 마디 이상 해본 사람들은 내가 삶을 잘 견디고 있음을 대략적으로 알고 있다. 다시 말하면 겉으로 봤을 땐 정상인이다. 걸어다니는데 문제 없고 가리는 음식 또한 특별하게 없다. 그치만 3은 기분이 나쁘다.

  2에서 3으로 내려간 건 행정적으로는 5점이 깎인 것 외에는 변화가 없어보이지만 5점 속에는 숨겨진 혜택들이 담겨있다. 기초수당보다 더하다 싶을 정도의 최소 금액이지만 장애연금도 신청할 수 있고 수당도 받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야말로 뚝 끊겼다. 3급이 된 이후 그들은 서류상으로 판단한다. 나는 조금 더 나아졌을테니 일을 할 수 있음에 끊긴 것들이다. 내 손으로 돈을 벌 수 있으니까. 진짜 괜찮냐고? 설마. 여전히 걷는 걸음이 다른 사람보다 숨이 차고 계단만 보면 벌써 어지러워지는 기분이다. 남들이 하는 운동을 결심하기까지 많은 생각을 해야한다. 숨이 차오르는 순간으로 닿는 시간까지가 짧고 그 이후로는 수명이 줄어드는 것 같다. 핸드폰의 배터리가 닳는 것처럼. 그래도 수십번, 수백번을 고민한다. 조금은 체력이 증진될 거라는 생각이 비집고 올라오기에.


  글을 쓰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는 이처럼 내 이야기를 적는 것을 하고싶으면서도 비밀을 쏟아내는 것이 무슨 도움이 되나하는 생각이 공존하기 때문이다. 굳이 꺼내는 이유가 뭘까, 쓴다고 하면 다른 이들은 이해할 수 있을까. 질문으로 끝나는 문장마다 대답을 해줄리도 없고 그것이 내가 받고 싶던 답이 아닐 수 있다. 그래도 드문드문 쓰고싶다라고 몇 자 적어보는 건 글 잘 쓰는 어떤 타인들을 부러워해서다. 그들 글에 감동받고 슬펐다 기뻤다 아팠다가 내 이야기였다며 고개도 끄덕이고. 나에게도 한 명쯤은 생기겠지. 


  숫자가 달라진 이후로 바뀐 건 하나도 없다. 재택과 출근을 병행하던 나와 회사의 계약을 새로 써야할 수도 있지만 당장 일어나지 않았고 수당을 받지 못한다고 집이 무너질리도 없다. 괜히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완벽한 짜임에 무언가 뚝 하고 끊어지면서 후두둑 다 꼬여버린 것 같아서. 한편으로는 다행이다 생각이 든다. 병원에 입원할 일도 없었고 의사는 처음으로 내 몸상태가 괜찮아졌다고 말했다. 30년 만에 처음. 엄마는 그 한 마디에 맘을 놓았다가 아마 어제 혜택이 끊겨나감에 화가 났을테지만. 실제로는 그 서류상대로 나는 괜찮아졌을지도 모른다. 계단은 힘들어하지만 이미 오르기 시작한 계단은 한두번은 쉬더라도 끝까지 오르려 애썼다. 출근하는 길목에 나에게 맞는 루트를 찾아가는 것도 익숙해졌다. 장롱면허로 먼지만 쌓였던 감각도 최소한의 운전은 될 수 있게끔 연수도 받았다. 회사 뿐만 아니라 학교도 다니기 시작했다. 큰 일은 일어나지 않고 있었다. 아무 일도 없었다. 가끔은 혼자서 근방 스타벅스도 가게 되었다. 커피 한 잔 하려고.

  나에게 욕심을 내던 회사에서는 반가운 소식일지도 모른다. 나도 지금보다 욕심을 부려볼 수도 있을지도. 다른 방향으로 다가온 기회일 수도 있으니 지켜보도록 하는 것이 좋을 거 같다. 





더워지는 날씨처럼 땅도 이글이글 끓고

나의 욕심과 기회도 끓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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