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연 정 Jun 16. 2022

22.06.16

일기는 아플 때만 써내려갈 수 있었나보다

  밀렸던 일기에는 무엇을 적어야할까. 하루만 쓰고 그 다음을 잇지 못했던 나날들은 나에게 어두웠고 감정에 집중되었으며 아프고 힘들었다. 좋아하는 문구가 생겼다. '한없이 다정하게' 혹은 '힘껏 사랑하기' 등 따위를 좋아하게 되었다. 아마 내가 이루지 못한 문구들이였기에 더 와닿는지도 모르겠다. 마치 나의 글도 내가 한없이 아프기 전까지는 쓸 수 없었던 것처럼. 


  전화 속 목소리는 어떤 감정이 읽히기보다는 사실관계가 필요해보였다. 구체적이고 명확하게, 매번 설명을 덧붙여야만 했다. 하지만 결국 목소리의 주인공은 완벽한 이해도, 공감도 얻지 못했다. 수없이도 되풀이 한 말들이 아무 소용이 없어짐을 알았을 때의 허탈함과 스스로에 대한 분노는 순간적으로 끓어올랐다. 가장 손쉽게 집을 수 있던 안경을 던졌다. 고칠 수 없을만큼 테가 휘었고 알도 툭 튀어나왔다. 조금의 이성이 돌아온 후에 보는 바닥에 나뒹구는 안경이 그렇게 불쌍할 수가 없다. 그게 나였다. 

  문장을 쓰고, 말을 끊임없이 뱉어내는 것을 나는 좋아했다. 그 문장들은 다정함이 너무 묻어서 부담이 느낄 순간도 있을지 모른다. 나도 그런 문장들을 실제로 들을 수 있다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만들어 내는 것들이었다. 어느 순간은 문장의 색도 없고 어떤 감정도 없다. '끝'이 다가옴을 직감할 때 애써 반문하고 되돌리려고 말도 안되는 문장을 더 이어본다. 


  사실 두려워했다. 누구를 만나는 것도, 누구를 좋아하는 일도. 그래도 누군가 한없이 다정한 얼굴로 다가올 땐 막을 방법이 없다. 이 사람이 나에게 탈출구가 되어줄거라는 믿음, 그게 발동되면 고마워하고 다행이다 여기며 시간을 보낸다. 그리고 더 욕심을 낸다. 나도 다른 사람들처럼 드레스를 입어보고 나름 게으르면서 재미난 결혼생활을 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불가능한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스스로에게 장애물이 너무 많고 그 장애물은 생각보다 상대를 불편하게 만들 수 있음을 알기에 선뜻 먼저 하고싶다라고 말할 수 없다. 그러다보면 맥없이 시간만 흐른다. 변화한 건 지친 내 마음만이 남아있다. 이번에도 나는 욕심 냈던 것을 후회하고 놓아버리게 될 것이다.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확신이 없었기 때문에. 

  그래도 여러번 잡아보려고 감정을 마구 쏟아냈다. 때마다 상대들은 다정함을 잃고 '나는 최선을 다했어' 뿐일까. 역시 사람을 받아들이는 여유가 부족한 건 나였다는 걸까. 


  오늘은 전화 속 목소리를 만나야한다. 어떤 결과든 반드시 완벽하지 않을지라도 나는 용기를 내야한다. 그게 어떤 것이든. 그리고, 어쩌면-. 



매거진의 이전글 22.06.02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