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증

불안과 조금 멀어지는 연습

by 주디의 작은 방

나는 오래전부터 불안을 안고 살아왔다.

어떤 날은 숨을 고르는 일조차 조심스러웠다.
작은 변수가 생기면 머릿속에서 수십 가지 가능성이 동시에 떠올랐다.
그 가능성은 대부분 좋지 않은 쪽으로 기울었다.

겉으로는 평온해 보였지만, 속에서는 늘 경보등이 켜져 있었다.
사소한 일에도 가슴이 쿵 내려앉고, 그 순간부터 멈출 수 없는 상상이 시작됐다.

불안은 조용하지만 집요했다.
하루를 살아내는 방식에 스며 있었고,
내 표정과 목소리, 심지어 걸음걸이까지 바꾸어 놓았다.

그러면서도 나는 그 불안이 나를 지켜주는 방패라고 믿고 있었다.
하지만 실은, 그것이 나를 가장 견고하게 가두고 있었다.


어느 날 우연히 방종임 기자의 강연회에 갔다.

이 시대 교육을 위해 사회 곳곳을 취재해 온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묵직한 이야기가 이어졌다.

강연이 끝난 뒤, 사인을 받기 위해 줄을 섰다.
내 차례가 되었을 때, 기자님은 잠시 나를 바라보다 펜을 들어 책 위에 이렇게 써주셨다.


“걱정하지 않는 부모를 응원합니다.”


순간, 머리를 망치로 맞은 듯 멍해졌다.

‘걱정하지 않는’이라는 말은 단순히 아무 생각 없이 살아가라는 뜻이 아니었다.
불필요한 불안을 내려놓고, 필요한 순간에 필요한 만큼만 걱정하라는 뜻이었다.

그 한 문장은 이상하게도 나를 단숨에 꿰뚫었다.
마치 오래전부터 내가 들어야 했던 말이 지금 이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나는 그 자리에서 알았다.
내 불안이 나를 묶는 동시에 내 삶을 훔쳐가고 있다는 사실을.


돌아보면, 불안은 나와 오랜 시간을 함께 해왔다.
어릴 적부터 무언가를 시작할 때면 머릿속에 ‘만약에’라는 단어가 먼저 떠올랐다.

길을 걸을 때, 전철을 탈 때, 심지어 잠들기 전에도 혹시 모를 일들을 미리 상상했다.

그 습관은 어쩌면 안전을 위해 생긴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것은 경계심을 넘어, 마음을 옥죄는 족쇄가 되었다.

불안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그 영향력은 생활 곳곳에 스며든다.
무언가를 결정할 때 오래 망설이게 하고, 가볍게 흘려보낼 수 있는 일을 무겁게 부풀려 버린다.

결국 불안은 삶의 속도를 늦추고, 행동반경을 좁힌다.


불안은 걱정을 부른다.
그리고 걱정은 더 큰 걱정을 낳는다.

마치 눈덩이가 굴러가며 커지듯, 작은 불안은 순식간에 시야를 가리는 거대한 덩어리가 된다.

그 덩어리가 시야를 가리면 나는 세상을 온전히 보지 못한다.
햇빛이 드는 창도, 부드러운 바람도, 순간순간의 기쁨도 불안 속에서 빛을 잃는다.

무엇보다 무서운 건, 그 불안이 나 자신에 대한 믿음을 갉아먹는다는 것이다.
나는 나를 믿지 못했고, 그래서 세상도 쉽게 믿지 못했다.


방종임 기자의 문장을 마음속에 새기고, 나는 연습을 시작했다.

첫째, 생각 멈추기.
불안이 몰려오면, 의도적으로 다른 행동을 했다.
물컵을 씻거나, 방을 정리하거나, 음악을 크게 틀었다.
몸이 움직이면 생각의 고리가 조금 느슨해졌다.

둘째, 확인 줄이기.
문 잠금, 가스 밸브, 지갑 속 카드…
예전엔 두세 번씩 확인하던 습관을 한 번으로 줄였다.
처음엔 불안이 밀려왔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경험이 서서히 나를 안심시켰다.

셋째, 말 바꾸기.
머릿속에 자동 재생되던 “혹시”라는 단어를 “괜찮을 거야”로 바꿨다.
말이 생각을 바꾸고, 생각이 마음을 바꾸는 것을 느꼈다.


불안을 완전히 없앨 수는 없을 것이다.
아마 평생 내 안에 어딘가 남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나는 불안과 거리를 두는 방법을 배우고 있다.

그것은 마치 장마철의 비와 같다.
비를 멈출 수는 없지만, 우산을 쓰고 걸어갈 수는 있는 것처럼.

방종임 기자의 문장은 여전히 내 마음속에 살아 있다.


“걱정하지 않는 부모를 응원합니다.”


그 말은 ‘불안을 부정하라’가 아니라 ‘불안과 건강하게 거리 두라’는 의미로 다가온다.

나는 불안이라는 방에서 조금씩 밖으로 걸어 나가고 있다.
그 길 위에서 비로소, 내가 숨 쉬는 소리가 또렷하게 들린다.




by 주디의 작은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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