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건 네 마음대로
살랑이는 여름날의 초저녁 바람이 눈가에 와닿는다.
이토록 설레는 바람을 여태껏 느껴보지 못한 채 여태 난 무엇을 위해 달려왔던가.
유난히 더웠던 하루 햇볕은 아침부터 바닥을 달궜고, 도시는 온통 끈적이는 열기로 가득했다.
한낮을 견디는 일은 그저 버티는 일이었다.
창문을 열면 뜨거운 바람이 쏟아지고,
닫으면 숨이 막혔다.
그렇게 하루 종일 몸도 마음도 지쳐 있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땀이 목선을 타고 흘러내릴 때
갑자기 한 줄기 바람이 얼굴을 스쳤다.
그 바람은 너무나 시원하고 부드러워
순간 숨이 멎는 것 같았다.
머리칼이 살짝 들리며 목덜미를 식히는 그 감촉이,
마치 오래 잊고 있던 안부 인사처럼 다정하게 느껴졌다.
나는 걸음을 멈추고 눈을 감았다.
바람은 뺨을 스치고, 눈가를 지나,
이마와 귀 뒤편까지 부드럽게 감싸주었다.
땀에 젖어 무거웠던 공기가
순식간에 가벼워지는 순간이었다.
그동안 온몸을 누르던 무게가
서서히 풀리는 느낌이 들었다.
그 바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나를 향해 ‘괜찮아’라고 속삭이는 듯했다.
아무 준비도 필요 없었고,
그저 그 순간에 몸을 맡기기만 하면 됐다.
삶이 늘 무겁게만 느껴지던 요즘,
그 바람은 나를 잠시 다른 세계로 데려갔다.
생각해 보면 나는 늘 뭔가를 준비하고,
계획하고, 계산하며 살아왔다.
작은 기쁨조차 ‘조건’ 속에 가두곤 했다.
하지만 바람은 그런 조건을 무시했다.
그저 불어오고, 스치고, 사라졌다.
그리고 그 짧은 찰나에
내 마음을 환하게 열어주었다.
얼마나 오래 서 있었는지 모른다.
바람이 점점 약해지고
다시 여름의 열기가 돌아왔을 때,
나는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발걸음이 가벼워졌다.
무더위 속에서도 웃음이 나왔다.
그 이후로 나는 하루에 잠깐이라도 바람을 맞는다.
창문을 활짝 열고,
발코니에 서서 하늘을 올려다보며,
혹은 집 앞 골목을 천천히 걸으며.
바람이 불면, 나는 그날을 떠올린다.
얼굴에 부딪치던 시원한 감촉,
그리고 아무 말 없이 건네던 위로를.
무더운 여름날, 한 줄기 시원한 바람은
그 자체로 완벽한 선물이다.
그 순간은 돈으로 살 수도,
계획해서 만들 수도 없다.
그저 우연처럼 다가와
내 안의 여름을 식혀준다.
나는 이제 안다.
행복은 멀리 있지 않다는 것을.
그저 바람이 불어올 때
멈춰 서서 느낄 줄 아는 마음,
그게 전부라는 것을.
그리고 오늘도 기다린다.
다시, 얼굴에 부딪치는 바람의 행복을.
by 주디의 작은 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