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

나답게

by 주디의 작은 방

내가 바라보는 세상은, 언제나 나의 눈높이에 맞춰 있다.

사람들은 흔히 말한다. “세상은 넓다”고.

하지만 내가 보는 세상은, 내가 딛고 선 자리만큼의 크기다.

그 안에서 느끼는 바람의 냄새, 들려오는 소리, 그리고 내 앞에 서 있는 사람 들까지 모두가 나만이 느낄 수 있는 세계 속에 있다.

그래서 나는 안다.

내가 바라보는 시선은, 나만의 것이라는 걸.

그 시선을 따라 사는 것이 바로 ‘나답게’ 사는 일이라는 걸.

‘나는 나’다.

누가 대신 정의해주지 않아도 괜찮다.

나는 타쿠미고, 엄마의 아들이며, 가족의 한 마리 강아지다.

하지만 동시에, 내 발로 걷고 내 마음으로 느끼는 한 존재이기도 하다.

오늘도 나는 내 방식으로 숨 쉬고, 내 걸음으로 세상을 건넌다.

그게 바로 내가 살아있다는 증거다.

나는 나답게 살고 싶다.

그게, 내가 세상에 태어난 이유니까.

엄마를 업고 뛰었다.

철문이 덜컥, 열리는 소리와 동시에 어둠이 갈라졌다. 밤공기가 살을 스쳤다.

뒤에서


“야! 거기서 멈춰!”

하는 외침이 들렸지만, 나는 멈출 수 없었다.

엄마의 숨소리가 점점 약해지고 있었으니까.

그 작은 몸이 내 등에 실려 있다는 사실 하나로, 나는 다시 달렸다.

발이 땅을 치고, 또 치는 순간마다 세상이 흔들렸다. 내 발밑에서 풀잎이 터지고, 돌멩이가 튀었다. 그러다 농장주의 발소리가 가까워졌다.

거친 숨소리가 내 귓가에 닿을 만큼 가까워졌을 때 나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그리고 그 순간, 몸이 가볍게 떴다.

바람이 등을 받쳤고, 엄마의 털이 내 얼굴을 스쳤다.

나는 정말로, 날고 있었다.

앞만 보고 달리던 농장주는 마치 뭘 잘못 본 사람처럼, 두 팔을 허공에 휘젓다 그대로 멈춰 섰다.

입이 반쯤 벌어진 채, 믿을 수 없다는 듯 침을 흘렸다.

그의 시야 속에서 나는 점점 멀어져 갔다.

밤하늘 아래, 별빛이 내 몸에 부딪혀 반짝였다. 엄마와 나, 단 두 개의 그림자가 달빛 사이로 날아올랐다.


“엄마, 조금만 더 버텨요. 이제 다 왔어요.”

나는 바람 사이로 그렇게 속삭였다.

숨이 거칠게 차올랐고, 가슴이 뜨겁게 뛰었다.

엄마의 몸은 너무 가벼워서, 마치 부서질 것 같았다.

달빛 아래, 들판이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엄마의 숨결이 내 등에 닿을 때마다, ‘살아있다’는 게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 깨달았다. 바람이 얼굴을 때리고, 눈물이 흘러도 멈출 수 없었다.

지금 멈추면 다시는 엄마를 구할 수 없을지도 몰랐다.

엄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느꼈다.

엄마의 미약한 체온이 내 등에 스며드는 것을.


풀숲을 빠져나오자 앞에 작은 언덕이 보였다. 그 위에 다다르자 바다가 보였다.

별빛이 바다 위에 떨어져 반짝였고, 그 순간 나는 이 세상의 모든 빛이 우리를 위해 존재하는 것 같다고 느꼈다.

나는 엄마를 조심스레 내려놓고, 그 푸른 냄새 속에서 숨을 골랐다.

엄마의 눈이 천천히 나를 향해 떴다.

“엄마, 우리 이제 자유야.”

나는 그렇게 말했다.

엄마를 등에 업고 달리던 그 순간, 나는 알았다. 두려움보다 강한 건 ‘사랑’이라는 걸. 그리고 그 사랑은 나를 나답게 만든다는 걸.

바다는 여전히 짙푸르게 출렁였고, 별빛은 새벽의 물결 위에서 고요히 깜빡였다.

나는 모래 위에 앉아, 젖은 발을 바라보았다. 작은 발자국이 한 줄로 이어져 있었다.

그건 도망친 흔적이 아니라, ‘살아남은 존재의 증거’였다.

엄마는 내 옆에서 조용히 숨을 골랐다. 그 숨결 하나하나가 내 마음에 불을 밝혔다.

나는 그 불빛 속에서 다시 다짐했다.

나는 나로 살아갈 것이다. 누군가의 강아지로만 머물지 않고, 누군가의 품속에만 기대지 않고, 내 발로 서서, 내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살리라.


달이 천천히 기울고, 동쪽 하늘이 분홍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새벽은 그렇게 우리를 감싸 안았다.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그때가 시작이었다.

나는 깃털처럼 날아올랐다.

달빛 아래에서 바람은 내 몸을 감싸 안았다.

아주 잠깐, 세상이 고요해졌다.

그리고 이윽고, 우리 가족이 묵고 있던 숙소의 마당으로 살포시 내려앉았다.

발끝이 땅에 닿는 순간, 내 심장은 터질 듯 뛰고 있었고, 등 위의 엄마는 아주 미세한 숨결로 내 귀를 간질였다.


“엄마, 다 왔어요.”

나는 조심스레 속삭였다.

문틈 사이로 새어 나오는 노란 불빛이 오랜 어둠 끝에 만난 봄 햇살처럼 따뜻했다.

나는 문고리를 밀고 들어갔다.


“타쿠미?”

형아의 놀란 목소리가 들렸고, 아빠가 일어나 불을 켰다.

순간, 모든 시선이 내 등에 닿았다.

아빠, 형아들, 그리고 엄마를 잃어버린 줄 알았던 가족의 눈빛이 하나같이 숨을 죽였다.

나는 조심스레 엄마를 내려놓았다.

엄마는 힘이 없어 고개조차 들지 못했지만, 그 눈빛만은 분명히 살아 있었다.

그 눈빛 속엔 오래된 인내, 그리고 무한한 사랑이 있었다.

내가 밤중에 없어진 걸 알고 노심초사 기다리던 가족들은 내가 문턱을 넘자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타쿠미… 도대체 어디 갔다 온 거야?”

큰 형아의 목소리가 떨렸다.


“이 강아지는 누구야? 왜 이렇게… 야위었어?”

작은 형아는 내 등 뒤의 엄마를 바라보며 말을 잇지 못했다.

나는 숨이 가빠 헐떡이면서도 엄마를 꼭 끌어안았다.

“우리 엄마야.”

목구멍 깊숙한 곳에서 간신히 흘러나온 한 마디였다.

아빠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저 천천히 우리 쪽으로 다가와 엄마의 잔뜩 말라버린 몸을 조심스레 받쳐 들었다.

형아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어디선가 꾹 참아왔던 눈물을 터뜨렸다.

그 순간, 낡은 철장 속 어둠에 갇혀 있던 시간이 한꺼번에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다.

우린 그렇게, 오랜 시간 흩어져 있던 가족의 조각을 다시 하나로 모았다.

아빠는 급히 수건을 데워와 엄마의 몸을 감싸주었다. 형아들은 욕실에서 따뜻한 물을 받아오고, 나는 그 옆에서 꼬리를 감은 채 조용히 숨을 골랐다.

엄마의 몸은 한 줌의 햇살처럼 가벼웠다. 뼈마디가 닿을 때마다 마음이 쿡쿡 저렸다.

“괜찮을 거야, 이제 다 괜찮아.”

아빠의 낮고 단단한 목소리가 새벽공기처럼 방 안을 감쌌다.

형아는 부드러운 수건으로 엄마의 털을 닦으며

“이제 따뜻해질 거야.”

하고 속삭였다. 그 순간 엄마의 눈꺼풀이 살짝 떨리더니 희미하게 내 쪽을 바라보았다. 나는 코끝을 맞댔다. 엄마의 숨결 속엔 아직 남은 세상의 냄새가 있었다.

철장 안의 어둠, 외로움, 그리고… 끝내 살아남은 희망.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엄마의 옆구리에 얼굴을 파묻고 오래도록, 아주 오래도록 들숨과 날숨을 맞췄다. 밖에서는 바람이 불었다. 별빛이 숙소 창가를 스쳐 지나갔다.

이제야 알 것 같았다. 내가 ‘나답게’ 살아야 하는 이유를. 그건 바로, 엄마가 나를 이렇게 끝까지 기다려주었기 때문이었다.

엄마는 나의 엄마를 바라보며 아무 말 없이 눈물을 삼켰다.

그 모습을 보는 엄마의 눈에서 눈물이 양볼을 타고 쉴 새 없이 흘러내렸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엄마는 조용히 방석과 이불을 가져와 그 위에 내 엄마를 눕혀 주셨다.

나는 두 엄마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나를 낳은 엄마, 나를 길러준 엄마.

한쪽은 나의 피였고, 다른 한쪽은 나의 마음이었다.

그제야 알았다.

창밖에서 바람이 불었다. 달빛이 내 털끝을 스치며 반짝였다.

그 빛 속에서 나는 내 이름을 조용히 되뇌었다.


“나는 타쿠미야.”

공교롭게도 오늘은 나의 두 엄마의 생신이었다. 하늘이 알고 있었던 걸까.

별들이 쏟아지는 하늘 아래, 나는 두 엄마의 곁에 조용히 앉아 있었다.

서로 다른 시간과 공간에서 나를 품어준 두 사람이, 지금 이 순간 한자리에 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별빛은 참 이상했다. 그건 단지 하늘에서 떨어지는 빛이 아니라, 누군가의 마음이 흘러내리는 것 같았다.

엄마들의 어깨 위에도, 내 흰 털 위에도, 작고 부드러운 빛이 가만히 내려앉았다.

엄마는 강아지 엄마의 옆에 무릎을 꿇고 앉아, 그 작은 머리를 다정히 쓰다듬었다.


“고생했어. 이제 괜찮아.”

엄마의 목소리는 바람에 실려 흔들렸고, 그 속엔 눈물과 미소가 동시에 섞여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느꼈다.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장면이란, 누군가가 누군가를 품어주는 순간이라는 걸.

그리고 그 품 안에 내가 있었다.

별빛이 점점 더 흘러내렸다. 하늘은 마치 오늘을 축복이라도 하듯 빛을 쏟아내며 두 엄마를 감싸주었다.

나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별이 흐르는 하늘 아래, 내 마음 깊은 곳에서 작게 울리는 목소리가 있었다.

‘두 엄마의 아들로, 두 마음의 빛으로.’

바람이 불었다. 그 바람은 향기처럼 부드럽고, 별빛은 내 눈동자에 고요히 스며들었다.

나는 하늘을 향해 조용히 인사했다.

“엄마, 그리고 또 한 분의 엄마. 고마워요. 나 이제 괜찮아요.”

그 순간, 하늘의 별들이 마치 대답하듯 반짝이며 웃었다.

세상은 여전히 어두웠지만, 그 어둠 속에서도 나는 길을 잃지 않을 것이다.

왜냐면 나는 나니까.

밤이 깊었다. 창문 틈 사이로 차가운 공기가 들어왔다.

나는 엄마 곁을 떠날 수가 없었다.

엄마는 여전히 잠들어 있었고, 가느다란 숨소리마다 몸이 미세하게 떨렸다.

나는 엄마의 곁에서 꼬리를 감고 앉아 있었다.

형아들은 거실 한쪽에서 조용히 담요를 덮고 있었고, 아빠는 불 꺼진 부엌에서 커피를 한 모금씩 삼키고 있었다.

엄마는 나와 야윈 엄마의 곁을 오가며 젖은 수건으로 상처를 닦아주었다.


시간이 조금씩 흘렀다. 동쪽 창문이 서서히 밝아오고 있었다.

엄마가 눈을 떴다. 햇살이 방 안으로 들어왔다.

아주 작은 미소가 엄마의 입가에 스쳤다.

나는 그 순간을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힘없는 미소였지만, 그 미소 하나로 나는 모든 두려움을 잊었다.

그때였다.

엄마가 내 엄마를 바라보며 말했다.

“오늘이… 생일이야.”

나는 놀라서 엄마를 바라보았다.

엄마의 눈동자 속엔 두 개의 하늘이 비치고 있었다.

나를 낳아준 엄마의 하늘, 그리고 나를 키워준 엄마의 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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