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위로
나는 호박죽을 참 좋아한다.
본죽에서 나오는 새알이 동글동글 들어 있는 호박죽도 좋고, 슈퍼에서 파는 팩 죽도 마다하지 않는다.
호박죽이라면 다 좋다.
그런데 그 모든 호박죽 중에서도,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건 단연코 엄마가 해주는 ‘호박죽’이다.
엄마는 늘 늙은 호박을 사다 손질하신다. 아니, '사다'가 아니라 '받아' 손질하신다.
호박은 외삼촌이 직접 농사지은 늙은 호박이다.
고향 뒷밭에 심은 호박 넝쿨이 여름 내내 햇볕을 머금고 자라, 가을이면 큼직하고 단단한 열매가 되어 집으로 온다.
엄마는 그 호박을 받으면 곧장 껍질을 벗기고, 씨를 긁어낸다.
그 손길엔 동생이 보내온 정성과, 그것을 소중히 여기는 엄마의 마음이 담겨 있다.
호박을 푹 찌는 동안 주방은 달큼한 냄새로 가득 찬다. 그 냄새만으로도 마음이 따뜻해진다.
곱게 으깨 끓일 때, 엄마는 새알심 대신 찹쌀을 넣는다.
가끔은 밀가루 반죽을 조물조물 떼어 밥알처럼 넣어주시기도 한다.
그 투박한 밀가루 덩어리들이 입안에서 말캉하게 퍼지며 고소한 맛을 낼 때면, 나는 문득 어릴 적 그릇을 들고 식탁에 앉아 있던 내 모습이 떠오른다.
“뜨거우니까 후후 불어 먹어.”
엄마의 그 말이 아직도 귀에 맴돈다.
엄마의 호박죽 색은 본죽에서 나오는 선명한 샛노란 색과는 좀 다르다. 더 맑고 투명한 노란빛이다.
늙은 호박 특유의 은은한 색이 물에 퍼지듯 배어 나와, 어쩐지 ‘엄마의 정성’ 같은 맛이 난다.
새알심이 꼭 들어가야 한다는 사람들도 있지만, 나는 찹쌀밥알이 들어간 엄마표 호박죽이 훨씬 더 좋다.
그건 단순한 맛이 아니라, 추억이니까.
아이를 낳고, 어느덧 큰아이는 고등학생이 되었고 작은아이는 내년이면 중학생이 된다.
엄마가 나를 돌보던 그 시절의 나이가 이제 내가 되어, 나는 또 누군가의 엄마로서 살아가고 있다.
하루 세끼 밥을 짓고, 아이들의 감정과 시험을 챙기고, 학교 행사와 엄마들 모임에 얼굴을 비추며 정신없이 산다.
때로는 어른인 것이 버겁다. 모든 것을 알아야 하고, 참아야 하고, 내 감정은 잠시 미뤄야만 하는 날들이 반복된다.
그런데 그런 날들 속에서도, 엄마의 호박죽을 먹는 순간만큼은 이상하게도 마음이 느슨해진다.
따뜻한 호박죽이 목을 타고 천천히 내려가면, 그제야 숨을 고르게 된다.
아, 나는 아직도 엄마의 음식이 필요한 아이구나.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엄마 앞에서는 어린아이로 돌아가는 그 감정이, 이 호박죽 한 그릇에 고스란히 담겨 있는 것이다.
엄마는 말하지 않는다. ‘호박죽 해줄까?’ 대신 그냥 끓여놓고 냄비째 내게 보내신다.
전화를 하면 엄마는 묻는다.
“밥알은 괜찮았어? 너무 퍼지진 않았지?”
그 말 안에는 수많은 걱정과 안부와 사랑이 숨어 있다.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
“응, 완전 맛있었어.”
라고 답한다.
살다 보면 입맛이 바뀌기도 한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믿는다.
적어도 엄마의 호박죽만큼은 평생 어린아이의 입맛으로 좋아할 것이라고. 그건 단순한 음식이 아니니까.
기억이고, 사랑이니까.
오늘 저녁엔 나 혼자 호박죽을 데워 먹었다. 우리 아이들은 죽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이 따뜻하고 진한 호박죽의 위로는 오롯이 나의 몫이었다.
큰 숟갈로 떠먹는 동안, 마음속에 조용히 퍼지는 감정이 있었다.
나도 누군가에게 이런 음식이었으면 좋겠다고.
뜨겁지만 부드럽고, 달큼하지만 오래가는 맛처럼, 누군가의 기억 속에 오래도록 남는 존재였으면 좋겠다고.
엄마의 호박죽은 그저 음식이 아니다.
그건 내게 돌아갈 수 있는 ‘처음’이고, 아무 말 없이 안아주는 ‘품’이다.
나는 오늘도 그 노란빛을 숟가락 가득 떠먹으며, 아주 오래전 엄마의 부엌을 마음속에 불러본다.
by 주디의 작은 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