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이는 딱 여기까지.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그날 나는 그렇게 적었다. 그리고 그 말이 주는 냉정한 위로에 잠시 머물렀다.
이 말은 익숙한 진리처럼 보이지만, 가끔은 무기처럼 느껴진다.
관계라는 무게에 지칠 때, 이 문장은 나에게 핑계가 되어주기도 했다.
사람은 원래 혼자 살 수 없다고, 그러니 아프더라도 견뎌야 한다고. 그래야 더 나은 어른이 된다고.
나는 아이를 키우며 또 다른 사회를 만났다.
그 사회는 다정함과 비교, 배려와 시기, 위로와 배신이 동시에 존재하는 복잡한 구조였다.
친구 엄마들 사이의 관계는 언제나 ‘아이’를 매개로 맺어진다. 아이의 이름으로 시작된 인사는 곧 내가 누구인지, 어디까지 보여줘야 할지, 어떤 거리에서 멈춰야 할지를 끊임없이 탐색하게 만든다.
한때 나는 누군가를 내 편이라 믿었다. 내 아이와 그 아이가 친구니까, 우리도 자연스레 가까워졌고, 종종 긴 메시지를 주고받았다.
아이의 일상부터 남편의 일까지 속삭이며, 그 관계는 마치 오래된 친구 같았다.
나는 조심스럽게 마음을 건넸고, 그도 받아준 것 같았다.
그런데 문득, 내가 보지 못한 곳에서 그가 누군가의 편이 되어 있는 걸 보았을 때, 마음 한쪽이 조용히 무너졌다.
그 순간을 아무렇지 않게 넘기기엔, 내가 그에게 걸었던 신뢰가 너무 컸다.
아마 그도, 그의 방식대로 살았을 뿐일 텐데.
나는 그를 오해했고, 그는 나를 넘겨짚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우리는 점점 멀어졌고, 어느 날부턴가 서로의 소식에 무관심해졌다.
이제와 돌아보면, 그 감정은 배신이라기보다 기대였고, 상처라기보다 미련이었다.
내가 그에게 바랐던 것은, 결국 내가 나 자신에게도 주지 못했던 ‘일방적 믿음’이었는지도 모른다.
관계는 그렇게 삐걱이며 끝났고, 나는 홀로 많은 밤을 반성처럼 통과했다.
학교에 다닐 때도 그랬다.
누구와 친한지, 누가 내 이야기를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 그런 것들에 마음을 썼다.
직장에서도, 모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어디서든 우리는 끊임없이 줄을 서고, 줄 밖으로 밀려나는 불안을 견디며 산다.
인간이 많아졌다는 것은, 관계도 많아졌다는 뜻이고, 그 안에 피로도도 늘어난다는 말이다.
그래서 이제는, 조금은 가벼워지기로 했다. 가벼움이란 무책임함이 아니라, 나를 지키기 위한 거리 두기다.
과도한 애정도, 지나친 기대도 내려놓은 채, 적당한 관심과 정중한 선의로 관계를 유지하는 것.
더 많이 기대하지 않기 때문에 실망하지 않고, 무겁게 얽히지 않기 때문에 오래 머무를 수 있는 관계.
‘우리 사이, 딱 여기까지.’
이 말은 차갑지만, 때로는 따뜻하다. 서로를 구속하지 않겠다는 약속처럼 느껴진다.
내가 당신을 버린 것이 아니라, 우리가 우리를 지킨 거라고. 그렇게 생각하니, 용서도 가능해졌다.
예전의 나도, 그 사람도, 그 관계도.
살면서 우리는 수많은 관계를 만들고, 잃는다. 어떤 관계는 계절처럼 스쳐가고, 어떤 관계는 평생 남는다.
그 모든 순간들이 모여 지금의 나를 만든다. 그러니 이제는 조금 다르게 살아보려 한다.
얽매이지 않고, 흐르듯이. 다정하되 무겁지 않게. 가볍되 진심을 잃지 않게.
관계의 가벼움, 그 안에 담긴 묵직한 진심을 이제는 안다.
그리고 오늘, 나는 또 한 걸음 가볍게 걸어 나아간다.
by 주디의 작은 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