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 오전 도서관에는
저 성장시대의 늪에 우리 모두 빠져있는 걸까?
아니면 꿈을 찾아 또 다른 길을 닦고 있는 것일까?
그냥 책 읽는 게 너무 좋아서?
평일오전 도서관에는 좌석이 없을 정도로 어른들이 많이 앉아있다.
점심시간이 되면 천 원 올라 육천 원 하는 점심급식은 줄을 길게 늘어서서 사 먹어야 한다.
집에 있던 집순이 아줌마인 나도 며칠 전까지 회사를 다녔을 법한 중년의 아저씨도 그리고 머리가 하얗게 센 할머니 할아버지도 참 많다.
책도 보고 노트북도 하고 자기 개발 공부도 하며 다들 열심이다.
나는 집을 좋아한다. 그리고 집 밖에 나가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인간관계에서 오는 피로감이 나를 너무 힘들게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집안에 있는 것을 좋아한다.
그러나 집 다음으로 편한 곳이 도서관인 것 같다.
도서관이 휴관을 하지 않는 한 내가 원하는 시간에 와서 원하는 시간에 갈 수 있고 오롯이 모르는 사람들이라서 각자 남들 시선에 신경 쓰지 않고 자기 할 일만 할 수 있다.
나는 고등학교 시절에도 도서관에 많이 갔었다.
지금은 학교가 강남으로 자리를 옮겼지만 내가 다니던 고등학교는 종로구에 있던 여고였다.
학교를 끼고 쭉 길 따라 들어가다 보면 막다른 길에 도서관이 있었다.
오래된 나무와 정갈한 정원이 참 아름다웠던 도서관이었다.
나는 그곳에서 여름이면 세일러복 스타일의 흰 반팔상의에 감색 후리아 치마인 하복을 입고 봄가을에는 허리춤에서 치마를 두 번 세 번 접어 올려 무릎바로 위로 치맛단을 맞춘 감색 동복을 입고 친구들과 재잘거리며 참새가 방앗간에 드나들 듯 도서관에 가곤 했다.
가는 길에 하나 있던 분식점에서 떡볶이와 라면을 사 먹는 것도 쏠쏠한 재미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너무 운치 있던 그 도서관은 아름드리 정원에 나무가 가득했던 그리고 서가에는 책들이 가득 차 있던 공부할 책상은 니스칠해진 오래된 나무가 반들반들 촉감이 좋았던 하늘을 보며 막연한 꿈을 꾸던 나무 사이 시끄럽게 지저귀며 날아다니는 참새를 보며 종종 웃음 짔던 열일곱 살의 나와 친구들이 있었다.
물론 도서관 벤치에 앉아 친구들과 놀기도 하고 공부도 열심히 했지만 도서관에 가고 싶었던 제일 큰 이유는 바로 매점에서 판매하는 우동이 너무너무 맛있었기 때문이다.
깔끔한 육수와 통통한 우동사리와 무심히 올려진 쑥갓 한 줄기가 어쩜 그렇게 맛있었는지 지금 생각해도 군침이 돈다. 우동이야기를 하니까 그때 도서관이 그대로 있다면 그리고 매몰차고 당당하게 우동 한 가지만 팔던 매점이 그래도 있다면 우리 아이들을 데리고 가서 꼭 다시 우동을 사 먹여 보고 싶다.
생각해 보니 그때는 도서관에 오고 가며 친구들과 보내는 시간들과 그곳 도서관의 포근하고 고즈넉한 정취와 원 메뉴라서 심심했지만 삼십여 년이 다되도록 기억나는 그 우동맛에 도서관을 매일 갔던 것 같다.
비록 지금은 같이 갈 친구도 매점에서 파는 맛있는 우동도 없지만 나는 종종 집 근처 도서관을 찾아간다.
니스칠해진 반들반들한 책상도 나무사이를 짹짹 거리며 빠르게 지나가는 참새도 없어졌지만 도서관에 간다.
나는 지금 도서관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
열일곱 살의 소녀 J가 마흔일곱의 J에게 속삭인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어? 많이 힘들지는 않았니?"
젖살이 포동포동했던 J의 얼굴이 이젠 갱년기 나잇살로 채워져 있다.
일흔일곱 살의 J는 어떤 모습일까?
얼굴과 목엔 주름살이 있겠지? 염색 안 한 머리가 하얗게 세 있으려나?
현재의 J가 일흔일곱 살의 J에게 말을 걸어본다.
"지금은 어때? 좀 괜찮아?
막무가내였던 십 대 시절을 지나 아름다웠던 이십 대를 지나 출산과 육아에 지쳐있던 삼십 대를 지나 아이들 사춘기와 입시준비로 격렬한 사십 대를 보내고 있는 나에게 갱년기가 올 듯 말 듯한 불안정한 나에게 토닥토닥 말을 걸어본다. 그리고 오십 대 육십 대 조금은 쉬어가도 괜찮을 칠십 대의 나에게 말해 본다.
그리고 힘없고 주름져 있을 나의 얼굴을 어루만져본다.
넌 괜찮을 거라고. 힘들었지만 이젠 힘들지 않을 거라고 이젠 쉬면서 천천히 가도 된다고 말이다.
도서관에서 말을 한다. 어제의 나에게 지금의 나에게 그리고 미래의 나에게.
도서관은 나에게 참 따뜻한 공간이다.
by 주디의 작은 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