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모든 핑크

내가 핑크색을 좋아하는 이유.

by 주디의 작은 방

나는 핑크색을 좋아한다.
베이비핑크처럼 부드러운 것도 좋고, 막 꽃잎이 터질 듯 선명한 핫핑크도 좋다.
어쩌다 날카로울 만큼 쨍한 핑크를 보면 마음이 조금 울컥할 때도 있다.

핑크는 나에게 단순한 색이 아니라, 오래도록 나를 지켜준 작은 확신 같은 것이다.


평생을 우유부단하게 살아왔다.
누군가 “뭐 먹을래요?” 하면 “아무거나요.”
“이게 더 나은가요?” 하면 “그쪽이 보기 좋은 걸로요.”
대부분의 선택을 넘기고, 머뭇거리며, 결정보다 양보가 편한 사람처럼 살아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핑크색 앞에서는 단호해진다.
조금은 웃기고, 조금은 진심이다.


내 핸드폰도 핑크색이고 손목에 차는 워치도 핑크이다.
얼마 전 백화점 지하 1층에서 발견한 핑크색 도마는 두 개를 사가지고 집으로 데리고 왔다.
가방도 두어 개는 핑크이고, 지나가다 우연히 마주치는 굿즈가 내 맘에 드는 핑크색이면 망설이지 않고 집어 든다.

핑크를 향한 이 사랑이 언제부터였는지 정확히 기억나진 않는다.
하지만 지금도 옷장을 열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핑크빛 물결들이다.

핑크색은 나를 웃게 한다.

피곤한 아침, 얼굴이 창백해 보일 때 핑크 니트를 꺼내 입으면 조금은 괜찮아지는 기분이 든다.
그럴 땐 옷이 나를 입는 것 같다.
단지 예뻐서 좋아하는 게 아니다.

나도 모르게, 핑크 앞에서는 마음을 펴고 조금은 또렷한 사람이 된다.


한 번은 잠깐이었지만 그림을 가르쳐주시던 선생님께서 내게 물으셨다.
“주디 씨는 무슨 색 좋아하세요?”

나는 망설이지 않았다.
“핑크요.”
그때만큼은 정말이지 내 목소리가 또렷했다.
그 어떤 색도 떠오르지 않았다.
핑크는, 말 그대로 나의 색이었다.


누군가는 웃을지도 모른다.
어른이 되어서도 핑크에 집착하는 게 유치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나에게 핑크는 하나의 태도다.

나를 사랑하는 연습, 나를 표현하는 용기, 그리고 나를 선택하는 작은 단호함.


핑크를 좋아한다고 말하면 마음이 가벼워진다.
그것 하나만은 분명하게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핑크를 입는다.
우유부단했던 나에게 핑크는 처음으로 "나는 이걸 좋아한다"라고 말하게 해 준 색이다.

베이비핑크처럼 다정하게,
선명한 핑크처럼 당당하게,
때로는 날 선 핑크처럼 솔직하게 살아가고 싶다.

내 하루에도, 당신의 하루에도
조용히 물드는 핑크빛이 있기를 바란다.




by 주디의 작은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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