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 질 녘 저녁노을

추억여행

by 주디의 작은 방

해 질 녘이 되면 나는 자꾸만 골목을 떠올린다.

아주 오래전, 내가 살던 동네의 좁고도 깊은 골목. 딱히 예쁜 것도, 특별한 것도 없었지만 내 마음엔 세상에서 가장 포근한 공간으로 남아 있다.


하늘이 붉게 물들면 아이들은 자연스레 골목으로 나왔다.

마치 누가 부른 것도 아닌데 동시에 나타난 것처럼, 누군가는 공기놀이를 시작하고 누군가는 고무줄을 걸었다. 삐걱대던 철대문 너머로 밥 짓는 냄새가 새어 나왔고, 어떤 집에서는 된장국 냄새, 또 어떤 집에서는 고등어를 너무 센 불에 구운 듯한 탄내가 피어올랐다.

이상하게도 그 탄내가 좋았다. 배가 고픈 것도 아닌데도 괜히 그 냄새를 맡으며 군침을 삼켰다.


고양이들처럼, 우리는 냄새를 따라 한 집 한 집에 마음을 기댔다.

부엌에선 엄마들이 바쁘게 냄비를 젓고 있었고, 마당에는 빨랫줄이 드리워져 있었다.

동네 언니 오빠들이 만들어 준 종이비행기는 바람을 타고 저녁노을 사이로 날아갔다.


저녁노을이 하늘에 분홍빛 물감을 풀어놓으면, 우리는 그게 마치 진짜 하늘이 물든 거라 믿었다.


그렇게 우리는 하루의 끝을 함께 보냈다.


하지만 골목은 영원하지 않았다.

불이 하나둘 꺼지던 어느 날, 우리 가족도 이사를 갔다.

커다란 이삿짐 트럭이 골목을 빠져나가는 순간, 나는 마음 한쪽을 거기 두고 온 듯했다.


지금 나는 아파트에 산다. 편리하고 단정한 삶.

그러나 이따금,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며 생각한다.

그때 그 골목엔 엘리베이터는 없었지만,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이웃들이 있었다는 것을.


해 질 녘, 하늘이 다시 분홍빛으로 물들 때면 나는 또 그 골목을 떠올린다.

불그스름한 하늘, 연기처럼 피어오르던 밥 냄새, 아이들의 웃음소리. 마치 어제처럼 또렷이 떠오른다.


나는 여전히 그 시간으로 돌아간다. 그곳에는 내가 있다.


고무줄을 하다 넘어져도 다시 웃던 아이, 저녁이 늦도록 돌아오지 않아도 엄마가 골목 어귀에서 기다려주던 시절의 나.

이제는 없는 골목, 하지만 마음속 어딘가에는 여전히 불이 켜져 있다.


해 질 녘 저녁노을이 찾아올 때면, 그 불빛 아래에서 나는 다시 어린아이가 된다.





by 주디의 작은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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