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에 던져진 마음.
한때 나는 나를 잃은 사람이었다.
누군가의 며느리로, 아내로, 엄마로 살아야 했던 시간들 속에서
나는 점점 흐려지고 있었다.
때는 겨울이었다.
매서운 바람이 얼굴을 때릴 때면, 내 마음 안쪽에도 비슷한 결이 있었다.
차가운 말들, 이해할 수 없는 시선, 이유 없이 나를 밀어내는 어떤 힘.
그 모든 것 앞에서 나는 왜 자꾸 작아져야만 했을까.
아이들은 어렸다.
엄마라는 단어가 무겁고, 한없이 연약하게만 느껴지던 날들.
그 무게를 홀로 견디며, 나는 조용히 침잠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내 마음을 누구도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했다.
남편은, 늘 그랬다.
그저 곁에만 있는 사람.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무언가 말해도 전달되지 않는 벽처럼, 그는 그저 눈치를 보며 흔들리고만 있었다.
그래서 나는 더 조용해졌고, 더 많은 것을 삼키게 되었다.
그런 날들이 계속되다, 결국 나는 터져버릴 것 같았다.
내가 나로 존재할 수 없는 삶.
마치 유리창 너머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 같은 감각.
내가 있는 곳은 세상의 바깥이라는 느낌.
그 모든 것이 한겨울의 회색빛 하늘처럼, 나를 질식하게 만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이 말했다.
"어디든 가자. 따뜻한 데로."
오키나와였다.
한겨울, 우리나라의 겨울이 제법 깊어진 어느 날,
우리는 아이들을 데리고 그곳으로 떠났다.
몸이 아니라 마음이 먼저 얼어붙어 있던 그 시기에
햇살이 있는 곳으로 가보자고, 남편은 말했다.
비행기에서 내렸을 때, 따뜻한 공기가 부드럽게 코끝을 스쳤다.
겨울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만큼 포근한 공기.
나는 그 순간 울고 싶었다.
그저 따뜻하다는 이유만으로도, 마음 한편이 무너져 내렸다.
렌트한 차를 타고 우리는 바다를 향해 달렸다.
도로 옆으로 끝없이 펼쳐지는 코발트빛 바다.
창문 너머로 흘러가는 햇살과 파란 하늘.
그리고 남편이 문득 말했다.
"지금까지 힘들었던 거, 다 바다에 던져버려."
그 말이 너무 간단해서, 오히려 깊었다.
아무렇지 않게 툭 건넨 말이었지만,
그 말 안에는 모든 시간이 담겨 있었다.
우리가 함께 겪어온 수년간의 눈치와 침묵, 버티기와 회피,
그리고 그 안에서 내가 얼마나 아팠는지를
그제야 남편이 조금은 알게 된 걸까, 싶었다.
차창을 열었다.
바람이 얼굴을 스쳤고, 머리칼이 흩날렸다.
나는 눈을 감고 바다를 향해 마음을 던지는 상상을 했다.
무거웠던 기억들, 말하지 못했던 억울함,
버텨온 시간 속에서 쌓인 눈물들.
그 모든 것을, 보이지 않는 손으로 조심스럽게 들어, 조용히 바다로 던졌다.
다 던져졌을까?
아니, 아직 아닐지도 모른다.
마음이라는 건 그렇게 쉽게 비워지지 않으니까.
하지만 그날 나는 알았다.
적어도, 던져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사람이 곁에 있다는 것.
그 말 한마디가, 나를 다시 나로 숨 쉬게 만든다는 것을.
여전히 나는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다.
가끔은 사소한 말 한마디에도 흔들리고,
어떤 날은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간 듯 아득해진다.
하지만 이제 나는 안다.
내 안에 나를 지켜낼 작은 힘이 생겼다는 걸.
내 마음을 받아줄 수 있는 바다가 있다는 걸.
그리고, 언젠가 다시 겨울이 찾아와도,
나는 그 바다를 기억하며 조금은 더 단단하게 걸어갈 수 있을 것 같다.
오키나와의 햇살 아래에서,
나는 나를 조금 되찾았다.
정확히 말하면, 잃지 않으려 애쓰는 방법을 배웠다.
그래서 이제는,
나를 위한 따뜻한 여행을
때때로 떠나보려 한다.
그 바다를, 그 말을,
그 겨울의 햇살을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내 마음은 다시 따뜻해질 수 있으니까.
by 주디의 작은 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