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장의 보이지 않는 문턱, 등록

제도 뒤에 숨은 보이지 않는 차별에 대하여

by 유영

수영을 배우는 사람은 누구일까. 물을 좋아하는 사람일까, 건강을 챙기려는 사람일까, 아니면 휴양지에서 멋지게 헤엄치는 모습을 꿈꾸는 사람일까. 다양한 대답이 존재하지만, 이들 모두에게는 공통점이 한 가지 있다. 수영장 ‘등록’이라는 문턱을 통과한 운이 좋은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수영을 배우고 싶어 하는 사람에 비해 공공수영장의 규모는 늘 제한적이다. 그래서 매달 등록 시기가 되면 작은 전쟁이 벌어진다. 인터넷 접수 창이 열리는 순간, 말 그대로 1초 만에 마감이 된다.

“57초, 58초, 59초, 땡!”

9시 정각에 맞춰 클릭을 했다고 생각했지만, 화면에는 이미 ‘접수 마감’이라는 문구만 떠 있다. 도대체 누가 성공하는 것인지 궁금해진다. 같은 레인의 누군가가 재등록에 성공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괜히 부러운 마음도 든다.

그래도 시도라도 했으면 다행이다. 내가 다니는 공공수영장의 신규 접수는 9시에 시작한다. 회사원에게 이 시간을 맞추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출근해서 등록을 하겠다고 기다리고 있으면, 꼭 그 시간에 회의가 잡히거나 상사의 호출이 이어진다. 물론, 이럴 때를 대비해 남편에게도 부탁을 해 둔다. 남편이 등록에 성공했다는 소식을 전해오면, 새삼 결혼하기 잘했다는 생각마저 들면서 남편이 제일 멋있어 보인다. 반대로 둘 다 실패했다면, 그날부터는 ‘새로고침 전쟁’이 시작된다. 혹시 누군가 취소하지 않았을까 싶어 수시로 접속해 자리를 확인한다. 이때의 간절함이 한 달 내내 유지된다면, 아마 수영강습에 결석하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다.


등록 기간이 되면 신규 회원과 기존 회원 사이의 보이지 않는 갈등도 야기된다. 기존 회원은 "계속 배우게 해달라"고 말하고, 신규 회원은 "한 번이라도 시작하게 해달라"고 말한다. 누군가의 배움의 연속성을 지키는 장치는, 동시에 누군가의 시작을 늦추는 장벽이 되기도 한다. 나 역시 몇 년 전, 해외에서 돌아와 동네 공공수영장에 신규 등록을 하려 했던 적이 있다. 하지만 기존 회원에게 우선 재등록기회가 있었기 때문에, 누군가 그만둔 자리가 나야만 등록이 가능했다. 몇 달을 기다려도 자리는 나지 않았고, 점점 지쳐갔다. 그때 남편이 농담처럼 말했다.

“신문 부고란이나 이삿짐 보이면 가서 물어볼까? 수영 등록하셨었는지.”

웃어넘겼지만, 그 말이 완전히 농담처럼 들리지는 않았다. 수영장 레인 하나를 차지하기 위해 누군가의 부재를 기다려야 할 만큼 절박한 일이 되어버린 현실이 씁쓸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어느 날 갑자기 신규 등록 인원이 크게 늘었다. 알고 보니 ‘기간 수료제’가 도입되어, 기존 회원도 1년이 지나면 우선 등록권이 사라지도록 바뀐 것이었다. 덕분에 나는 다시 수영을 시작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막상 등록을 하고 나니 또 다른 걱정이 생겼다. 1년 뒤에는 나 역시 다시 신규 등록을 해야하기 때문에, 한시적 안도감 위에 불안이 쌓여갔다.


또한, 등록 기간에는 세대간 갈등도 나타난다. 예전에는 수영을 등록하기 위해 새벽부터 대기하여서 현장에서 접수를 하였다. 이 경우 아침잠이 적은 어르신들이 유리하였다. 그러나 지금은 대부분 인터넷 접수로 바뀌었다. 더 편리해졌지만, 그 편리는 모두에게 공평하게 작동하지는 않았다. 컴퓨터와 스마트폰이 익숙하지 않은 어르신들에게는 오히려 더 높은 장벽이 되었다. 그래서 수영장 등록에 실패하여 한동안 보이지 않던 어르신들 “우리 아들이 인터넷으로 수영 등록 해줬어.”라는 자랑섞인 말과 함께 어느 날 다시 나타나기도 한다.

내가 다니는 공공수영장에는 한때 매크로를 이용한 자동 접수를 막기 위해 인터넷 등록 시 간단한 산식 입력을 도입한 적이 있었다. 예를 들어 '7+5'의 정답을 입력하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이 제도는 손과 셈이 느려진 어르신들께서 "칠 더하기 오는 뭐지~답은 12"라고 생각하며 정답을 입력하기 위해 돋보기를 고쳐 쓰고 자판을 더듬는 그 몇 초 사이에, 이미 등록의 자리는 젊은이 차지가 돼버렸다. 이 제도는 수 많은 항의를 받고 결국 사라졌다. 더 나은 시스템이, 더 공정한 것은 아니었다.


우리는 제한된 시설을 이용할 때 불합리한 차별을 하는 것이 문제라는 것을 알고 있다. 과거 미국과 영국 등 서구 사회에서는 수영장 출입 시 인종과 성별에 따른 차별이 존재하였다. 남성과 여성이 각각 다른 날짜에 수영장에 입장하기도 하였고, 백인과 흑인이 이용하는 수영장을 분리하기도 하였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는 잘못된 차별로 인식되어 현재는 폐지되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이러한 노골적인 차별선을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보이지 않는 새로운 장벽을 만들고 있다는 것은 미쳐 깨닫지 못하고 있는 걸 아닐까. 제한된 수영장을 이용할 수 있는 사람을 구민 우선 등록제나 인터넷 선착순 접수 등의 방식으로 결정함에 따라 '거주지'나 '디지털숙련도' 등에 따라 보이지 않는 차별선을 긋고 있는 것을 말이다. 그 선이 이 지금은 단지 ''운이 좋은 사람'이라는 명목 뒤에 숨어 잘 보이지 않을 뿐이다.


그러나 공공수영장의 수를 늘리는 것은 예산이나 사업의 우선순위 등 여러가지 이유에서 종종 난관에 부딪힌다. 우리 동네의 새로짓는 주민편익시설에 당초 수영장이 들어올 계획이었다. 그러나 그 계획은 구청장이 바뀌면서 '한정된 공간과 예산의 효율적 활용 방안을 고심한 끝에 보다 많은 주민들이 보편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편익시설 설치방안을 추진'하기 위해 목욕탕으로 변경되었다. 코로나가 창궐하면서 동네 목욕탕들도 사라졌기 때문에 더 많은 사람을 위한 공립목욕탕이 만들어졌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수영장이 늘어나야 수영하는 사람수도, 물 속에서 걷는 사람도, 아쿠아로빅을 하는 어르신도 늘어날 수 있는게 아닐까. 또한, 수영장도 만들고 목욕탕 시설도 같이 한켠에 만드는 선택지는 없었는지 의문이 든다. 수영장이 제공하는 건강 증진과 수영 교육이라는 공익적 가치가 '관리의 편의성'에 밀려난 것은 아닌지 아쉬움이 남는다.


더욱이 상대적으로 저렴하고 시설이 좋은 공공수영장은 단순히 취미를 위한 체육시설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다. 익수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어릴 때부터 수영을 배우는 것이 중요하지만, 모든 아이에게 그 기회가 균등하게 주어지지는 않는다. 비싼 어린이 수영장이나 최신식 아파트 단지의 수영장 시설을 이용할 수 없는 아이들에게, 공공수영장은 생존의 기회를 평등하게 제공받을 수 있는 유일한 선택지다. 사립 수영장에 등록이 제한되는 장애인에게는 수영이라는 새로운 재능을 발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수도 있고, 사회적으로 고립될 가능성이 높은 동네 어르신들에게는 수영 후 담소를 나눌 수 있는 건강한 사랑방을 돌려주는 장소이다.

이들에게는 공공수영장이 생존의 문제와 직결되어 있지만, 누군가는 여전히 물에 들어가기 전에 문턱에 걸려 멈춰 서 있다. 수영을 배우기 위한 물에 들어갈 수 있는 기회를 모두에게 공평하게 제공할 수 있도록 문턱을 낮추기 위해, 공공수영장 수를 늘려가는 방안에 대한 더욱 적극적인 고민이 필요하다. 그래서 언젠가 이 치열한 등록 전쟁이 추억이 되어, 우리 모두가 진정한 의미의 '운 좋은 사람들'이 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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