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를 데리고 오마카세 갔다 왔다. 지금까지 내 돈으로 오마카세를 먹어본 적은 없는데. 엄마에게 경험을 선사하기 위해 내 돈을 쓰려고 하니 여러 감정이 들었다. 반성. 부모님한테 제일 잘해야 하는 건데. 나를 위해 쓸 때는 몰랐던 감정이다. 이게 부모와 자식의 차이일까?
매우 고된 하루의 끝. 자취방 이사를 하는 과정에서 당근거지를 두 명이나 만났더니 인류애가 박살 났다. 완전히 방전된 상태로 엄마와 오마카세로 출동했다.
식당에는 세 팀이 왔다. 커플하나, 가족하나, 그리고 엄마와 나. 흥미로웠던 건 초등학생 아이의 생일 기념으로 회동한 가족이었다. 고작 10살짜리 아이를 이런 고급 식당에 데려온 그 가족이 나에게 큰 영감을 주었다. 그 어린 나이에 고급문화를 경험하는 아이는 커서 뭐가 될까? 계속 책을 보는 아이를 보며 엄마가 내게 말했다. 어릴 때 너의 모습이라고.
요즘은 어느 식당을 가도 인당 3만 원은 우습게 나온다. 간에 기별도 가지 않는 주먹보다 적은 양의 3만 원짜리 파스타가 허다하다. 물론 맛있긴 하지만 비싸다는 느낌은 어쩔 수가 없다. 그런데 오늘의 인당 10만 원짜리 식사는...
"와 엄마... 돈 하나도 안 아깝지 않아?"
"그러니까... 너무 감동적이고 엄청난 식사였어. 세상에 이런 게 있다니."
서울에서 살아남는 식당들에게 맛은 당연한 덕목이고, 우리가 오늘 이렇게까지 만족한 건 맛을 넘어 다른 것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오늘의 상황, 타이밍, 그리고 모든 것이 우리의 감수성을 제대로 자극했다.
나는 요즘 예술에 목이 마른 상태. 음식도 예술이다. 오감을 활용해서 즐기는 것이니까. 심지어 음식은 '맛'도 있잖아? 다른 예술품들과 달리 먹을 수가 있어!
음식은 그저 위로 들어가 소화되어 에너지를 내는 의미만 있는 것이 아니다. 저 요리사가 이렇게 멋진 초밥 하나를 만들기까지 노력했던 시간이 담겨 있다. 그러니 예술 작품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예술의 정의는 "지나치게 잘 만든 것을 예술이라 한다."
이 초밥도 그러하니, 예술품이라 할 만하다. 초밥 하나의 이면에 있는 그 노력들이 보이면 기꺼이 10만 원을 내고 먹는 거고, 감수성이 부족하다면 세일에 세일을 거듭한 고무고기를 씹으면 된다. 세상에 정답은 없다. 다만 나는 아름다운 걸 먹고 싶다.
90분 동안 천천히 나오는 음식을 한껏 즐기며, 너무나 행복한 미식 시간을 가졌다. 이런 시간이 주기적으로 필요한 이유는 마음을 정화하고 감수성을 예민하게 만들어 주며, 일종의 명상의 시간을 갖게 하기 때문이다. 이리저리 치였던 내면의 예술가를 치유하는 시간이랄까? 무뎌진 감정을 섬세하게 만들어주고 더 즐거운 경험을 하고 싶은 열망을 갖게 하는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