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인간의 ‘알고 싶어 하는 욕구' 뒤에는 불안이 있다.
우리가 세상을 잘 모르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예측이 되지 않으면 통제할 수 없고, 통제할 수 없으면 불안하다.
원시인 시절부터 인간은 계속 ‘왜 저런 일이 일어났지?’, ‘저 소리의 정체는 뭘까?', ‘해가 왜 졌지?'
따위의 것들을 설명하기 위해 신화를 만들고, 종교를 만들고, 철학을 만들고, 과학을 만들어왔다.
나는 세계사, 국제정세, 금리, 환율의 흐름을 좋아한다. 너무 빠르고 복잡하게 변하는 세상에 살고 있기 때문에, 판을 내가 읽고 있지 않으면 뒤처지고, 휩쓸릴 것 같은 불안이 든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지적 허영을 좋아하고, 좋아함을 넘어 필요로 한다.
알면 설명할 수 있고, 이해하며, 통제할 '수도' 있다. 그러면 최소한 내 삶의 방향을 설정할 '가능성이' 생긴다. 그러면 안정을 찾을 수 있고, 휘둘리지 않는 사람이 된 것 같은 감각이 든다.
그러나 주변에 보면 지적 허영 따위 없이도 잘만 살아가는 친구들이 있다. 가끔은 그들이 부러울 때가 있다. 그렇다면 나의 불안은 어디서 온 것일까.
이런 성향은 보통 몇 가지 이유가 있다. 가장 먼저 의심 가는 것은 어린 시절이다. 늘 상황을 미리 파악하고 있어야 마음이 편했던 경험이 축적되어 이런 사람이 된다. 양육자가 변덕스럽거나, 기분대로 대하거나, 환경이 예측불허하거나. 그러면 사람은 ‘세상의 룰을 빨리 알아야 생존할 수 있겠구나’를 무의식에 새긴다.
세상이라는 복잡한 환경의 룰과 인과관계를 이해하면 덜 불안하고 더 안전해진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완벽주의 성향이다. 자기 통제력이 높고 완벽을 추구하는 사람은 앎을 사랑한다.
세 번째는 정보 비대칭의 공포이다. 우리는 알면 돈을 벌고, 모르면 당하는 구조의 사회에 살고 있다. 이 판에서 절대 호구가 되고 싶지 않으므로 나는 거대한 게임의 룰을 공부한다. 굉장히 현대적인 불안이다.
결국 지적 허영은 복잡한 세상 속에서 휘둘리지 않고 나의 논리로 움직이고픈 욕망이 반영된 것이다. 마음을 편하게 하기 위해, 그러니까 결국 나 자신을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