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라리 수행자의 고백
기도, 수행 많이 한다고 괴로움이 비켜 가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그 수행심으로 괴로움에 걸리지 않는 것입니다. 수행자는 괴로움 없는 이가 아니라 괴로움에 얽매이지 않는 이입니다.
법상 스님 『생활수행 이야기』 중에서…
수행한다고, 성직자 된다고 신의 은총을 받아서 고난을 피해 갈 수 있다는 생각은 오산이다.
오히려 그들에게는 성장의 시련이 더욱 가중될 뿐.
다만 그들은 마치 연잎에 물방울이 굴러 떨어지듯이 괴로움에 걸리지 않는다.
나는 날라리(?) 수행자로서 종종 고난이 찾아오면
‘하… 또 나야... 진짜 이 따위 세상은 나에게 항상 왜 이래?’라는 생각이 들자마자 동시에
‘고난, 너 또 왔구나. ㅇㅋ. 알아차리고 받아들일게. 너무 오래 머물지는 말고 네가 온 목적은 다 달성하고 떠나렴. 어디 한번 원하는 대로 다 해, 괜찮아. 근데 내 인내심도 그렇게 길지 않으니 살살해줘.’라며 혼자 되뇐다.
이렇게 고난을 가장 먼저 알아차리고 받아들이는 과정이 수행의 가장 핵심이고 약 50% 이상을 차지한다고 생각한다. 어떤 일이든지 인식하는 단계가 있어야 다음으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스스로 자각하지 못하면 백날 옆에서 누가 떠들어도 피부로 와닿지 못한다.
그다음 과정은 내맡김과 놓아버림이다. 만약 신을 믿는다면 신께 (그게 아니라면 우주에게 혹은 자연에게; 그 대상이 누구인지는 중요치 않다) ‘난 어리석어 잘 모르니 이 고난을 책임지고 알아서 진두지휘 해달라’고 맡기는 것이다. 나의 마음에서 완전히 놓아버리기 위해선 무한 자비를 가진 특정 대상에게 맡겨야 한다. 혼자 안고 가려고, 굴러가지도 않는 머리 굴려 오랫동안 고통을 감싸 안는 사람이야 말로 미련하다. 과거의 나에게 누가 이런 조언을 해주었다면 삶이 좀 바뀌었을까?
이 세상엔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일이 있고, 그저 받아들이고 놓아주어야 하는 일들이 있다. 그 둘을 잘 구분할 줄 아는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수행자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