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쨌거나 귀가
시동을 걸자 내비게이션 시계가 11시 18분을 가리킨다. 오전에 길을 나서기는 처음이다. 주말을 이용해 안동 동생네에 다녀올 때면 언제나 일요일 오후 네 시가 넘어서 귀갓길에 올랐고 대개 아홉 시가 넘어야 인천에 도착한다. 중앙고속도로와 제천평택고속도로는 그런대로 뚫리는데 중부내륙고속도로와 영동고속도로는 정체(停滯)를 배신한 적이 없다. 화장실에 가기 위해 휴게소까지 들르면 다섯 시간 혹은 여섯 시간 정도는 걸려야 인천에 도착할 수 있다.
또 한 번의 여정, 출발이 좋다. 엄마의 표정도 가벼워 보인다. 밤새 시달리던 통증도 아침밥과 약을 먹고 나면 조금 덜해지는 모양이다. 지팡이에 의지해 겨우 조수석에 앉는다. 척추관협착증과 골다공증 때문에 허리는 연중무휴로 고통스럽고, 관절 상태가 나빠 걷는 것을 무척 싫어하지만, 승용차 조수석에 앉아 바깥 경치를 구경하며 드라이브하는 것은 좋아한다. 허리에 등받이 쿠션을 받쳐주면 엄마의 장거리 여행(귀가) 준비는 끝.
오늘은 길이 전혀 막히지 않는다. 그러고 보니 월요일이다. 평일에 고속도로를 타 본 적이 별로 없어 이 한산함이 도리어 낯설다. 날씨도 청명하다. 서안동 IC로 진입해서 중앙고속도로 본선에 합류하니 가로수들이 너울대는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마음도 덩달아 물결친다. 하늘은 푸른색 물감을 풀어놓고 간간이 하얀 솜이불을 널어놓았다. 선명한 색채 대비. 멀리 보이는 산은 네 가지 이상의 빛깔이 뒤섞여 영역 다툼을 하고 있다. 살짝 차창을 여니 가벼운 현기증이 일어난다. 훅 치고 들어온 바람에 머릿속 산소가 교체되며 느끼는 상쾌함. 바야흐로 나의 사랑하는 스파크가 시속 백 킬로로 질주하며 길을 터주지 않으려 저항하는 공기와 맹렬하게 맞서고 있는 중이다. 관성의 힘을 극복하려면 그보다 더 강한 추진력이 필요할 것이니, 가녀린 스파크가 헤쳐 나가야 할 길이 멀고도 험하다.
환한 낮길이 반가운 듯 엄마는 주변 풍경을 살피기에 여념이 없다. 금요일 밤 어둠을 타고 안동으로 고속도로를 달려오던 때와는 사뭇 다르다. 시각이 감지하지 못하는 물체나 세계는 여태껏 거의 시각에 의존해 삶을 꾸려왔다고도 말할 수 있는 한 인간에게는, 그 자체로 공포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엄마를 통해 확인하곤 한다. 어둠 속 엄마의 세상은 완전한 고독으로 포위된 무인도 같은 것, 아니면 나의 상상력이 미치지 못하는 고된 모험의 세계 같은 것일 수도. 아무튼, 지금 엄마의 표정은 쾌청.
스파크는 자신의 임무를 충실히 수행 중이다. 내비게이션을 부추겨 과속 단속 카메라가 나타나면 일 킬로 전부터 속도를 늦추라고 징징거려 주고, 급커브나 경사진 길이 나오면 조심 운전하라고 걱정해 준다. 그래서 홀로 운전할 때도 외롭지 않다. 스파크와 나는 찰떡궁합이다. 거기에 엄마까지. 셋이서 의기투합하면 차 안은 두 명의 수다꾼(라디오까지 세 명의 수다꾼이 되는 때도 있다.)이 한 명의 청자(물론 나를 말한다.)를 상대로 각자의 독백만으로 사건을 전개하는 한 편의 희극을 만들어 낸다. 두 수다꾼 모두 무지무지 시끄럽다. 청자 한 명도 예민함의 끝판왕이다. 결국 참다못한 청자가 버럭 소리를 지르는 것이 이 희극의 절정이다. 그러면 귀가 먹은(그래도 왼쪽 귀의 청력은 조금 남아 있어서 조금 심하다 할 정도로 크게 말하면 알아듣는다.) 늙은 수다꾼은 토라져서 입을 다물어 버린다. 예쁜 목소리를 가진 어린 수다꾼(내비게이션)은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아랑곳하지 않고 떠들어댄다. 나는 그의 말을 끝까지 참고 듣는다. 이것이 희극의 결말이고 여행길의 일상이다.
풍기가 가까워지자 풍경이 더 알록달록해진다. 멀리 소백산의 스카이라인이 완만한 각을 드러낸다. 익숙하다. 몇 년째 보아온 풍경이니 익숙하고 익숙하다. 하지만 엄마는 또다시 처음 본 풍경인 것처럼 감탄한다.
“우와, 산이 우째 저리 높노? 단풍이 쐐애빨갛게 들었네. 단풍놀이 갈 필요도 없겠다. 차 안에서 보면 되지, 뭐 할라꼬 멀리 가노.”
이 말은 단풍놀이 가고 싶다는 뜻이다. 그러건 말건 내비게이션 소녀는 저 혼자 뭐라고 떠들어댄다. 엄마는 계속 ‘단풍놀이 갈 필요가 없겠다.’고 말한다. 나는 머릿속으로 단풍놀이 갈 날짜를 탐색한다. 제대로 되지 않는다. 그러는 사이 스파크는 죽령터널에 들어선다. 총길이 4.6킬로미터. 한때 국내 최장터널이었으나, 지금은 옛날의 영광일 뿐. 갓길도 없는 편도 2차선 길이 폐쇄 공포증을 부를 듯 좁게 이어진다. 터널의 중반부에 오면, 여기부터 단양이라고 내비게이션 소녀가 친절하게 알려준다. 나는 터널이 끝나고 나타날 과속단속 카메라에 대비해 브레이크를 조금씩 밟는다.
중앙고속도로 단양 구간은 절경이다. 두음교를 지나면서 오른쪽으로는 단양의 한 마을이 평화로이 안겨있는 모습이 보이고 왼쪽으로는 무성한 나무를 품고 있는 산이 연이어 펼쳐진다. 충주호의 물줄기가 보이는 구간을 지나고 적성터널을 통과하면, 저 멀리 어울리지 않게 허연 민머리산이 보이기도 한다. 엄마 눈에는 그것이 눈이 내린 것으로 보이는 모양이다.
“얄궂대이, 우째 저 산에는 눈이 쌓여 있노? 겨울도 아닌데. 참 희한하대이.”
나는 굳이 설명을 하지 않는다. 설명해도 얼마 못 가서 또 ‘얄궂대이’와 ‘희한하대이’를 연창하고 겨울이 아닌 것을 확인한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에.
사실 나도 그 산이 어떤 산인지 잘 알지 못한다. 깎여진 모양새로 보아 채석산이 아닐까 추측할 뿐이다. 시멘트 재료로 쓸 돌을 계속 캐내다 보니 만들어진 서글픈 민머리. 아랍의 어느 황무지에나 있을 법한 묘한 불모의 웅대함. 저러다 필시 산이 없어지고 말 것이라는 우울한 예감. 멀리 허연 민머리산이 붉게 익어가는 산들을 옆에 끼고 멋쩍게 바라보고 있다. 스파크는 무정물인지라 나의 애상을 모르고 마냥 내달리기만 하여 마침내 제천땅으로 접어든다.
제천터널을 지나자 더욱 고조된 붉고 노란색들이 점점이 산을 밝힌다. 그야말로 단풍천지다. 엄마의 눈은 더 커지고 감탄은 점층법을 이룬다.
“야아, 이 단풍 봐래이. 빨간색, 노란색 천지삐까리대이(엄청 많다). 우째 이리 곱노. 역시 강원도라서 경치가 정말 좋제?”
“강원도 아니고 충청도 제천.”
나는 조금 친절하게 말한다. 엄마도 아름다움에 감동받는, 한때 빛나는 청춘이었고 지금은 잠시 그 청춘의 감성을 되새김질하고 있는 이 평범한 평화를 깨고 싶지 않아서이다. 하지만 엄마는 못 들은 것 같다.
“우리나라는 강원도 경치가 제일 좋제? 이거 봐라 얼마나 경치 좋노? ”
“엄마, 지금 우리가 있는 곳은 강원도가 아니고 충청도다. 제천이다, 제천.”
처음보다 크고 불친절한 톤으로 말한다. 엄마가 움찔거린다. 이번엔 알아들은 표정이다. 작아진 목소리로 받아친다.
“충청도라꼬? 참내 희한하다. 나는 강원도 같구만..”
이윽고 둘 다 말이 없어지고 애꿎은 스파크는 달달 달리기만 하는데, 눈치 없는 내비게이션만 뭐라고 계속 떠들어 댄다. 침묵을 깬 건 엄마다. 경치가 아름다우니 입이 근질근질할 수밖에 없었으리라. 나의 퉁명스러웠던 말투에는 상관하지 않겠다는 듯 아까보다 과장된 몸짓과 목소리다.
“우와, 봐라. 니도 한번 봐라. 천지에 빨간색이다. 단풍 정말 예쁘제? 역시 강원도는 경치가 좋아.”
“충청도라고오오오---” 버럭 소리를 지르고 만다. 엄마가 깜짝 놀란다.
엄마는 말이 없어진다. 차 안엔 내비게이션 소녀만 독무대를 차지하고 대사를 읊조린다. 엄마가 삐졌다. 나도 후회막급이다. 강원도건 충청도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왜 나는 마음이 어린 엄마인 걸 알면서 이리도 막된 행동을 하고야 만 것인가? 극기복례를 외치면서 정작 나는 자신에게 먹히고 있으니. 이 이율배반을 어찌할 것인가?
차는 달리고 달려 제천평택고속도로, 중부내륙고속도로와 영동고속도로를 지나 우리를 인천으로 데려 놓는다. 마침내 집이다. 세 시간 사십 분 정도 소요되었다. 이렇게 시원스러운 길을 또다시 달려 볼 기회가 있을는지. 나로 인해 받았을 엄마의 상처는 생각하지도 않고 통쾌하게 뚫린 고속도로만 신기하게 여기며 현관문을 연다. 한 손엔 지팡이를 짚고 다른 손은 나의 손을 잡은 채 묵묵히 따라온 엄마가 현관을 들어서며 말한다.
“오늘은 날이 밝을 때 와서 안심이다. 오는 길에 경치도 참 보기 좋고. 강원도 경치가 제일 좋두만.”
그리고 참았다는 듯이 화장실로 들어간다.
나의 완패다. 그래도 어쨌거나 무사히 돌아왔다. 무엇이 더 필요하단 말인가.
2022. 11.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