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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추수유예 Oct 02. 2024

엄마, 안심해도 돼.

집으로 가는 길

  비는 그칠 기미가 없다. 시간이 지날수록 가열 차게 내린다. 아예 퍼붓는다는 표현이 더 적절하겠다. 오후 다섯 시 삼십 분이 조금 넘었는데 사위가 어두워지려 한다. 체증에 걸린 하늘 위 누군가가 쉑쉑 거친 소리로 뱃속에 있는 물을 한꺼번에 게워내고 있는 것 같다. 하늘도 사람과 다르지 않은지 지나치면 물을 먹고도 체할 수 있는 모양이다. 그러지 않고서야 이리도 요란하게 비를 퍼부을 리 없다. 하지만, 저도 행군에 지치면 필시 잦아들겠지. 비의 촉수가 유연해지기를 기다리며 하염없이 빗줄기를 바라본다. 바라만 본다. 그의 이름이 장마라는 것을 잊은 채.

  하지만 이대로 계속 감상만 하고 있을 수는 없다. 집으로 가야 한다. 백발의 어린 엄마가 외로이 기다리는 집으로. 바삐 고잉 홈 해야 할 시간이다. 양산 겸 우산을 펼친다. 우산살 마디마디 거무스레한 줄들이 나란히 팔 벌리기를 한다. 원래의 무늬인 것처럼 태연한 표정으로 우산살 녹슨 줄이 자리를 잡은 지 오래다. 시간의 흔적이다. 햇볕과 비가 번갈아 방문했고 세월이 눌러앉아 동거하며 십여 년 이상을 나를 위해 그늘을 만들고 보호막 역할을 하느라 고단했을 우산의 몸이, 너무 아무렇지도 않게 낡아가고 있어 새삼 서글퍼진다. 엄마의 몸 같다.

  하필 오늘 아침, 걸어서 출근하는 바람에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고행이다. 바람을 동반한 비가 정신을 못 차리고 세졌다가 약해졌다가 비틀거리기를 되풀이한다. 옷이 다 젖을 거란 각오를 하고 발을 내딛는다. 빗줄기가 나를 정 조준하는 것 같다. 빗소리도 주변의 모든 소리들을 삼킨 뒤 볼륨 높여 귓전을 두드린다. 바야흐로 이 시간, 최고의 포식자는 단연코 비다. 나풀거리던 바지자락이 순식간에 젖는다. 신발도 빗줄기에 몸을 허락해 버린다. 아침에 내리던 이슬비에 속은 기분이 들다가도 일기예보를 무시한 나의 잘못을 생각하면, 이 너덜너덜한 귀가에 대해 누군가를 탓하지도 못한다. 하늘이 나를 위해 비를 멈추어 줄 리 없고, 비가 인간을 위해 강우량을 조절해 줄 리 만무하니 온몸이 젖는 것을 감수하고 걸음을 재촉할 수밖에. 하여튼 집에 가야 하니까. 

  날 맑은 여느 때, 교문을 나서서 5분 정도 걸어가면 느긋이 누워 치맛자락을 펼쳐 보이고 있는 청량산을 만날 수 있다. 그 끝단을 따라 걷노라면 영일 정 씨 일가 무덤가의 소나무들이 자유분방한 스카이라인으로 반긴다. 그리고 이어지는 식당들 카페들. 뒤로는 싱그러움에 겨워 춤추는 신록들. 20분 남짓한 귀가 길이 보여주는 스펙트럼에 홀로 걷는 그 사이에도 지루할 틈이 없다. 보통의 화창한 어느 날이라면 말이다.

  그러나 지금 청량산의 고고한 자태는 내리는 빗줄기와 산자락까지 몰려온 구름에 가려 제대로 보이지 않고, 휘청거리듯 너울대던 영일 정 씨 무덤가 소나무들도 자기들끼리 기대어 떨고 있다. 쳐다보지 말고 그냥 지나가란다. 식당과 카페는 저녁 장사를 일찌감치 접은 듯, 유리문 안 주인인 듯한 사람들의 느린 움직임만 희미하게 보인다. 

  우산 크기가 작아 빗줄기가 상의까지 침범한다. 그럴수록 나는 가방을 가슴에 더욱 꼭 껴안는다. 가방만이라도 젖지 않는다면 오늘 귀가는 그런대로 성공적이라 할 수 있다. 산자락이 끝나고 내리막길을 조금 내려가서 드디어 대로를 만난다. 왕복 8차선 도로는 비가 와도 북적거린다. 자동차들은 바쁘게 어디론가 달려간다. 자동차 외면을 튕겨 나온 빗방울들과 타이어를 휘감고 분산되는 물방울들이 뒤엉켜 도로는 거대한 물 타래 같아 보인다. 시야가 명확하지 않다. 아이처럼 조심조심 걷는다. 빗줄기는 희한하게도 늘 내가 걷는 반대 방향에서 몰아친다. 상의도 거의 다 젖고 가방도 안전하지 않을 성싶다. 빠르게 걷고 싶어도 바람과 빗줄기의 기세가 허락하지 않는다. 우산이 온 힘을 다해 막아주고 있지만 역부족이다. 

  가로수가 제 한 몸 지탱하느라 안간힘을 쓰고 있는 교차로에 도달한다. 보행신호를 기다리는 시간이 원래 이렇게 길었던가. 비는 이리저리 방향을 바꾸어 온몸을 연타한다. 그 기다림의 시간 동안만이라도 가로수 뒤에 숨고 싶다. 조금이라도 비를 피하고 싶다. 나도 모르게 가로수 기둥줄기를 잡고 비의 반대 방향으로 몸을 숨기려 애쓴다. 어깨에 메고 있던 가방이 손을 잃어버리자 흘러내린다. 가방을 잡으려 순간적으로 가로수 기둥줄기에서 손을 뗀다. 나무껍질 한 조각이 뜯기며 내 손에 잡혀 가방끈을 끌어올린다. 바스러지는 조각들. 비를 머금으니 많은 것들이 약해진다. 풍파 많은 인생을 짊어지고 걸어온 끝에 발병한 엄마의 골다공증을 닮았다. 

  이제 교차로도 건넜으니 중학교를 지나 초등학교 맞은편으로 5분만 가면 된다. 관심도 없던 아파트 입구의 느티나무, 오늘은 빨리 보고 싶어 진다. 뒤집어지려는 우산을 달래며 가까스로 아파트 입구에 도착한다. 다 왔다. 안심이다. 느티나무를 보니 반가운 마음이 솟아나고 삼십 분 남짓한 시간을 정면 돌파하며 무사히 귀환한 내가 대견스러워진다. 바람과 비는 여전하지만, 난 더 이상 힘들지 않다. 느티나무 잎사귀 하나가 날리다가 내 팔에 들러붙는다. 

  엘리베이터를 타자 더욱 실감되는 고잉 홈. 집이, 어두워가는 시간을 밝히려 딸의 귀가 시간에 맞추어 거실 등을 켜 놓을 줄 아는, 아직은 추억을 소환하며 노래도 부를 줄도 알고, 뉴스를 보며 자식 걱정에 여기저기 전화도 걸 줄 아는 엄마가 기다리는 집이, 마침내 눈앞에 나타날 것이며, 나는 그 안에서 고요하게 안식하게 될 것이다. 밀려오는 감동을 주체하지 못하고 현관문을 연다.

  역시나, 텔레비전 소리가 쾅쾅 울리며 뉴스 아나운서의 긴박한 목소리가 장마 소식을 전하고 있다. 엄마가 반가운 얼굴로 맞는다. 

  “아이고 비가 억수로 오는데 잘 왔대이. 안 그래도 걱정 마이 했다. 비 마이 오제?”

  “응, 비 많이 온다. 그래도 엄마가 불 켜놓고 기다리니까 참 좋네. 엄마, 많이 기다렸지?”

  엄마의 흰머리 같은 느티나무 잎사귀를 팔에서 떼어내고, 비에 젖은 옷을 벗고, 남아 있는 감동에 젖어 엄마를 안아주기 위해 소파로 다가간다. 

  그런데 갑자기 엄마가 화들짝 놀라 나의 팔을 찰싹 때린다. 

  “아이고 남사스러워라. 텔레비전 켜 있는데, 부끄럽지도 안나? 저 사람들 다 쳐다본다, 어떡(어서) 옷 입어라, 옷 입어라 카이. 다리가랑이 다 내놓고 뭐 하노? 저 사람들 욕한다. 어떡.” 

  나는 부리나케 화장실로 간다. 참, 텔레비전 속의 저 사람들이 쳐다보고 있었지. 엄마는 저 사람들이 텔레비전 속에 살고 있다고 생각하지. 번쩍 정신이 든다. 틀림없는 우리 집이다. 오늘도 즐거운 나의 집에 무사히 돌아왔으니, 이만하면  만족스러운 하루다. 비록 가방이 좀 젖기는 했지만, 노 플라블럼. 

                                                           2023. 7.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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