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과 이야기 1
음악과 이야기 1 : 退屈しのぎ (심심풀이)- きのこ帝国 (버섯제국)
일본 밴드 버섯제국의 2012년 발매작 '渦になる (소용돌이가 되다)' 앨범의 2번 트랙
'憎しみより深い幸福はあるのかい'
증오보다 깊은 행복은 있는 거니
생물학을 배우는 친구는 삶을 곤충의 껍질에 비유했다. 지난 기억이 어떻든, 그 기억의 껍질이 희열이든 분노든 간에 살아가는 것은 마치 새로운 기억으로 탈피하는 과정이라 했다. 지난 기억의 모습이 떨어져 나가며 몸집을 불리고 더 완숙해지는 것이라고, 기억을 몸에 입히는 의식은 생장의 과정일 뿐이니 두려워하지 말라고 했다.
나 역시 삶이 껍질이라고 생각했다. 다른 점이라면 삶은 벗길 수 없이 무한히 덧씌우는 껍질이라는 것, 마치 칠한 뒤 한번 마른 물감 위에 다른 색을 덧칠하듯이. 마르기 전에는 닦아내려는 시도야 해볼 수 있지만 더 많이, 이미 한참 된 색을 벗겨내는 것은 물리적인 힘으로 역부족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니 새로운 색을 칠하는 것, 새로운 껍질을 덮는 일만이 가능하다고 믿었다.
믿음을 고집하고 싶지는 않았다. 잊어야 할 것은 잊고 잊고 싶지 않은 것은 꼭 붙잡으려 했다.
하지만 휘발해 사라졌을 것이라 믿은 무언가가 이따금씩 내 안에서 기어 나왔다. 작은 날갯짓이 불었던 날의 밤이면 어김없이 몸에서 소용돌이가 일었다. 만개한 꽃을 만지면 괜히 손끝이 건조해지고 파랑을 적시면 그날의 해일이 떠오르곤 했다. 그것은 외면의 감각 기관으로 느낀 것들이 아니었다. 가장 바깥의 껍질은 잠자코 서 있는데 안에서 어딘가 동요하는 소리가 들렸다.
피부를 절개해 들여다볼 수도, 내시경을 넣어 볼 수도 없는 위치의 그 통각과 이유 모를 열감은 마치 어떤 존재가 스스로 살아있음을 증명하려는 듯이 울부짖고 몸부림쳤다. 새로운 껍질을 구할수록 더욱 깊숙이 말려 들어갈 뿐 사라지지 않았다. 마치 소용돌이처럼.
나는 내 안에 어떤 의식도 치레도 한 적이 없구나. 계속 덮어 씌우기만 했구나.
그때 껍질이 느껴졌다. 이미 벗길 수 없이 단단히 묶여버려 나라고 통칭되는 껍질 덩어리를 느꼈다. 마음껏 행복을 그릴 도화지가 없이 빼곡한 나를 느꼈다.
그런 나를 위로하는 이 음악만이 역설적으로 내 안에 자리를 텄다. 새어 나올 듯이 크게 울렁이는 날이면 이 곡을 듣는다. 기억보다 더 깊은 곳에 자리할 행복을 구하지는 못하더라도, 새어 나올 걱정 없이 흔들리지 않는 더 크고 단단한 행복을 찾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