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과 이야기 5
음악과 이야기 5 : 나란 책 (Feat. PUNCHNELLO) - 핫펠트
핫펠트 (구 원더걸스 예은)의 2017년 발매작 'MEiNE' 싱글의 2번 트랙
'표지만 힐끗 볼 뿐이잖아
읽어주면 좋을 텐데'
지켜보는 것만큼 쉽고도 어려운 일이 또 있을까. 내가 바란 한 가지는 밤양갱이 아니라 그저 바라봄이었다.
무용한 것들을 그 자체로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다. 주렴 사이로 가려진 풍경, 비탈에 핀 민들레, 못 안의 물고기. 겉보기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는 어쩌면 하찮은 것들. 그런 것들을 사랑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해 물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이야기를 꺼내느라 바쁜 세상에서 말없이 쉬어 가는 한 장을 나는 좋아해. 조용히 내 이야기를 들어주기도, 때로는 이야기에 출연해 장면을 이끌어 나가기도 하는 것들을. 있잖아. 그래서 난 너의 글이 좋아. 넌 세상을 꼭꼭 씹어 읽고 치열히 고민해서 글을 쓰니까. 너는 네 이야기를 하지만 동시에 나와 세상의 소리에 먼저 귀를 기울이잖아. 너는 알게 모르게 누군가의 책을 읽는 사람이니까.
그의 말이 끝나자 어떤 대답을 하고 싶은 기분이 들었지만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그에게 이런 답을 전하고 싶었다.
글을 쓰는 일은 다른 어떤 이도 아닌 순전히 나를 위해서였다. 물론 그런 마음으로 써 내려갔음에도 하나 둘 스쳐 가는 시선을 의식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내게 호기심을 가지고 접근하는 사람은 꽤 있었다. 더러는 표지를 보고 손을 뻗기도 했고, 더러는 자신과 딴판인 내 서사에 흥미를 갖기도 했다. 그렇지만 오래도록 읽어 나간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런 일이 반복되다 보니 잠시라도 찾아주는 사람에게 느낀 고마움과는 별개로 깊은 곳에 늘 아쉬움이 있었다. 아직 내 책이 미약해서 그런 거라고 생각했다. 금방 손이 가고 한번 쥐면 쉽게 놓지 못하는 책들 속에서, 나는 그저 적당히 잘 쓰이고 짜인 한 권으로 비칠 거라 생각했다. 이런 생각은 나를 점점 더 작아지게 만들었지만 저항하려 해도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내가 그러는 것만큼만 누군가도 나를 들여다 주기를 바랐다. 하지만 그런 호의를 바라며 타인의 책을 읽은 것은 아니었다. 그들의 진솔한 서사가 좋았다. 누군가의 이야기에 담긴 여러 감정과 내가 겪은 일인 듯 투사되는 장면들은 각자의 근거로 나를 설득시켰다. 그런 진심에 매료되고 동요할 때면 부끄럽지 않게 마음껏 흔들리곤 했다. 또 내가 품은 도토리 몇 개를 우수수 떨어트려 나눠주기도 했다.
하지만 도토리의 출처를 궁금해하는 이는 거의 없었다. 그저 참나무 숲이겠거니 생각했을 것이다. 사랑이라고 불리는 것을 나누던 사람조차 내가 아니라 도토리에 관심을 보였다. 나는 계속 떨구고 떨구는 일만 반복했다. 결국 나를 봐주는 것은 나뿐이라고, 그렇게 믿을 뻔했다.
그런데 사랑이 무엇이고 내가 어떤 존재인지에 대해 재정의하게 만든 사람이 나타났다. 그는 도토리를 보고는 나를 쳐다보았다. 도토리를 더 내놓으라는 재촉의 신호가 아니었다. 그냥 도토리를 떨구는 나를 지켜봐 주었다. 내가 정말 바란 것은 단지 그 짧은 눈 맞춤, 지켜봄이었을 것이다.
그가 나를 펼쳐 읽어 주었듯이 언제까지 나도 그의 글을 읽고 싶었다. 더는 지켜볼 수 없는 풍경이 되어버렸을지 모르지만 그 마음이 새기고 간 발자국은 내게 북극성처럼 무겁게 빛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