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스위밍 Aug 14. 2022

태국에서 석사 하기

퇴사와 이사, 그리고 입학

석사를 방콕에서 하는 건 어때? 나 공부할 때 플랫메이트였던 태국인 친구가 자기 학교 되게 좋대."


지난겨울 어느 저녁, 애인이 건넨  한마디에 나는 눈을 번쩍 떴다. 공부를 계속하고 싶은 마음은 오래전부터 있었지만, ‘어디에서 하는가 관건이었다. 주변의 많은 동료들처럼 나도 처음엔 영국을 떠올렸고, 지역학으로 유명한 런던의  대학을 생각해보기도 했다. 하지만 어쩐지 끌리지 않았다. 나는 런던의 날씨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학비, 물가 등도 고려사항이었지만 가장  이유는  날씨에서 1년을 몸도 마음도 건강하게  자신이 었다. 고작 그런 이유가 유학할 학교를 정하는 기준이냐고 한다면, 적어도 내게는 그랬다. 처음에는 이런 내가 너무 소시민 같고 야망 없이 안전한 선택만 하는 건가 싶었는데, 달리 생각하면 서른여섯의 내가 부릴  있는 사치인  같기도 했다. 열아홉  때와 달리 이제 나는 가고 싶은 학교와 살고 싶은 나라를 선택할  있는 유형적 무형적 자산을 가지게  것이니까.


영국이냐 한국이냐를 놓고 고민하던 답보 상태에서 애인의 그 한마디는 난제를 풀 실마리가 되었다. 태국뿐 아니라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등 아시아의 다른 여러 나라들을 후보군에 놓고 생각해보기 시작했다. 싱가포르 국립대학교는 아시아 1위이기 때문에 어렵지 않게 떠올릴 수 있었고, 말레이시아에서 석사를 했던 동료가 있어서 말라야 대학교도 좋은 학교라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싱가포르의 살인적인 물가와 학비 수준을 생각하면 런던에 사는 것과 차이가 없었고, 무슬림 국가인 말레이시아는 내게 익숙한 동남아시아 메인랜드(인도차이나 반도)와는 문화적으로 다를 것 같았다. 반면 태국은 내가 다섯 번 이상 여행한 데다 늘 한 번쯤은 살아보고 싶은 나라였다. 태국의 교육에 대해서는 무지했기에 반신반의하며 공부할 만한 대학이 있나 찾아봤는데, (랭킹이 전부는 아니지만) 쭐라롱껀(Chulalongkorn) 대학과 마히돈(Mahidol) 대학은 내가 학부를 졸업한 학교보다 QS랭킹이 (훨씬) 높아서 겸손해지는 동시에 '이거다!' 싶었다. 역시 어차피 결론은 태국이었던 걸까? 동남아시아 지역학을 동남아시아( 중심! 방콕!)에서, 동남아시아 출신 교수님들로부터, 동남아시아 국가에서 온 친구들과 공부할  있다면, 그만큼 멋진 일이  있을까 싶었다. 마음이 들뜨고 설레기 시작했다.


태국으로 마음을 정한 뒤로는 막힘이 없었다. ‘뚫고 나간다’는 기세로 2-3월 두 달 동안 서류를 준비하고, 지원서를 쓰고, 면접을 봤다. 심지어 2차 줌 면접은 라오스 출장 중에 후아판에서 봤다. 바쁜 와중에도 방콕에서 망고나 파인애플, 혹은 찰밥에 쏨땀을 사 먹는 상상을 하면 기분이 좋아졌다. 출장에서 돌아와 업무를 마무리하고 5월 초에 퇴사했으며, 6-7월엔 서울에서 혼자 살던 집을 정리한 뒤(=끝없는 당근 거래) 7월 중순에 도합 70kg의 캐리어와 함께 수완나품 공항에 도착했다. (막상 도착해선 갑자기 모든 일을 버거워했는데 그 얘긴 다음에 하겠다…)


불과 1년 전까지만 해도 내가 태국에서 석사를 하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처음 태국을 여행했던 2008년에도 내가 이 나라에서 십수 년 뒤 동남아시아 지역학을 하게 될 줄은 전혀 몰랐겠지. 어쩌면 그때가 오늘의 시작이었는지도, 혹은 오늘을 위해 그때의 여행이 계획되어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이 코스가 끝난 뒤엔 또 무엇이 있을지 여전히 나는 전혀 알지 못하지만, 우선은 이 시간을 즐겁게 보내려 한다. 태국 생활과 공부하면서 드는 여러 가지 생각들도 틈틈이 정리하고 기록해보겠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