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으로 석사를 하러 온 게 잘한 일일까? 수업에 실망하는 날이면 ‘역시 대다수가 영국이나 미국으로 가는 건 이유가 있는 건가’ 싶었다가도, 활엽수가 무성한 캠퍼스를 걷거나, 오토바이 택시를 타고 등교를 하거나, 단돈 천오백 원짜리 닭다리 국수와 쏨땀을 먹을 때면 ‘역시 태국에 오길 잘했어!’라며 쉽게 행복해진다. 수업은 영어로 하고 태국 친구도 없다 보니 태국행을 결심하며 기대했던 것과 달리 태국 문화를 제대로 경험하지 못하고 있는데, ‘이럴 거면 굳이 왜 여길 왔지?’ 하는 생각이 불쑥 올라오다가도, 10년의 직장생활을 정리하는 시점에서 환기(혹은 디톡스)가 필요했다, 고 생각하면 나에게 태국보다 더 좋은 선택지가 있었을까 싶다.
돌이킬 수 없는 일인데 왜 계속 이런 생각이 들까? 곰곰이 내 마음을 들여다보니 ‘선택’이란 걸 한 게 오랜만이기 때문인 것 같다. 8년을 한 직장에 몸 담았고, 매일매일의 크고 작은 고민은 있었지만 어쨌든 출근하고 퇴근하면 되는 생활이었으니 큰 선택이란 걸 할 일은 없었다. 돌이켜보면 인턴으로 이 분야 일을 처음 시작했을 때, 계약이 끝난 뒤 직원이 아닌 봉사단원 신분으로 탄자니아로 갔을 때, 탄자니아에서 돌아와 다시 무직 상태가 되었을 때, 그러니까 사회 초년생 때에는 계속해서 다음 여정을 위한 선택을 해야 했기에 ‘나는 이 일에 어울리는 사람인가, 이게 내 커리어에서 어떤 의미가 있는가’란 질문을 스스로에게 계속 던졌던 것 같다. 그 시점을 지나고 난 뒤에는 많진 않지만 고정적인 월급을 받는 생활에 익숙해졌고, 대출을 받아 월세에서 전세로 옮기며 나름의 안정이란 걸 찾아갔다. 하지만 바로 그 너무나 안정적인 환경이 나를 좀 먹는다고 느끼기 시작했고, 한계점에 다다랐다고 느낀 시점에 찾은 돌파구가 현재다.
결국엔 해석의 영역이고 결과론적일 뿐이다,라고 생각의 물길을 돌린다. 진행 중인 시점에서는 이것이 잘한 선택이었는지 아닌지 평가할 수 없다. 섣불리 판단하기보다는 모든 것을 가능성의 영역으로 남겨두는 것이 좋다. 세상에 절대적으로 좋은 선택이나 나쁜 선택은 거의 없고, 내가 주어진 상황을 어떻게 인식하고 반응하는가의 문제일 뿐이다. 선택엔 책임이 뒤따르고, 죽는 것이나 마약중독자가 되는 것 빼곤 모든 것이 내 인생을 풍요롭게 하는 경험 중 하나일 뿐이다. 유언장을 쓰기 전까지는 진행 중인 내 경험의 의미에 대해 ‘아직은 알 수 없다’는 유보적인 태도를 취하는 편이 좋다.
이 모든 생각을 오늘 러닝머신 위에서 뉴진스 노래를 들으며 했다. PT 선생님은 오늘 팔 운동을 할 때 쇠 덩어리를 하나 더 얹어주셨고 나는 팔을 덜덜 떨면서 어쨌든 3세트를 하긴 했다. 상체를 조지고 나서는 장난감 같은 라켓과 말랑한 공을 가져와 간이 스쿼시 같은 걸 해보기도 했다. 공으로 하는 모든 운동에 소질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너무 즐거웠다. 땀을 잔뜩 흘리고 밖으로 나오자 아직 볕은 뜨거웠지만 시원한 바람이 불고 있었다. 30분을 걸어 집에 돌아오니 창밖으로 빨갛게 노을이 지고 있었고, 샤워 후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맞으며 ‘역시 태국에 오길 잘했어’라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