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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위밍 Dec 03. 2022

할 수 있는 일을 하기

부족한 자원이 만들어내는 혁신

초국적(transboundary) 보건, 환경 이슈를 다루는 수업에서 있었던 일이다. 코로나19를 포함한 감염병 관리 시, 주요 이해관계자가 누구인지, 예상되는 어려움과 해결방안은 무엇인지를 간략하게 발표하는 시간이었다. 특정한 국가가 정해진 것은 아니었고 각자가 자유롭게 상황을 설정하거나 감염병 관리 일반론에 대해 얘기하면 된다고 했다. 흥미로운 것은 출신 국가에 따라 각자가 설정한 콘텍스트와 어려움, 대응방안이 명확하게 구분된다는 점이었다. 나는 너무도 당연하게 중앙정부의 컨트롤 타워의 중요성, 보건부, 교육부, 노동부, 이민국 등 관련 정부 부처들의 협업과 조정(coordination), 메시지의 일원화, 정확하고 투명한 정보 공유 등에 대해 얘기했는데, 다섯 명의 미얀마 친구들은 모두 지역사회 단위에서의 대응방법과 국제기구 및 NGO들의 역할에 대해 강조했다. 미얀마 친구들의 시나리오에 ‘국가’ 혹은 ‘정부’의 존재는 희미했다. 홍콩에서 온 친구는 인구밀도가 높은 아파트에서 어떻게 확산을 막을 것인지에 대해 얘기했고, 미국 아저씨는 처음부터 끝까지 백신(백신의 중요성, 사람들이 백신을 안 맞는다고 할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백신과 관련한 음모론 관리 등)에 대해 언급했다. 


태국인 교수님은 태국 북부 지역에서 커뮤니티 보건 자원봉사자들이 가가호호 방문하며 감염자를 살핀 사례, 정부 예산이 부족한 상황에서 지역사회가 상호부조를 통해 확진자를 지원한 이야기, 그리고 다국적 자원봉사자들이 이민자, 특히 미얀마 이주노동자들에게 관련 정보를 전달했던 경험에 대해 말씀하셨다. 그리고 무엇이 ‘혁신적인’ 대응법이 될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고 하셨다. 여기서 혁신이란 그동안 내가 알던 의미와는 다른 맥락에서 사용되었다. 끝을 알 수 없는 최첨단을 향해가는 혁신, 더 새롭고 더 놀랍고 더 비싼 기술을 통한 혁신이 아니라, 부족한 자원과 정부의 부재 속에서도 할 일을 해야 하는 사람들의 절박함이 만들어내는 창의성이었다. 


각자가 경험한 코로나19가 이만큼이나 다르다는 건 이 세계가 얼마나 거대한 불평등을 품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한 장면이었지만, 동시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주어진 환경에서 각자의 방법으로 무언가를 하고 있는지에 대해 말하는 것이기도 했다. 교수님이 그날의 수업에서 알려주시려던 것, 내가 여기 태국에서 공부하며 배우는 것은 결국 부족한 자원으로 할 수 있는 일을 해나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다. 


지난 10년간 여러 사업을 담당하며 만났던 해외 사무소들의 동료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팬데믹과 쿠데타가 한창일 때에도 총성을 피해 클리닉으로 출근했던 미얀마의 파트너 기관 직원들, 우기가 되면 차도 못 들어가는 꼬불꼬불 산길을 어렵게 건너 학교로 가는 라오스의 내 동료들, 가구 정보를 커다란 공책에 수기로 모두 깨알같이 적어두었던 메인도로에서 1시간 반을 더 들어가야 하는 탄자니아 시골 마을의 젊은 이장님. 공부를 마친 뒤에 하던 일로 다시 돌아갈지 말지, 혹은 할 수 있을지 없을지 아직은 알 수 없지만 앞으로도 어딘가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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