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내셔널 마더 랭귀지의 날 기념행사 요모조모
2월 21일은 ’국제 모어의 날(International Mother Language Day)'이다. 1999년 유네스코가 언어 다양성 및 문화 보존에 대한 인식을 높이기 위해 제정한 이후 오늘까지 매년 이 날을 기념하고 있다. 내가 다니는 학교의 아시아 언어문화연구소에서도 관련 행사를 개최하여 기대하는 마음으로 가보았다.
캠퍼스 내 ‘타이하우스’라 불리는 2층짜리 태국 전통 목조가옥이 오늘의 행사 장소였다. 태국 전통가옥은 기둥을 세워 건물 바닥이 땅에서 떨어져 있는 형태로, 뜨거운 지열이 바닥으로 올라오는 것을 막아준다. 1층(말하자면 필로티 구조 건물의 주차장) 공간은 그늘이 생기는 동시에 통기성이 좋아져 더위를 피할 수 있다. 오늘 기온이 높지 않고 바람도 선선해서 이 공간의 장점을 배로 느낄 수 있었다.
연구소가 태국 각지에서 진행한 모국어 기반 다언어 교육(Mother tongue-based multilingual education) 및 소수민족 언어보존 활동 프로젝트를 함께한 파트너 기관과 소수민족 단체 대표자들의 축사로 행사가 시작되었다. 유네스코, 유니세프, 세이브더칠드런, SIL international, Pestalozzi Children Foundation, 타이-크메르족(Thai-Khmer), 우락-라와이족(Urak-Lawoi), 타이-유안족(Tai-Yuan) 등 많은 단체와 사람들이 함께했다.
모하마드 압둘 헤 (Mohammed Abdul Hye) 주 태국 방글라데시 대사의 축사도 있었는데, 그 이유는 세계 모어의 날의 시초가 방글라데시의 ‘언어 수호 운동’ 및 ‘언어 순교자의 날’이기 때문이다. 사실 나도 오늘 대사님의 연설을 통해 이 사실을 처음 알게 되었다. 방글라데시가 파키스탄으로부터 분리되기 이전인 1948년, 파키스탄 정부는 동 파키스탄(오늘날의 방글라데시)을 포함한 다수의 국민이 벵골어(또는 방글라어)를 모어로 사용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루두어를 국가의 단일한 공식언어로 선언했다. 동 파키스탄인들은 반발하며 우루두어와 함께 벵골어 또한 공식언어로 포함되어야 한다고 요구했으나, 파키스탄 정부는 집회와 대중모임을 금지하며 이를 탄압했다. 1952년 2월 21일, 다카 대학교 학생을 필두로 한 대중은 물러서지 않고 대규모 집회를 열었는데, 이날 경찰의 발포로 학생 4명이 숨지고 수백 명이 다쳤다. 이후 희생자를 기리기 위해 2월 21일이 국가기념일로 지정(언어 순교의 날, Martyr Day 혹은 Ekushey Day)되었고, 이후 유네스코가 같은 날을 국제 모어의 날로 제정했다.
세이브더칠드런의 교육기술전문가 솜싸이(Somxay)씨의 축사도 (다른 지점에서) 인상적이었다. 태국어로 시작하시길래 당연히 태국분이신줄 알았는데, 갑자기 “제2 언어인 태국어로 공개석상에서 연설하는 것은 사실 오늘이 처음입니다“라고 영어로 말씀하셔서 의아했다. 내가 듣기엔 태국어 발음도 굉장히 좋았기 때문에 어느 나라 분이신가 궁금했다. 순차통역도 동시통역도 제공되지 않아서 연설 내용은 전혀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마지막 인사말을 ”컵짜이 라이“라고 맺으시길래 ’아, 라오스 분이시구나!‘ 했다. 태국어와 라오스어는 유사점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어쨌든 그분에게도 외국어는 외국어구나 싶었다. 라오스 분이라는 것만으로도 혼자 괜히 반가웠다.
축사 후에는 타이-유안족 마을인 반 타 사오(Ban Tha Sao)의 종교 의례(ritual ceremony)가 시연되었다. 지역사회 대표자가 불경을 외고 난 뒤, 모든 참여자들이 코코넛 나뭇잎으로 싼 꽃과 향, 초 등을 반상처럼 생긴 쟁반 위에 놓아두며 복을 빌었다. 우리 학교 연구소 외 2 개 대학교와 왕립 인류학 센터가 함께 반 타 사오 마을에서 타이 유안족 구술언어를 태국어 알파벳을 빌려 문자체계를 정립했는데, 이 의례를 통해 언어와 문화, 전통 지식이 보존되기를 함께 비는 의미가 담겨있었다.
행사는 계속해서 진행되었지만 나는 슬슬 배가 고파져서 슬쩍 빠져나왔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점심을 먹으려고 줄을 서 있었다. 태국 북부, 혹은 미얀마 음식(으로 추정되는)을 간단히 맛보았다. 아래 사진에 절구로 빻고 있는 것은 생선된장소스(?) 같은 것인데, 준비 중인 상태라 맛보지 못해서 아쉬웠다.
오후 세션은 태국어로만 진행되는 세미나라서 나는 발길을 돌렸다. 행사장을 빠져나가는 길에 야외에 세팅된 테이블을 둘러보고 있는데 관계자 분이 이런저런 설명을 해주셨다. 연구소 내 박물관학(Museum Studies) 박사님이었고, 연구소에서 진행하는 이동 박물관 프로젝트인 ‘Vivid ethnicity' 캠핑카(카라반)도 구경시켜 주셨다.
카라반 안은 태국 내 다양한 소수민족들의 전통 의상이나 소품 등으로 채워져 있었는데, 이 카라반으로 태국 초중고등학교나 지역사회에 직접 찾아가 다문화 교육도 하고 소수민족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활동을 하고 있다고 했다. 일부 학생들은 학교에서는 자신이 소수민족 출신인 것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가, 이 공간에 들어와서 “사실 저 이 민족이에요”라고 말하기도 한다고 했다.
박사님의 에너지가 너무 좋아서 한참을 신나게 대화했다. 막상 우리 과 수업에서는 이런 주제에 대해서 이야기하거나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내 기대보다는 적었기 때문에 오늘 그 한(?)을 조금 풀었다. 혼자 가서 조금 뻘쭘하기도 했고, 단체 대표들과 관계자 등 높으신 분들 위주로 진행된 행사라 처음엔 괜히 왔나 싶기도 했는데, 또 얻어가는 게 있는 시간이었다.
진행의 편의를 위해 행사의 공식 언어는 태국어와 영어만이 사용된 것이 조금 아쉽기도 하다. 전통의상을 갖춰 입은 소수민족 대표들은 언제나 이런 자리에서 가장 많은 플래시 세례를 받지만 대부분 말할 기회는 매우 적거나 가장 마지막에 허락되고, 심지어는 배경그림처럼 세워지기도 한다. 어린이날 행사에 어린이가 병풍처럼 이용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더 많은 언어를 말하고 들을 수 있는 세상에서 살 수 있기를, 그래서 언젠가는 소수민족들이 각자의 언어로 발언하고 통역이 제공되는 행사에 참여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