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세계관

회의실에서 당신의 세계관이 궁금해질 때

by 스위밍

월급이 사실상 '회의비'인 팀에서 3년 반을 일했다. 신입 시절부터 (내가 가지 않아도 될) 각종 회의에 들어가는 일이 많았다. 회의 준비, 회의 참석, 회의록 정리를 하다 보면 하루가 가고, 다음날에 실무자 회의, 의사결정자에게 보고, 다시 팔로업 회의를 하다 보면 1주일, 한 달이 훌쩍 지나있다. 조직개편과 인사발령의 회오리가 연말마다 몰아치는 조직에서 기획팀, 이라 쓰고 애전팀 - 애매한 일 전담팀 -이라 읽는 팀의 붙박이로 있었던 덕분이다.


업무시간의 대부분을 회의로 보내다 보면 개개인의 세계관에 의문을 품게 될 때가 있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말 잔치' 속에서, 상대가 현상을 어떻게 진단하고 해석하는지, 그리고 어떤 방법으로 해결하려고 하는지는, 기관의 비전이나 지침에 따른 것이기보다는 한 개인의 세계관에 기반한 경우가 생각보다 많았다. 물론 개인은 조직이 일을 처리하는 방식을 학습하기 때문에 한 조직에서 오래 근무한 사람들은 진단과 대응에서 비슷한 양상을 보이기는 한다. 하지만 우리는 알고리즘대로 사고하는 기계가 아니기에, 생각과 고민, 주장 등을 나누는 회의 자리에서 자신의 세계관이 전혀 드러나지 않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특히, 수많은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회의실은 상대가 평소 타자를 어떻게 인식하고 반응하는지, '관계'라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큐브 실험실 같았다.


나를 뺀 나머지 우주를 모두 적으로 생각하는 세계관을 만날 때가 있다. 세상에 원탁이란 없고 폭이 좁고 길이가 긴 직사각형 식탁만 존재한다고 믿는 사람. 평화란 합의된 선을 위한 공동의 노력 같은 순진한 것이 아니라 힘의 균형으로 인해 전쟁이 없는 상태일 뿐이라고 생각하는 세계관. 그래서 내 옆자리, 대각선 앞자리 사람은 없고 오로지 나의 대척점에 선 자만 존재한다고 믿는 사람.


이들과 함께 있으면 나를 둘러싼 세계도 변한다. 내민 내 손이 머쓱해지고 상대와 내 사이에 놓인 시커먼 블랙홀에 빠지지 않기 위해 나도 게걸음으로 자리를 옮겨 상대와 정면으로 마주하게 된다. 정신을 차려보면 방어 아니면 공격뿐인 세상이 되어있다. 웃으며 공격하거나 웃으며 방어하거나 미간을 찌푸리고 방어하거나 미간을 찌푸리고 공격하거나. 대놓고 방어하거나 돌려서 방어하거나 문서로 방어하거나 말로 방어하거나. 어느새 그게 내 일이 되었다. 어떤 방법과 표정을 사용하는가가 나의 능력이 되었다.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같은 세상에서 한발 물러나 비둘기를 날려 보내는 사람이고 싶었지만, 나 역시 어느새 그 게임에 휘말려 한 명의 플레이어가 되었다는 생각도 한다. 타의라고 믿고 싶지만 자의였는지도 모른다. 덕분에 나는 ‘공주처럼 지쳐서’ 돌아왔다.


원탁에 둘러앉아 공동의 선을 그리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 앞으로의 1년은 그런 나를 만들어가는, 나를 위한 시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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