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y Sue Me(세이수미) - Old town

수많은 '수미의 친구들'에 관한 이야기

by 스위밍

1. 우리는 지극히 현실적이고 소심한 여자애들이었다. 4학년 2학기를 앞둔 여름방학부터 그 해 가을과 겨울까지, 우리는 점심값을 아끼기 위해 중도 매점에 모여 집에서 싸온 도시락을 까먹었다. 삼십 분 동안 밥을 먹고 두 시간쯤 그 자리에 앉아있는 식이었다. 빈 도시락통과 자판기 커피를 한 잔씩 앞에 두고 저마다의 불안을 공유했다. 그 해 겨울 이후, 우리는 각자가 준비하던 다양한 종류의 시험에서 사이좋게 모두 낙방했다. 그리고 다시 몇 년이 지난 뒤, 이번엔 번호표라도 받아든 듯 모두가 차례로 부산을 떠났다.


2. 주인공만 바뀌는 우리들의 송별회와 환영회(?)가 일상적으로 되풀이되는 동안, 수미는 ‘프로 참석러’로 그 자리를 지켰다. 계속해서 친구들을 떠나보내고 다시 환영하기를 반복했다. 세이수미의 새 싱글 ‘Old Town’은 그때의 수미가 혼잣말처럼 하는 이야기다. 그리고 이 지점에서 ‘부산 밴드’ 세이수미의 독특한 서사가 탄생한다. ‘서울의 달’ 류의 이야기가 무수히 변주되고 반복되어온 것에 반해 그동안 드물게 말해져 온, ‘남은 자’ 혹은 ‘보낸 자’에 대한 이야기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들을 가장 부산 밴드답게 하는 것은 합주실이 광안리에 있다는 것도, 바다가 있는 도시에서 서프락을 한다는 것도 아닌, 부산이 아니고서는 쓸 수 없는 이 가사다.


3. 그즈음 수미가 주문처럼 되뇌던 말은 ‘나는 재능이 없다’였다. 이때쯤이면 적어도 부산에서는 꽤 유명한 밴드를 하고 있을 줄 알았는데, 근데 나는 재능이 없다, 는 말을 자기 최면 걸듯 했었다. 수미의 ‘일단 깔아놓고 시작하는’ ‘답정너’ 화법에 익숙했던 우리는 그때마다 "쟤 또 저런다"며 코웃음을 쳤다. 그리고 얼마 뒤, 수미는 세이수미를 시작했다. 우리는 ‘올 것이 왔구나’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우리의 수미는 세이수미를 시작한 후에도 새로운 주문을 만들어 외우고 다녔다. “아이 그냥 재미로 하는 거다"라는 주문. 유사한 주문에는 "아이 그냥 직장인밴드지 뭐"가 있다.


4. 수미가 주중에는 회사를 다니고 주말에는 바에서 공연을 하는 동안, 우리들은 모두 각자의 ‘뉴 타운’에서 살아내기 바빴다. The Matinee (http://therevue.ca/2018/02/08/the-matinee-18-february-8th/)에서는 ‘수미의 친구들’이 ‘greater opportunities’를 찾아 떠났다고 설명했지만, 사실 내 경우엔 대단한 무언가를 찾아 떠난 것은 아니었다. ‘본격 부산 시장 저격곡’이라며 낄낄댔던 것처럼, 수많은 ‘수미의 친구들’이 졸업 후 부산을 떠나는 것은 이제는 자연스럽다 못해 당연한 일이 되었다. 인턴으로 직장생활을 처음 시작한 나는 백십만 원의 월급 중 사십오만원을 월세로 지출하며 일 년을 보냈다. 서울에서 만난 ‘새 친구들’은 부산이 집이라는 나의 말에, 사투리를 잘 ‘고쳤다’며 놀라워하거나, “관광지 - 실제로 ‘관광지’라는 단어를 썼다 - 가 집이라니 너무 부럽다”며 눈을 반짝이거나, “마린시티 너무 멋있잖아요”라고 물개 박수를 쳤다. 그때마다 나는 광안대교도 더베이101도 씨앗호떡도 아닌, 중도 매점을 떠올렸다.


5. '올드타운'이 수록된 새 앨범을 녹음하던 지난해 늦가을, 마침 나는 한 달간 출장 중이었고 수미는 비어있던 나의 서울 자취방에서 2주를 머물렀다. 우리들의 올드타운을 가장 먼저 떠나 친구의 친구 집, 친구의 아는 사람 집, 친구와 함께 사는 집을 거쳐간 내가, 드디어 은행 빚과 함께 혼자 살게 된 그 집 말이다. 그리고 이틀 전 토요일, 다시 서울에 온 수미와 집밥을 차려 함께 먹었다. 밥을 안치고, (배민찬에서 배달시킨) 반찬을 데우고, 디저트로 딸기를 다 먹을 때까지, 수미는 “니 피치포크 아나”로 시작하여 킨포크 밖에 모르던 나에게 피치포크가 가지는 의미가 어느 정도인지 집중 과외를 시켜주었다. '일단 깔아놓고' 태연한 척 하지만 잔뜩 들뜬 얼굴로.


6. 그날 저녁엔 용빈이와 만나 세미수미와 코가손, 랜드오브피스의 공연을 봤다. 무대륙의 맛있는 페일에일과 만 원짜리 뱅쇼를 기분 좋게 마시면서. '재능이 없다'던 수미는, 베이스먼트에서 잘 들리지도 않는 노래를 하던 수미는, 무대에서 천연덕스러운 농담을 하고 귀엽게 피치포크 자랑을 (또) 하고 있었다. 열 시 반에 공연이 끝나자 수미는 밤 버스를 타고 부산으로 내려갔고 (피치포크에 나오면 뭘 해, 버스 타고 집에 가는 걸), 나와 용빈은 지하철 막차를 타고 - 서울은 주말에 지하철이 더 일찍 끊긴다는 사실을 알고 놀라워하는 용빈이를 실컷 놀려준 후에 -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다.


7. 서울로, 미국으로, 탄자니아로, 캐나다로, 진주로, 프랑스로 떠났던 모두가 각자의 자리를 찾은 지금, 수미는 다음 달부터 미국 투어에 나선다. 그리고 이제, 피치포크에 나온 수미는, 전업 밴드를 하는 수미는, '재능이 없다'는 주문이나 '직장인 밴드'라는 말 대신 피치포크와 사우스 바이 사우스웨스트를 검색해 보여준다. 모레부터 설 연휴가 시작되고 우리는 떨어져 살던 친척들처럼 다시 모일 것이다. “어디서 볼까?”라는 말을 할 필요도 없이, 우리들의 오래된 장전동 어딘가에서 말이다.


*Old town 싱글이 선 발매된 2018년 2월에 제 페이스북에 썼던 글을 브런치로 옮겨왔습니다.


Everyone left this old town
Only I'm getting old with this town
I just wanna leave here
But I wanna stay here
All the friends I used to know left this town
Only I'm getting old with this town
I just wanna stay here
But I wanna leave here
Don't know why
Time chose that instead of me

Everyone left this old fucking town
Only I'm getting old with this town
I just wanna stay here
But I wanna leave here
All the friends I used to know left this town
Only I'm getting old with this town
I just wanna leave here
But I wanna stay here
I'm always late
Time chose that instead of me

How are you today
The street where we used to hang out is fine
How are you today
The beach where we used to hang out is fine
There're just another stupid day
Being together was all that matter to me
There're so many people like it used to be
But I feel nothing inside
Nothing inside


https://youtu.be/hQYUmbCfOW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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