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밀한 타인들

나의 치료자들에 대하여

by 스위밍

병원 세 군데를 번갈아가며 다니다 보면 일주일이 금방 지나간다. 월수금은 정형외과에서 도수치료, 수요일은 한의원에서 뜸 치료, 목요일은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상담. 아무리 '건강한 몸과 마음'을 위해 휴직했다지만, 출근하듯 성실하게 병원 투어를 하다 보면 '난 누군가 여긴 어딘가' 싶어 진다. 도대체가 멀쩡한 곳이 한 군데도 없구나 싶어 헛헛한 웃음을 짓게 되기도 한다.


치료 횟수가 거듭되며 치료자와도 꽤 친밀해졌다. 그들은 나에 대해 잘 모르지만 또 잘 안다.


물리치료사는 나의 몸으로 나를 안다. 허리가 좋지 않은 사람, 어깨가 긴장되어 있는 사람, 허벅지 앞쪽 근육이 뭉쳐있는 사람, 골반이 틀어진 사람. 몸은 정직하니까, 치료사는 내 몸으로 나의 세월과 생활을 안다. 책상에 많이 앉아있었던 사람, 다리를 꼬으고 앉는 습관이 있는 사람, 스트레스를 받으면 어깨가 경직되는 사람, 몸 움직이는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

물리치료사는 나와의 대화를 통해 나를 더 알게 된다. 그는 질문을 잘한다. 치료사 자신의 이야기도 중간중간 꺼내놓는다. 도수치료의 특성상 다소 민망한 자세가 연출되기도 하는데, 환자가 느낄 그 어색함을 줄여주려는 노력에서 개발된 능력 같았다. 어쩌면 처음 본 사람에게 무방비 상태로 신체를 내어주게 되는 환자가 치료자를 신뢰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하루에 사십 분씩, 일주일에 세 번, 합치면 120분간 나는 잘 모르는 사람과 꽤 사적인 대화를 나눈다. 그는 내가 삼 남매 중 둘째라는 것, 언니와 동생과는 나이차가 크다는 것, 내가 장거리 비행을 하는 출장을 자주 다녔다는 것, 고양이를 키웠다는 것, 다이빙을 한다는 것, 얼마 전 월세에서 전세로 이사했다는 것, 네팔 트레킹을 갈 예정이라는 것을 안다. 나는 그가 학창 시절 담배를 피다 들켜 금연패치를 강제로 귀에 붙이고 다닌 적이 있다는 것, 필리핀 세부에서 유학을 했다는 것, 아내가 라섹수술을 했다는 것, 고양이 세 마리를 키운다는 것, 다이빙을 한다는 것, 호주에 친구들이 있다는 것을 안다.


정신과 의사는 나의 과거로 나의 현재를 안다. 나는 살면서 아무에게도 하지 않았던 얘기들을 그에게 털어놓고, 그 어떤 누구 앞에서보다도 자주, 많이 울었다. 그는 나의 가족과 연애에 대해 알고, 나의 취약함과 불안에 대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가진 낙천성과 힘에 대해서도 안다. 일주일에 한 번, 상담실 의자에 앉은 나는 30분 동안 모노드라마의 주인공처럼 독백한다. 일주일간 떠오르는 생각들을 '상담 때 얘기해야지'하며 메모해 두었다가 이야기보따리를 들고 간다. 의사는 잘 지내셨어요, 라며 근황을 묻고, 고개를 끄덕이고, 가끔 추임새를 넣고, 짧은 - 하지만 답을 하기 어려운 - 질문을 던지고, 아주 가끔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 나는 그에게 아들이 둘 있다는 것, 대학시절 공황발작을 경험한 적이 있다는 것을 안다. 그는 나의 현재를 치료하는 동시에 미래를 함께 준비하는 조력자다. "다음에 또 이런 일이 생긴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 간단한 질문에 들고 간 이야기보따리를 뒤집어 탈탈 털어보지만, 마땅히 꺼내놓을 답을 아직은 못 찾고 있다.


한의사는 나의 맥박으로 나를 안다. 거의 대화를 하지 않는 편이지만, 그녀는 나의 위장과 생식건강과 스트레스에 대해 묻고, 나는 짧게 답한다. 그녀는 예의 그 차분하고 따뜻한 목소리로 "불편한 곳은 없으세요?"라고 물으며 일주일간의 나의 건강에 대해 확인한다. 나는 일곱 살 어린이가 된 것처럼 순하게 누워 침을 꼴깍 삼킨다.


휴직 후 혼자 집안에만 있다가 더 침전하면 어쩌나 했던 걱정은 기우에 불과했다. 꽤 빡빡한 치료 일정 덕분에 매일같이 외출하고 (치료자들과) '스몰토크'를 하게 되었다. 의미 없는 대화는 싫어하는 편이지만 전문적으로 다정한 치료자들과의 문답은 꽤 즐겁다. 그것이 단순히 그들의 직업일 뿐일지라도, 혹은 서비스 정신이라 할지라도. 그 어떤 친밀한 사람보다도 더 내밀하고, 더 구체적인 일상을 나누고 있다. 내가 점심에 무얼 먹었는지, 화장실은 잘 가는지, 마음 상태는 어떤지를 아는 사람은, 재밌게도 가족도 친구도 아닌 그들, 낯선 치료자들이다. 일상을 채우는 치료자들 덕분에 몸과 마음의 에너지를 얻는다. 존재를 위협하는 타자 덕분에 얻게 된 시간인데, 그 시간을 채우는 것은 친밀한 타인들이다. 타인은 지옥이라는 말,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은 주체가 홀로 경험하는 것이 아니라 타자와의 관계 그 자체라는 말도, 지난 몇 달간 내 삶에서 모두 경험했다. 앞으로 나에게 타자는 무엇이 될지, 나는 누군가에게 어떤 타자가 될지는 이 치유와 회복의 시간을 잘 보낸 뒤에 내가 풀어야 할 숙제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