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카라 일상

고요한 물결처럼 평화로운 마음

by 스위밍

포카라에 온 뒤로 새 나라의 어린이가 되었다. 열시에 자고 일곱시에 일어난다. 야행성이라 휴직 후엔 3시쯤 자고 11시쯤에나 겨우 일어났었는데. (설마 시차 적응을 아직 못한 건 아닐 테고) 여기 와선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고 있다.


7시쯤 눈이 떠지면 잠시 멍을 때린 뒤, 아침 스트레칭을 한다. 디스크 초기 판정을 받고 살기 위해 매일 같이 하는 일이다. 자는 동안 뻐근해진 허리와 골반, 고관절을 차례로 풀어주고, 언제나 돌덩어리가 들어있는 어깨 스트레칭도 해준다. 누운 채로 음악을 듣거나 기사를 좀 보다 보면 어느새 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8시 반, 한인 게스트하우스의 아침 식사 시간이다. 10분 정도 일찍 내려가 낯익은 얼굴 몇몇과 아마도 어젯밤이나 오늘 새벽에 도착했을 새로운 얼굴들과 눈인사를 한다. 털털하고 서글서글한 성격인 척해보지만 타고난 낯가림러인 나는 쭈뼛거리며 구석에서 밥을 먹는다. 트레킹 다녀오셨어요? 아 가실 예정이구나. 언제 도착하셨어요? 얼마나 계실 예정이세요? 비슷한 질문이 실없이 몇 번 오고 가는 사이, 밥그릇이 깨끗이 비워진다. 자취생이라 한국에서는 하루 한 끼도 제대로 밥으로 먹지 않았는데, 여기 와서는 매일 아침을 푸짐한 한식으로 먹고 있다.

아침상을 물린 뒤엔 호숫가에서 아침 산책을 한다. 9시 반쯤부터 1시간 정도를 천천히 걷는다. 아침이라 아직 쌀쌀하지만 햇살이 따뜻하다.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햇볕에 반짝이는 호수를 바라보며, 동네 유지처럼 뒷짐을 지고 설렁설렁 걷는다. 지나왔던 시간을 떠올리고, 기약 없는 앞날을 생각해본다. 덮어놓고 회피하러 온 것은 아니었다. 조금 더 마음이 건강하고 성숙한 사람이 되어보자, 하지만 욕심은 부리지 말자, 그래, 아직 나는 나의 일을 사랑해. 두서없이 여러 생각들이 물수제비처럼 머릿속 호수에서 퐁퐁 거리다가 다시 잠잠해진다.

숙소로 돌아와 햇살을 받으며 책을 읽는다. 네팔에 올 때 책 세 권을 가져왔는데 두 권은 다 읽고, 한 권은 반 정도가 남았다. 그 책을 읽는 와중에 게스트하우스 책꽂이에 꽂혀있던 ‘7년의 밤’을 발견해서 미친 듯이 읽어내려갔다. 방금 전에 마지막 장을 덮었으니 이제 가져온 책을 마저 읽어야지.


정오가 넘으면 온수가 나오기 시작한다. 태양열 패널을 사용하는 탓에 구름이 낀 날이나 이른 아침, 그리고 저녁 시간에는 따뜻한 물이 나오지 않는다. 적당히 따뜻한 물에 후다닥 몸을 씻고 잠시 뒹굴뒹굴하다, 점심을 먹으러 나선다. 아침을 늘 든든하게 먹으니 점심은 간단하게 샌드위치와 라씨를 먹는다. 점심을 먹고, 읽기를 쓰고, 가끔 이런 글을 쓰고, 또 책을 보다 보면 금세 4-5시가 된다. 게스트하우스로 어슬렁거리며 들어가 로비에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눈다. 혼자였다면 말 한마디 잘 못 붙였을 텐데, 동갑내기 ‘핵인싸’ 장기 투숙객 친구가 있어 나도 최소한의 사회성을 발휘할 수 있게 됐다. 덕분에 (거의 매일 저녁) 사람들과 맥주 잔을 기울이고 있다.

고요한 물결처럼 평화로운 마음, 진공상태 같은 (스트레스-프리의) 일상. 나쁘고 악한 것들은 모두 내려놓자, 모두 비워내고 가자. 굳이 다짐하지 않아도 그렇게 되는, 될 수밖에 없는 일상이다. 혼자만의 시간을 충분히 가지는 동시에, 성기게 뜨개질한 것 같은, 느슨한 짜임의 인간관계가 동시에 존재한다. 매일 만나게 되는, 가볍게 말을 섞고 스쳐 지나가는 새로운 사람들과의 관계도 좋다. 고립되어 있다, 고 표현해도 좋을 지난 3년 반. 나라는 창문을 드르륵, 하고 밀어 환기시키는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