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워 장딴지가 내게 준 것
잘생긴 종아리를 보면 눈이 간다. 내가 생각하는 잘생긴 종아리는 흔히 말하는 각선미와는 조금 다르다. 남자든 여자든, 적당히 근육이 잡혀 곡선이 있는 종아리가 섹시해 보인다. 건강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내 종아리로 말할 것 같으면, 나는 단연코 그런 종아리를 가지지 못했다. 다리가 s자로 휜 데다가 - 아마도 휜 다리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인지 - 테니스 공 만한 알통이 아주 땡땡하고 볼록하게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추정컨대 중학교 때 교복 치마를 입으면서 이들의 존재를 강렬하게 인지하기 시작했으니, 이 녀석은 내가 20년 가까이 품어온 자식들인 것이다. 덕분에 바지를 고를 때에는 아주 신중을 기해야 한다. 몸에 비해 골반이 큰 편이라 엉덩이는 꽉 끼고 허리는 남을 때가 많은데, 한 술 더 떠서 겨우 허리와 엉덩이에 맞아도 종아리가 숨을 못 쉬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몇 해 전부터는 스키니진의 시대가 가고 모두가 와이드 팬츠를 입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이런 내 종아리지만 기특한 구석도 있다. 튼튼한 종아리로 잘 걸을 수 있다. 다리가 휘고 골반이 틀어지고 허리 디스크 초기라 (쓰기 민망할 정도로 멀쩡한 곳이 없군...) 걷기에 썩 적합한 신체조건은 아닌데, 이 장딴지 파워를 추진체 삼아 나는 꽤 잘 걷는다.
이번 여행에서도 알파워의 활약이 대단했다. 안나푸르나 트레킹 후, 포카라 시내에서도 나는 매일같이 10km씩 걸었다. 어떤 날을 15km씩도 걸었다. 숙소가 워낙 중심가와 떨어져 있는 탓이기도 했지만, 성실하게 걷는 것이 좋았기 때문이다.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 대한 기준이 한국에서와는 사뭇 달라졌다. 편도 5km도 ‘갈만한데?’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많이 걸으니 자동으로 스트레칭도 꾸준히 하게 되었다. 내 알들을 더 키우면 부화할 것 같아서 조금 겁이 났기 때문이다.
'Transect walk'라는 것이 있다. 우리말로 하면 ‘횡단 걷기’ 쯤 되겠다. 특정 지역에 대한 첫 조사를 할 때, 지역주민과 함께 마을을 구석구석 걸어 다녀보는 것이다. 말 그대로 걸으며, 이리저리 둘러보고 이것저것을 질문하는 활동이다. 지역사회의 지리적 특징을 확인하는 동시에, 사회/문화적 자원과 욕구에 대해 파악할 수 있어 자주 쓰이는 기법이다. 프로젝트 기획이나 지역조사를 위한 출장을 가면 내가 꼭 끼워 넣는 활동이기도 했다. 점잖은 표정을 지어보지만 마음속에선 ‘제일 재밌어! 짜릿해! 맨날 이것만 하고 싶어!’ 하는 마음의 소리가 방정맞게 울린다. 이 일을 하지 않았더라면, 내가 뭐라고 낯선 나라의 어느 시골 마을 어르신들이 나를 위해 마을을 소개해주고, 통역까지 붙여 나의 질문에 답해주겠는가.
이번 여행은 통째로 'transect walk'이었다. 낯선 도시를 걸으며 다양한 냄새를 맡고, 소리를 듣고, 풍경과 사람을 보는 것이 좋았다. 감각을 집중해서 관찰하며 내 안의 호기심을 불러내는 것이 좋았다. 나는 트래킹 가이드, 게스트하우스 사장님, 길에서 만난 이름 모를 화가 아저씨, 네팔 여행이 네 번째인 한국인 친구와 함께 걸으며 묻고 답했다. 아침이면 큰 항아리 화덕 안에다 짜파티나 티베탄 브레드를 굽는 것을 보았다.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설탕을 듬뿍 넣은 밀크티를 호호 불어 마시는 것을 보았다. 맛살라 향과 함께 골목을 채우는 향초 냄새, 그리고 매캐한 매연 냄새를 맡았다. 그칠 줄 모르는 오토바이 소리와 '옴마니 반메 홈' 하는 불경 소리가 거리에 낮게 깔리는 것을 들었다. 길을 걷는 사람들이 곳곳에 자리한 작은 사원에 초를 놓고 기도하는 모습, 불경이 적힌 마니차를 돌리며 지나가는 것을 보았다.
나는 또한 걸으며 나 자신에게 묻고 답했다. 걸으며 비로소 정리된 마음들이 있다. 풍경처럼 지나쳐온 나의 취약함과 미성숙한 면을 다시 들여다보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긍정적인 면에 대해서도 생각했다. 발바닥 전체로 땅을 내딛으며 현재를 걸었다. 다가오지 않은 미래를 걸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걷는 것은 언제나 현재 진행형이고, 현실에 닿지 않은 채 자기 부상 열차처럼 걸을 수도 없다. 현재를 걸으면 미래는 곧 온다. 그러니 다가오지 않은 미래의 발걸음을 불안해할 필요는 없다. 지금 할 수 있는 건 간간히 멈추어 서서 방향을 살피는 것뿐이다. 하지만 지금 발을 움직이지 않고서는 나침반도 큰 의미가 없다.
땡땡해진 종아리를 주무르다 피식 웃음이 난다. 야, 정말 대단한 장딴지다. 어쩌자고 그렇게 걸었나. 옷장에 쪼르르 걸려있는 남색 와이드 팬츠를 보니 마음이 편해진다. 그래, 장딴지 파워로 매일을 살아야지. 통이 넓은 바지를 입고 걸어야지. 친밀한 타인들과, 혹은 나 자신과의 'transect walk'를 하며 살아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