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내게 남긴 것
나는 당신들을 야금야금 먹으며 자라났다. 그것은 때때로 취향이기도 했고 생각이기도 했으며 태도이기도 했다. 내 취향의 원형과 생각의 조각들은 당신들로부터 왔다. '그때'의 당신들이 내게 와서, 쌓이고 쌓여 지금의 내가 되었다. 당신은 어디에서 왔을까. 당신 역시 당신의 당신들의 집합일까. 그렇다면 지금의 나는 무수히 많은 당신들의 당신들로 빚어진 것일까. 당신들이 내게 남긴 것, 하지만 종국에는 내가 되어버린 것들. 나는 그것들을 우스개 소리 삼아 유산이라 부르기로 했다.
"이거 어때?" 라며 그 사람이 자신의 작업을 보여줬을 때, 나는 스물셋이었고, 얼굴이 빨개졌었다. '사실 잘 모르겠어'라고 답하려다 배시시 웃는 쪽을 택했다. 그의 뮤즈까지는 아니어도, 그와 신나게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나는 다음날부터 미술사 책을 뒤적거리거나, 주기적으로 전시를 보러 가거나, 네오룩을 즐겨찾기 목록에 추가하고 최신 전시 소식과 작품에 대한 해설을 틈틈이 읽었다. 누가 시킨 일은 아니었다. 나는 그저 그와 조금 더 재밌게 이야기하고 싶었을 뿐이었다.
그가 가편집본 시사회를 할 때 나는 스물넷이었고, 한 씬이라도 놓치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화면을 노려보았다. 나는 다큐멘터리라는 것에 대해 알게 되었고, 들려지지 않았던 목소리를 듣게 되었다. 거리에 나와 절박하게 외치는 사람들을 보게 되었다. 그와 함께 작고 큰 영화제, 그리고 공동체 상영회를 돌아다녔다. 그의 영화에 대한 리뷰를 쓰고, 해외 영화제에서 온 이메일에 그를 대신해 짧은 영어로 답장을 썼다. 우리는 각종 집회와 취재의 현장에 따로 또 함께 있었다.
그가 위성과 처음 통신한 날, 잔뜩 들떠 눈을 반짝일 때 나는 스물여덟이었고, 처음으로 내가 문과생인 것을 후회했다. '인터스텔라'를 보며 잔뜩 흥분한 그가 귀여웠지만 나도 같이 신나고 싶었다. 코딩을 배울 수는 없으니 개발자의 삶과 업계에 대해서라도 알아봐야겠다 싶었다. '플래텀'이나 '로켓펀치' 같은 스타트업 플랫폼 사이트가 즐겨찾기에 추가되었다. 개발자의 '웃픈' 현실에 대한 짤방을 찾아보며 낄낄거렸다. 전에 없던 새로운 세계가 내게 왔다.
덕분에 나는 지금의 내가 되었다. 그리고 그들도 지금의 그들이 되었(을 거라고 믿고 싶)다. 우리는 그렇게 타인을 흡수하고 그것을 영양분 삼아 취향과 세계관을 만들어간다. 그들은 사라졌지만 그것들은 내 안에 남았다. 나는 당신에게서 사라졌지만 어떤 조각은 당신 안에 남아 당신의 도형 한 귀퉁이를 메꾸었다. 서른에 그를 처음 만났을 때, 그는 나 같은 사람을 처음 봐서 신기하다고 했다. 내가 하는 일이 좋은 일이자 옳은 일이라고 했다. 무채색의 이십 대를 보낸 그는 내게도 신기한 사람이었다. 우리의 대화는 종종 끊기고 그의 삶의 서사는 빈약했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수심 30m, 해발 5,895m만큼, 우습지만 내가 경험한 세상을 알려주고 보여주고 싶었다. 그는 사라졌지만 나의 태도는 남았다. 문 앞에 선 누군가의 손을 잡고 한 걸음씩 걷고 싶다. 그들이 내게 그러했던 것처럼 말이다.
강의를 마치고 돌아올 때 종종 버스 창문에 얼비친 내 얼굴을 바라봤다. 그럴 땐 '과거'가 지나가고 사라지는 게 아니라 차오르고 새어 나오는 거란 생각이 들었다. 살면서 나를 지나간 사람, 내가 경험한 시간, 감내한 감정들이 지금 내 눈빛에 관여하고, 인상에 참여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것은 결코 사라지지 않고 표정의 양식으로, 분위기의 형태로 남아 내장 깊숙한 곳에서 공기처럼 배어 나왔다. -김애란, <풍경의 쓸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