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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위밍 May 22. 2019

책방의 공동체

책방 스무 곳에 입고 문의 메일을 보냈다. 7년 차 직장인 짬밥으로, 표 안에 책 정보와 보도자료를 착착 넣은 문서를 첨부해서. 지난주 토요일 밤에 일괄적으로 보냈는데, 오늘까지 열 통의 답장을 받았다. 여덟 곳에서 입고하고 싶다고 했고, 두 군데에서는 까였다. 조금 아쉽긴 했지만 이 정도 타율을 기록한 것만 해도 훌륭하다고 생각했다. 서울에 있는 책방이라면 전부 다 직접 가서 입고하고 싶었는데, 이번 주 내내 몸이 영 골골대서 몇 군데는 택배로 보냈다. 내일은 을지로 노말에이에 방문해서 입고하기로 했다. 


서점을 리스트업 하는 데에만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전국 책방 정보를 모아둔 동네서점 지도 덕분에 큰 어려움은 없었다. 다만 이 많은 책방 중 어디에 내 책이 놓여있어야 할까,를 고민하고 따져보느라 여러 날을 보냈다. 책방이 몇 년 새 정말 많아졌다는 걸 새삼 느꼈다. 그러니 “책 팔아서 먹고살 수 있냐”는 우려와, 뭐 하나가 유행하면 우후죽순으로 늘어나는 자영업 생태계에 대한 곱지 않은 시선도 느껴진다.


하지만 ‘그 많은’ 책방의 홈페이지와 sns를 하나씩 들어가 보며 내가 확인한 것은, 단순히 책이라는 재화를 판매하는 곳으로써의 서점이 아니라, 지역 커뮤니티의 일원으로서의 ‘동네 책방’이었다. 많은 책방들이 책 읽기 및 글쓰기 모임을 운영하고 있었고, 이것은 대형 서점이 제공하는 베스트셀러 작가의 강연과는 또 다른 경험을 선사한다. 어찌 보면 시립/구립도서관의 기능 중 일부를 책방이 나누어 가지는 측면도 있는데, 이 점은 환영받아 마땅하다. 시립/구립 도서관의 커버리지는 매우 넓기에, 이들이 골목 안으로 들어온 동네 책방이 지향하는 소규모 커뮤니티를 만들고 발전시키기란 어렵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 이른바 ‘취향의 공동체’를 지향하는 각종 유료 모임이 많아졌는데, 나 역시 별다른 취미가 없고 인간관계가 제한적인 삼십 대 직장인으로서 이런 모임을 관심 있게 지켜봤다. 내 돈을 내고 가기엔 너무 비싸서 가본 적은 없지만, 한편으로는 이런 현상이 씁쓸하기도 했다. 이제 우리는 돈을 내지 않고는 나와 생각과 취향을 나눌 관계를 맺지 못하는 것인가 싶어서. 특히나 멋진 공간을 소유하고 운영하는 커뮤니티의 경우, 멤버십 중심의 닫힌 공동체를 지향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것이 그 커뮤니티를 더욱 매력적이고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요인이겠지만, 어쩐지 내겐 너무 먼, ‘그들이 사는 세상’ 같기도 했다.


이런 측면에서, 고액의 가입비를 내지 않아도, 강남이나 홍대의 우아한 공간에 가지 않아도, 동네에서 이웃들과 책을 읽고 글을 쓸 수 있는 책방이 늘어나는 게 반갑다. 유료 모임은 동네책방과는 또 다른 그 나름의 가치와 소구 하는 타겟층이 있다. 어쨌거나 선택지가 넓어지는 건 모두에게 좋은 일이다. 부끄러운 얘기지만, 책을 만들기 전까지 나는 동네서점에 큰 관심이 없었다. 나는 언제나 알라딘이나 예스24에서 책을 사던 사람이었다. 수요자였던 적이 없었으면서 공급자가 되려 한 셈이지만, 이번을 기회로 또 새로운 세계를 알게 되었으니 다행이다.


'역세권', '샵세권(코미디언 김숙 씨가 자주 쓰는 표현인데, 헤어 메이크업샵 주변의 생활권을 뜻한다)', '올영권(내가 방금 즉흥적으로 만들어낸 말인데, 집 주변에 올리브영이 있느냐 하는 말이다)'처럼, '동네책방권'이라는 말이 생기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책방을 중심으로 꾸려지는 나의 생활권이라니, 멋지지 않은가. 퇴근길에 슬쩍 들러 믿음직한 주인이 골라놓은 책을 한 권 사고, 책방을 통해 알게 된 동네 주민들과 삼삼오오 책방에 모여 함께 책을 읽고 수다를 떨고, 그러다 흥이 오르면 우르르 밤 산책을 가거나 편의점 앞에서 캔맥을 먹는 생활. 공간을 중심으로 모이는 사람과, 거기서 생성되고 파생되고 발전하고 역동하는 관계들. 동네 책방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그래서 '그 많은' 책방들이 힘을 내어 그곳에 있어주었으면 좋겠다. 뭐, 그래서 내 책도 많이 팔리면 더 좋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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