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잠시 동안은 서운하고 아쉽고 시무룩해지는 이별의 순간들
어떤 관계는 그곳이 아니면 만들어지지도, 유지되지 않기도 한다. 어떤 사람들은 그 장소, 그 시간이 아니면 다시는 만나지 못하기도 한다. 매일매일이 누군가와 스쳐 지나가고, 이별하고, 가까워졌다 멀어지는 날의 연속이지만. 어떤 날에는 여전히 그게 익숙하지 않아서 당황스럽다. 이 쓸데없이 헤픈 마음을 어쩌면 좋나, 하면서.
나는 인간관계가 좁다 못해 폐쇄적이라는 말로 표현할 수 있을 정도이고, 아주 소수의 사람들만 곁에 둔다. 내게 '오픈 마인드'의 역할이 부여된 상황이라면 충실히 그 기능을 다하며 너스레를 떨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역할에 충실할 뿐이지 내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불특정 다수의 사람에 대한 애정이 넘쳐흐르는 타입은 아닌 것이다. 내 경계 안 쪽의 사람들과는 싱글 침대에서 살을 비비며 잘 수 있을 정도지만, 반대의 경우라면 인사도 하기 싫어 피해 다니는 쪽이다.
하지만 이 경계의 기준이라는 게 좀 이상해서, 그냥 내 마음에 드는 사람은 무슨 짓을 해도 언제나 좋고, 내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은 뭘 해도 별로다. 그리고 그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에는 친구나 동료라는 카테고리로 묶이지 않는 특수관계들이 있다.
허리 도수치료가 끝났다. 치료를 종결해도 되겠다는 의사의 말을 듣고, 나는 반사적으로 도수치료 선생님의 얼굴을 떠올렸다. 접수처의 간호사는 해맑게 웃으며 오늘 치료를 마지막으로 하시면 된다고 했다. 치료실로 들어가며, 나는 언제 선생님과 작별인사를 해야 하나 타이밍을 살폈다. 그래도 5개월이나 매주 본 사인데, 인사는 해야 하지 않나. 하지만 이런 관계가 으레 그러하듯, 건조하고 간결한 인사로 치료자-환자의 관계가 종료되었다.
- 아, 그럼 오늘이 마지막이군요. 혹시 나중에 불편하시면 연락 주세요.
- 네, 아 뭔가 아쉽네요, 선생님.
조기 종영한 드라마의 엔딩신처럼, 뚝, 하고, 화면이 갑자기 블랙아웃된 것처럼 인사를 나눴다. 뭘 이런 데까지 마음을 쏟나 하면서도,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는 괜히 마음이 좀 쓸쓸했다.
탄자니아에서 한국으로 돌아올 때, 그곳 사람들과의 송별회는 재회가 전혀 보장되지 않는, 영원한 이별이라고 생각했다. 그야말로 완전한 이별이었다. 딱히 정이 많고 사람을 좋아하는 성격도 아니면서, 사랑과 애정을 지속적으로 퍼주는 타입도 아니면서. 나는 그 어색한 이별의 장면이 싫어서, 돌아가기 직전에야 떠난다는 말을 했다. 탄자니아 색채가 짙게 밴 선물을 받고 단체 사진을 찍으면서, 이런 '이별 세리머니', 그리고 이런 상황이 올 때마다 늘 훌쩍거리는 내가 너무나 익숙한 클리셰라는 걸 알면서도, 나는 또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울 수밖에 없었다.
열흘 간 바(bar) '낮섬'에서 일하며 새로운 사람들, 혹은 이미 알던 사람들을 새로 알았다. 나는 그 공간에서 만들어지고 발전한 관계들을 지켜보는 게 재밌었다. 동네 단골들은 스스럼없이 내게 말을 걸고 질문을 던졌다. 바 안쪽에 앉아, 조금은 낯선 사람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시간이 좋았다. 나를 보러 굳이 그곳까지 온, 이미 아는 사람들도 있었다. 친구들, 동료들이 하루 걸러 하루씩 슬그머니 찾아왔다. 나는 바 문을 열고 들어오는 익숙한 얼굴들의, 낯선 표정을 보는 것이 좋았다. 바를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아, 좋아하는 음악을 틀고 밤이 늦도록 깔깔 대며 수다 떠는 시간이 좋았다. 맘에 드는 책을 하나 뽑아 들고 읽으며, 오늘은 또 누가 문을 열고 들어올까 기대하는 마음도 즐거웠다. 같은 자리에 앉아, 오고 가는 사람을 맞고 배웅하는 일. 낯설었지만 2주 만에 금세 익숙해져서, 어제 마감을 할 때에는 좀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이 기분이 하루 이상 가지 않을 것이라는 걸 알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오늘의 울적함을 까맣게 잊으리란 걸 너무나 잘 알지만, 여전히 잠시 동안은 서운하고 아쉽고 시무룩해지고, 그런 이별의 순간들이 있다. 그래서 오늘은 많이 걸었고, 조금 지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