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스위밍 Jan 22. 2020

걱~!정하지 마세요 울랄라!

회사 근처에 좋아하는 빵집이 있다. 그 집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빵은 무화과 깜빠뉴인데 고 녀석 하나가 6천 원쯤 한다. 자주 사 먹기엔 조금 비싸다 싶지만 매일 저녁 8시 이후 부터하는 ‘네 개에 만원’ 찬스를 이용하면 된다.

평소보다 늦게 퇴근하는 길, 밀려드는 일을 생각하니 조금 막막한 기분이었는데 8시가 넘었다는 걸 깨닫자마자 흥분되기 시작했다. 빠른 걸음으로 빵집으로 직진해 만원 어치를 골라 담았다. 볼록한 빵 봉지를 받아 품 안에 안았다. 얼른 집에 가서 뜯어먹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빵 하니까 말인데, 회현역 근처 ‘벨기에 빵집’의 호두 무화과 깜빠뉴도 참 맛있다. 요즘 프랑스어 배우느라 일주일에 두 번 회현에 있는 알리앙스에 가는데, 수업이 시작하기 전에 빵집에 들르는 게 하나의 의식이 되었다.

알리앙스 하니까 또 우리 프랑스어 선생님이 생각난다. 좋은 선생님은 무언가를 알려주는 사람이 아니라 그것을 배우는 일이 얼마나 신나는지 느끼게 해주는 사람 같다. 선생님은 정말 유쾌하고 엘레강-스하고 프랑스 예술과 철학을 사랑하는 게 느껴지는 사람이다. 한국어를 할 때는 경상도 억양이 많이 묻어있는데 묘하게 우아한 경상도 악센트다. 그녀가 가장 자주 하는 말은 “너~무 좋아요” “발음이 놀~라울만큼 벌써 좋아지셨어요” “절~대 스트레스받지 마세요” “마지막엔 완~벽하게 됩니다” “다~잘하게 됩니다 걱~! 정하지 마세요~”다. 주문 같은 그 말을 듣다 보면 정말 모든 게 다 잘 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반면 프랑스어를 할 땐 막 프랑스 영화에서 튀어나온 배우처럼 말한다. 나는 열심히 그녀의 얼굴 근육과 입모양을 모방하며 ‘에꾸떼 앤 헤베떼(리슨 앤 리핏)’ 한다. 언어를 배운다는 건 ‘말’ 뿐만 아니라 그 언어를 말하는 사람들의 손짓과 표정, 나아가 독특한 분위기까지를 포함하여 체득하는 일이다. 그래서 나는 프랑스어를 배운다기보다는 프랑스어로 연극을 하러 간다는 마음으로 수업에 임한다. 그날 배운 표현으로 옆사람과 대화 연습을 할 때면 발음보다 상황극 연기를 잘한다는 칭찬을 듣는다. 언어적 표현보다 비언어적 표현, 아니 성대모사를 잘 하는 타입. 역시 언어의 반은 감탄사와 제스처다, 울랄라!

작가의 이전글 2019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