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직하겠다고 말한 뒤 한 달이 지났다
휴직 의사를 전달하기 위한 면담을 한 지 꼬박 한 달이 지났다. 그 사이 긴 휴가도 다녀왔다. 지난 한 달간 신체와 감정의 변화를 가만히 들여다본다. 한 달 전의 내가 사뭇 낯설게 느껴진다. 끝나지 않을 것 같던 무더위가 언제 그랬냐는 듯 자취를 감춘 것처럼, 불쾌지수를 높이던 무거운 물방울들이 어느덧 바스라져 사라지고 이제는 날렵한 바람이 손가락 사이를 빠져나가는 것처럼. 무겁고 불안했던 내 감정도 많이 가벼워졌다. 그리고 나는 일상을, 어쩌면 나를 다시 회복하는 중이다.
아침이면 탕비실에서 사람들에게 실없는 농담을 건네고, 프린트기 앞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그날 먹은 점심메뉴를 묻고, 릴레이 회의를 마치고 나온 사람들에겐 어깨를 두들겨준다. 그럴 수 있게 되었다. 비로소 관자놀이에 붙어있던 가림막이 걷히고 시야가 넓어져 다른 사람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집에 돌아오면 좋아하는 뮤직비디오나 라이브 영상을 찾아 빔 프로젝터에 연결해서 재생하고, 자기 전엔 짧은 요가로 하루를 마무리한다. 좋아하는 팟캐스트를 매일같이 챙겨 듣고, 유튜브에서 각종 영상을 찾아본다. 한동안 만나지 않았던 사람들에게 먼저 연락을 해서 만나고, 간간히 그들을 위로하기도 한다. 무엇보다, 내 이야기를 3인칭 관찰자 시점에서 담담하게 할 수 있게 되었다. 분노의 표출이나 하소연을 더 이상 하지 않게 되었다.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상담을 받은지도 한 달이 되었다. 의사는 이제 4주가 지났으니 첫날 왔을 때 했던 설문지를 다시 한번 작성해달라고 했다. 3점 척도 문항 중 대부분의 질문에 '전혀 아니다'를 체크하면서 - 혹시 이거 의도적으로 내가 괜찮은 척하려고 모두 0점에 체크한다고 생각하면 어쩌나 싶을 정도로 - 우울과 불안이 사람의 일상을 이렇게 바꾸어놓을 수 있구나, 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그리고 내가 최근에 깨달았던 일상의 변화들이 실제로 불안이나 우울의 척도로서 테스트 문항으로 쓰인다는 사실도 꽤나 인상적이었다.
'밑천이 바닥났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 나 여기까지였구나, 이게 내 바닥이었구나,를 확인하고 백기를 드는 심정이었다. 나는 기어이 내 바닥을 드러내고야 말았다. 그 사람 밑에서 3년을, 이 조직에서 4년을 버티다니, 하며 스스로를 칭찬해 주다가도, 참담한 심정이 들기도 한다. 무던한 사람이고 싶고, 의연한 사람이고 싶었다. 매번 그러지 못하는 내가 거추장스러웠다. 나니까 이만큼 참았지,라고 생각하며 스스로가 대견하다가도 동시에 다른 사람도 이 정도로 힘들어하면서 참았을까, 하는 생각도 했다. 서른둘이면 여유와 유머를 갖춘 멋진 어른이 될 줄로만 알았는데. 그래, 내 밑천 여기까지였구나, 싶어 허탈한 웃음이 난다. 그런데 어떡하겠어, 여기까지 인걸. 그냥 등산하며 저질체력 들킨 것처럼, 얼굴은 웃고 있지만 다리는 후덜 거리며 팔자걸음으로 터덜터덜 걷는 것처럼. 전 여기 까지네요, 라며 머쓱해하며 웃을 수밖에.
되찾은 일상이 새롭고 감사하다. 천천히 지난 몇 개월을 돌아보고, 더 나아가 어린 시절을 굽어보고,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앞으로를 바라본다. 대부분의 실패와 약간의 성공의 경험을 마음이 새겨, 다음에는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자,고 다짐한다. 어린 시절의 나를 위로하고 지금의 나를, 이것 역시 나라고, 하지만 조금 더 나아질 수 있다고 인정하자,고 되뇌인다. 되찾은 이 여유와 일상을 잊지 않고, 타자의 손을 잡고 농담을 건네며 걸어갈 수 있는 사람이 되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