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중에 만난 이상하고 나쁜 놈들
정말 별의별 사람이 다 있다.
게스트하우스에 새로 도착한 여행객들과 인사를 하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뉴질랜드에서 온 붙임성 좋은 한 남자는 자신의 일과 여행, 여자 친구 이야기를 쉴 새 없이 이야기한다. 하지만 이내 한 명 두 명 그 남자를 슬슬 떠나는 게 눈에 보인다. 역시 너무 자신의 이야기만 하는 사람은 친구를 사귀기 힘들단 걸 다시 한번 느낀다.
아무튼 별 관심도 없는 이야기를 피해 내 할 일(프라하행 기차표 예매)을 하러 갈 때를 노리고 있던 나. 그런 내 속도 모르고 그 아이는 본인이 베를린과 슈투트가르트에서 찍은 사진을 보여준다. 내가 끼어들 틈도 주지 않고 사진에 대해 설명하며, 아이폰의 사진을 넘기던 그 아이. 풍경 사진이 갑자기 한 사람의 사진으로 바뀌었다.
"이런, 실수를 해버렸네. 미안. 내 여자 친구 사진이야."
여자 친구 사진이라는데, 그 사진 속 여자는 나체였다.
"하하 이것 참 민망하네. 이 사진이 어떻게 된 거냐면.."
물어보지도 않은 여자 친구 이야기를 한다. 그러면서 잘 됐다는 듯 이전 여자 친구의 거의 벗은 사진을 그새 넘긴다. 내가 왜 슈투트가르트에서 홀딱 벗은 여자 사진을 보고, 찐따 같은 남자의 이야기를 듣고 있지? 인내심이 극에 달한 나는 피곤하다고 바로 자리를 나왔다. 가만히 보니 여행 사진을 보여준 것도 여자 친구의 사진을 보여주려는 의도가 아니었을까? 아니 여자 친구가 아닌, 그냥 여자 나체 사진을 휴대폰 사진첩에 모으는 변태일지도 모른다.
세계 어느 곳에나 존재하는 더러운 놈들
일요일 아침 10시, 짐을 챙겨 게스트하우스에서 나왔다. 드문드문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 조깅하는 사람들, 공원 내 카페에서 벌써 커피를 마시고 있는 사람들. 기차역으로 가기 위해 걷고 있는 공원엔 부지런한 사람들이 삼삼오오 나와 있다.
그 분위기가 좋아 슈투트가르트를 떠나기 아쉽다고 생각하는 차에,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남자가 다가와서 말을 건다. 우리는 별로 긴 대화도 나누지 않았다. 어디 가느냐, 기차역에 간다 등. 1분도 채 지속되지 않은 대화 중 난 너무나 어이없게도 이 맑은 하늘 아래 슈투트가르트 공원에서 성추행을 당했다. 이렇게 사방이 훤한 공원에서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인가. 너무 어이가 없어 몇 초간 패닉 상태였다. 다리 사이를 걷어찰까, 욕을 할까. 하지만 나 지금 혼자 있는데 그 아이가 나를 해코지 할까 봐 겁난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내 머릿속을 채우고 있는 생각은
'기차 놓치면 안 되는데.'
이 상황에서 기차에 더 신경 쓰는 내가 미웠다. 꺼지라는 말만 내뱉고 급하게 기차역으로 걸어갔다.
도대체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시간이 더 있었으면 그 자식을 끌어다 경찰에 신고했을까?
여자 혼자 여행하는 것은 분명 이런 위험부담이 존재한다. 여행 중 성추행을 당하면 어떻게 해야 할까? 독일처럼 영어가 국어가 아닌 나라에서는 경찰에 가서 신고하는 것도 쉽지 않을 텐데... 하지만 반드시 그놈을 걷어차든 경찰에 신고하든, 아니면 두 가지 방법을 다 하든 꼭 해야 한다. 난 그랬어야 했다. 기차 시간만 생각하던 나는 지금 약간 후회가 된다.
여행에서 좋은 일만 일어날 수는 없지만, 살면서 웬만하면 안 겪으면 좋을 일들을 여행까지 와서 겪는 것도 좀 그렇다. 그렇지만 난 여전히 타인과의 여행보다 혼자 여행하는 걸 더 선호하고, 혼자 있을 때 내가 느끼는 감정의 폭을 사랑한다. 이런 일은 혼자 온 여행이라서 겪는 게 아니라 그날 재수가 없어서 생기는 것일 뿐이다. 세계 어느 곳에서나 개념 없는 사람들이 지금도 저지르고 있을 일이니까. 개인적으로 아동 성추행부터 직장 성추행까지 골고루 겪어본 내게 혼자 하는 여행과 성추행의 상관관계는 없다.(고3 때 반 친구들과 성추행에 대해서 이야기한 적이 있다. 이야기하는 10명 중 거의 모두가 최소 한 번씩은 변태에게 당한 적이 있었다. 어떤 당찬 친구는 가슴을 만지고 도망가는 남자를 마침 눈에 띈 돌을 들고 추격했단다. 그리고 돌 들고 소리 지르는 여자를 도와주는 사람들이 있어 그놈을 결국 잡았다는...) 여자를 성적 대상으로만 보는 그 인간들이 각성하여 그런 일을 다시는 저지르지 않는 것이 가장 좋은 시나리오지만, 일단은 그런 일을 겪게 되었을 때 피하지 말고 당당하게 대처하는 것이 우선이다. 아무튼 살면서 이제는 좀 겪지 말았으면 하는 일을 유럽에서 또 겪었다. 전기충격기 같은 걸 좀 사둬야 되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