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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라 Oct 26. 2016

장기 여행에는 휴식이 필요하다.

프라하에서 방콕하기

"나 여행한 지 50일밖에 안 됐는데, 너무 피곤해. 그냥 집에 가고 싶어. 여행 내 체질이 아닌가 봐."

얼굴을 한 번도 본 적은 없지만 페이스북 여행커뮤니티에서 가끔 여행에 대해 이야기하는 친구가 있다. 그 친구는 이미 여러 대륙을 몇 번씩 휘젓고 다닌 여행 베테랑. 친구에게 맨날 여기저기 돌아다니기 힘들고, 안정이 되지 않으니 우울해진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50일이면 오래 한 거야. 그리고 너 지금까지 게스트하우스나 카우치 서핑해서 잤잖아. 남들 있는데서 자는 게 얼마나 피곤한데. 좀 쉴 때가 됐어. 이번에 좀 저렴한 도시로 가서 싼 호텔방에서 혼자 며칠 지내면 괜찮아질 거야. 나도 그러거든."

그의 이야기를 듣고 50일간 내가 했던 일들을 돌이켜 보았다. 사람들이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신경을 곤두세우는 일, 항상 소지품에 신경 쓰고 조심하는 일, 조용히 있고 싶은데 누군가 말 걸어 시답잖은 대화를 하던 일, 새벽에 다른 사람들이 꺨까봐 불도 켜지 않고 휴대폰 불빛에 의지해 씻지도 않고 침대로 들어가는 일.(아마 술 취해서 씻을 마음도 없었겠지만.) 늦게 들어오는 사람에게 방해받지 않기 위해 쓰고 자던 눈가리개와 귀마개. 그것마저 너무 지겹게 느껴졌다. 

그래, 일단 서유럽을 벗어나서 좀 저렴한 곳으로 가자. 그래서 생각난 곳이 프라하. 다음날 아침 10시 30분에 출발하는 프라하행 기차를 예매했다. 그렇게 아무 생각 없이 쉬고 싶단 생각에 물가가 저렴한 체코를 선택했다. 아무것도 안 하고 방 안에 틀어박혀 있는 게 목적이었기에 가장 저렴한 호텔방에 예약했다. 프라하 블타바 강의 배를 개조해서 만든 호텔이라 강가에 위치해 있지만, 중심지와는 거리가 있는 곳.


유럽에서 첫 기차여행

50일 간 유럽을 여행했지만 기차로 이동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기차임에도 불구하고 버스보다 저렴한 가격에 표를 예매했는데, 알고 보니 모든 간이역에 정차하는 완행열차, 그리고 3시간 후에는 버스로 갈아타는 일정이었다. 덕분에 독일의 간이역을 구경하는 소소한 여행. 게다가 버스에서는 운이 좋아 이층 버스의 가장 앞자리에 좌석을 배정받았다. 여행객에게 가장 명당자리가 아닐까. 차창 밖으로 보이는 도로 표지판의 언어는 더 이상 독어가 아니다. 강이 나오고, 시야 가득 중세 유럽 건물이 가득 찬 이곳. 프라하에 도착했다. 버스 안의 사람들은 벌써부터 사진을 찍으며 호들갑을 떨기 시작한다.

드디어 방콕을 시작하다!

예약할 때는 가장 작고 저렴한 방을 골랐는데, 빈방이 하나밖에 없었던지 난 침대가 두 개 있는 방을 받았다. 덕분에 3일 내내 굴러다니며, 방에 틀어박혀 폐인처럼 지냈다. 아침에 조식을 먹고, 조식으로 나온 삶은 계란과 빵을 몰래 들고 나와(가난한 여행객의 습성을 버릴 수 없다.ㅠ) 그때부터 방에 틀어 박혔다. 내가 밥을 먹고 아침마다 빵을 조금씩 뜯어 백조에게 뜯어주면 그새 한 무리가 우르르 몰려와 빵을 달라고 내 얼굴만 보고 있다. 적게 던져주면 서로 부리를 쪼아대며 나름 치열하게 싸운다.

유명한 체코 맥주 KOZEL 1.5L를 한 병 사서 물처럼 마시며 하루 종일 방 안에 있었다. 예나에서 선배에게 받아온 영화와 다큐멘터리를 하루 종일 봤다.

호텔방에서 본 프라하의 아침

그렇게 3일을 콕 처박혀서 배고프면 밖에 나가 먹을 것을 사와 다시 처박혀 있었다.

3일을 폐인으로 지내니 그제야 움직이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여행까지 와서 폐인으로 지내면 너무 시간 낭비가 아닌가 혹은 너무 배부른 소리 하는 거 아닌가 싶을 수도 있다. 하지만 호텔에서 자지 못하는 가난한 배낭여행자에게는 그런 시간이 한 번은 필요하다. 고급 호텔일 필요 없다. 그저 혼자만의 작은 공간에서 푹 자고 푹 쉴 수만 있으면 된다.

호텔방에서 본 프라하의 저녁

그저 집에만 가고 싶던 마음이 조금 누그러지고, 더 탐험하고 새로운 것을 보고 싶은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이제야 여행이 어떤 것인지 조금 감이 잡히기 시작한다.


* 브런치 글 선정기준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브런치 대문에 제 글이 걸렸어요. 언제 사라질지 모르니 얼른 캡처해두기!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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