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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라 Oct 26. 2016

프라하의 포도밭과 오르간 콘서트

프라하에서 방콕한 지 3일 만에 호텔에서 나왔다. 3일 동안 방 안에 틀어박혀 있었더니 드디어 나가고 싶어 졌다. 호텔 리셉션에 있는 지도 한 장을 들고 트램을 탔다. 지도에 표시되어 있는 곳에 트램을 내렸더니 사람들로 바글바글하다. 프라하의 중심이다. 많은 한국인과 중국인이 지나간다. 이곳이 정말 유명한 곳이긴 하구나..


동유럽의 파리

체코의 프라하나 헝가리의 부다페스트, 또는 루마니아의 부카레스트를 두고 사람들은 동유럽의 파리라고 부른다.(동유럽에 뭔 놈의 파리가 이리 많은지... 오늘도 파리는 바쁘다.) 아직 10분 정도밖에 프라하를 걷지 않았지만, 왜 동유럽의 파리라고 하는지 알겠다.(따지고 보면 체코는 중유럽이라고 했다.) 원형 그대로 남아있는 프라하의 중세시대 건물과 벽돌 길, 도시를 관통해 흐르는 강과 운치를 더하는 트램. 모든 게 거의 완벽하게 보존되어 있다. 게다가 여러 갈래로 난 작은 골목길과 귀여운 상점들. 시간이 그대로 멈춘 것 같다. 초콜릿과 쿠키로 만든 집과 자동차. 한 입 베어 물기엔 너무 아까운 쿠키가 가득하다. 귀여운 집들을 구경하며 길을 걷다 보니 나도 모르는 새 프라하 성에 도착했다. 하지만 이미 오후 3시를 훌쩍 넘었기에 성 관람은 내일 하기로 했다.

성을 지나쳐 반대쪽으로 가니 프라하의 시내가 한눈에 보이는 곳이 나타났다. 이 좋은 자리를 놓칠 수 없었던지 스타벅스도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카페의 옥상이지만, 사람들의 상태를 보면 루프트탑 바를 보는 것 같다. 아름다운 전경 덕에 근처 푸드트럭에서 맥주를 팔고 있다. 펍에서 먹는 것보다는 비싸지만 프라하 시내와 강을 보며 한 잔 하는 걸 생각하면 매우 만족스럽다. 내가 서 있는 발아래부터는 포도밭이 펼쳐지고 있었는데, 작은 와이너리와 레스토랑이 프라하 시내를 바라보고 있다. 슈투트가르트에서 봤던 포도밭에 이어 이곳에서도 포도밭을 다시 보니 반갑다. 포도밭이 말해주듯 한낮이 되자 과연 이 곳은 눈이 부셔 선글라스 없이는 조금 힘들다. 지그재그로 난 길을 따라 포도밭 사이를 걸어 내려갔다. 길 사이사이 작은 펍과 레스토랑. 누군가와 함께 여행 중이라면 저녁을 한 끼 하고 싶은 그런 곳이다.


그동안 유럽의 교회를 다니면서 운이 좋을 때는 오르간 연주를 들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그 오르간 연주를 은근히 기다리던 나. 그리고 한 블록마다 교회가 있는 프라하에서 교회의 수만큼 자주 눈에 띄는 오르간 콘서트의 광고. 자꾸 보면 갖고 싶다고 했던가. 결국 오늘 저녁 오르간 콘서트에 가기로 마음먹고 가장 저렴한 콘서트를 찾아다녔다. 적당한 곳을 골라, 가난한 여행객이니 가격 좀 깎아줄 수 없겠냐며 네고를 했더니. 마음씨 좋아 보이는 판매원은 내게 학생요금만 받았다. DC를 받은 기쁨을 누리고자, 베트남 쌀국수집에서 맛있는 저녁을 해결했다. 

해가 진 교회 예배당에서 바이올린 연주자와 오르간 연주자 2명의 연주가 시작됐다. 오르간 연주자는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오르간을 연주하기 위해 곧 사라졌고, 무대 위엔 바이올린 연주자만 뻘쭘하게 서 있다. 곧이어 예배당 가득 퍼지는 웅장한 오르간 소리. 오르간 콘서트답게 콘서트의 주인공은 오르간이었고, 바이올린은 한 번씩 걸러가며 오르간을 도왔다. 하지만 연주자가 눈에 보이지 않는 오르간이 독이었던 걸까. 아무도 내 눈에 보이지 않는 게 지겨웠던지 그만 졸아버렸다. 문화를 즐기는 사람인 척 오르간 콘서트에도 갔건만, 졸아버리다니... 하느님에게 바치는 아름다운 노래는 내겐 그저 자장가였던 걸까. 그때의 멜로디는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고, 다만 묵직하게 울리는 오르간의 파동만 기억난다.

밤이 된 프라하는 여전히 아름다웠다. 많은 관광객 덕에 도시 곳곳은 오후만큼 아니 오후보다 더 활기차다. 유명한 프라하 성의 야경 덕분에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밤거리를 활보하고 있다. 낮에는 그렇게 걸리적거리는 사람들이 밤에는 돌아다녀줘서 고맙고 감사하다. 난 정말 간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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