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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라 Oct 27. 2016

[프라하] 이야기가 마음껏 펼쳐지는 곳

프라하 성, 황금소로

프라하에 도착한 지 5일 만에 프라하 성을 탐방했다. 나름 일찍 나온다고 나왔는데 성 정문에 벌써 꽤 많은 사람들이 있다. 티켓을 구매한 후 제일 먼저 간 곳은 성문 앞을 떡하니 버티고 있는 성 비투스 교회. 

그동안 많은 교회를 보았지만 왜 프라하 성이 유명한지를 단번에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드는 교회다. 뾰족하고 거대한 교회는 뭐랄까 거대한 거인을 마주 보는 느낌이다. 교회의 외관도 정말 대단했지만, 거대하고 높은 홀을 보고 입을 쩍 벌릴 수밖에 없었다.

아름답긴 하지만 이상하게 차가운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마리아는 따뜻하고 우리를 감싸안는 이미지임에도 여기에선 그걸 느끼지 못하겠다. 성 안에 있는 교회니 왕이 사용했겠지. 항상 전쟁을 하고 백성들에게는 관심 없을 그 이미지가 아닐지... 어쨌든 교회는 정말 화려하고, 기교가 넘친다. 내가 이만큼 예쁘니까 날 보라고 손 흔드는 미녀 같다. 교회의 한 편, 그림이 가득한 방은 성 비투스 교회의 화려함의 절정인 듯하다. 화려한 샹들리에와 벽 구석까지 꼼꼼하게 그려진 벽화. 과연 왕이 예배를 드린 교회답다.

교회의 뒷모습은 더욱 엄청났다. 햇살을 뒤로 받으며 우뚝 서 있는 교회는 교회라기보다는 마법사가 살고 있는 곳처럼 보인다. 이상하게 기괴스럽지만 신비한 느낌이 나는 교회. 교회탑 바로 아랫방에는 가고일이 살고 있을 것만 같다. 건물 자체로서도 굉장하지만 밤이면 프라하 야경을 멋있게 만들어 전 세계 관광객을 프라하로 끌어들이는 일등공신, 성 비투스 교회.

화려함과 거대함에 질려 옆을 쳐다보면 정말로 다소곳하게 서 있는 건물이 있다. 다른 곳에서 보면 예쁘다고 했을 법하지만, 교회를 보고 나서는 왠지 무미건조해 보이는 건물. 하지만 이곳은 체코 대통령의 관저이다. 건물 내부의 보안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체코에선 대통령의 집 앞마당을 누구나 왔다 갔다 한다.

교회 뒷면에는 프라하에서 가장 오래된 교회라는 성 이르지 교회가 있다. 성 비투스 교회와는 확연히 다른 느낌의 교회. 교회탑 꼭대기의 십자가만 아니면 전형적인 중세 유럽의 일반 집 같아 보인다. 빨간 건물이 참 귀여워서 색칠공부 책 속의 교회 같다. 하지만 붉은 외양과는 다르게 내부는 차가운 돌과 칠이 벗겨진 벽의 연속이다. 영화 <다빈치 코드>의 한 장면이 떠오르기도 한다. 전체적으로 차갑게 하얀 느낌이 드는 곳이지만 둥근 돔의 벽화와 실제 성인이 묻혀 계신다는 이 곳은 성 비투스 교회보다 더 교회 같고 성스러운 느낌이 든다. 

교회를 지나 드디어 프라하 성에서 가장 기다렸던 황금소로에 도착했다. 성에서 일하던 하위계층 사람들이 모여 살던 곳이어서 그런지 거대한 성과 교회에 비해 확실히 모든 게 작고 아담하다. 사람을 압도하던 높이의 교회에 비해 황금소로에 있는 모든 집들의 문은 키 큰 성인 남자가 들어서면 딱 맞을 높이이다. 문의 높이만 봐도 귀족과 평민의 차이가 확연히 드러난다. 하지만 가난한 사람이 살았던 작은 공간은  21세기 프라하에서 가장 인기 있는 지역이다. 게다가 연금술사와 금세공자들이 살았었다고 하니 우리에겐 더 마법같이 느껴진다.

이 곳에서 가장 인기 있는 곳은 프란츠 카프카가 살았다는 22번지의 파란색 집. 이제는 카프카의 책과 사진엽서 등을 살 수 있는 카프카 기념품숍이 되었다. 준수하게 생긴 청년의 엽서와, 갖가지 언어로 번역된 카프카의 책, 그리고 왠지 지적으로 보이는 이곳의 관리인. 글을 좋아했지만, 본인의 글이 출판되는 게 싫었다던 그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살았던 공간에 왔다 가는지 알고 있을까? 

22번지 이외에도 모든 집은 기념품숍으로 변모해 있다. 예쁜 인형을 팔고, 고급스러운 유리세공품이 한 집 가득 이루고 있는 곳. 아무리 상업화되었다고 해도 이곳에서 팔고 있는 모든 것들이 예쁜 건 인정할 수밖에 없다. 체스를 두다 화가 나도 말에 화풀이할 수 없을 것 같고, 책갈피 상할까 봐 책을 들고 다니지 못하는 상황이 생길 듯하다.

사람들은 옛날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아름다운 것을 찾아 프라하에 온다. 그 옛날 자신들의 생계를 위해서 황금소로에서 열심히 일했던 사람들. 그때는 팍팍했을지도 모를 것들이 지금은 예술과 문화로 남아있다. 옛날 사람들의 생계를 보며 21세기를 사는 사람들의 팍팔한 마음은 조금이나마 말랑말랑해진다. 그래서 우리는 삶을 열심히 살아야 할 필요가 있을지 모르겠다. 보잘것없는 나의 하루가 언젠가 누구에게 의미가 될 것이므로... 

황금소로에는 중세시대의 갑옷, 고문도구 등이 전시된 작은 박물관이 있었다. 가벼운 건 가벼운 대로 칼이나 창에 뚫릴 것 같아 보였고, 무거운 건 무거운 대로 입고 있는 것 자체가 곤혹스러워 보이는 갑옷이 지천에 널려 있었다. 우리가 흔히 보았던 동화책 속 공주를 구하는 기사는 사실 갑옷 안에서 땀띠와 땀냄새로 고생 좀 했을 것 같다. 프라하 구시가지에서 지나쳤던 고문박물관. 궁금하기는 하지만 돈까지 줘가면서 갖은 방법으로 사람을 괴롭힌 방법을 굳이 보고 싶지 않았는데 여기서 짧게나마 보게 되다니.. 상상만 해도 끔찍한 뾰족한 의자와 도구들. 우리나라 역사 속 다양한 고문방법을 보면서 끔찍했는데, 이곳은 더 하면 더 했지 결코 덜 하지 않다. 황금소로라는 귀여운 거리와 다소 어울리지는 않지만 그래도 볼만하다.

프라하 성의 장난감 박물관 앞에는 벌거벗은 남자의 동상이 있는데 중요한 부분이 황금색이다. 일부러 저렇게 만든 건지 저 부분만 색이 벗겨진 건지는 모르겠지만, 많은 사람들의 웃음을 자아내는 곳. 황금 부분을 만지며 웃고 있는 두 남자에게는 해당사항이 아닐 수 있지만, 제주도 돌하르방의 코처럼 만지면 임신이 된다는 속설이 있는 동상이라 임신을 기원하는 사람들은 꼭 만지고 간단다. 꽤 엄숙한 얼궁르 하고 있는데, 중요한 부분을 황금으로 드러내 놓은 것이 참 우습다. 

프라하성을 나와 내려가는 길, 어제 지나갔던 포도밭 대신 조금 불편하지만 계단을 통해 내려갔다. 계단과 프라하의 집이 만들어내는 그림과 그 사이를 손 잡고 걷고 있는 커플. 낭만이 있는 프라하와 어울리는 모습이다. 계단 때문인지 사람들이 많이 지나가지 않아 혼자 연주 중인 거리의 악사는 외로워 보였다. 거대한 벽을 등지고 가끔은 시내를 바라보며 노래하는 그녀의 목소리가 조금은 서글프게 들렸다. 오랜만에 거리의 악사 모자 안에 돈을 넣었다. 지금 내가 걷는 이 길을 더 아름답게 만들어줘 고맙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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