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실링엔 암 네카어 Esslingen am Neckar
군데군데 옛 궁전과 교회들이 많이 남아 있지만 슈투트가르트의 대부분은 화려한 현대건물로 덮여 있다. 이곳에선 우리가 흔히 기대하는 중세 유럽의 모습을 찾는 게 쉽지 않다.
카시는 슈투트가르트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이라며 '에실링겐 암 네카르'로 날 인도했다. 중앙역에서 S-Bahn을 타고 15분 거리에 위치한 가까운 곳.(역 이름도 Esslingen) 메트로에서 내려 한 블록을 지나자 눈앞에 펼쳐지는 중세시대 유럽.
에실링겐의 목조가옥과 성당, 오랜만에 다시 만난 벽돌길. 날씨 좋은 토요일. 벌써 많은 사람들이 광장과 노천 카페를 가득 매우고 있다. 노천 식당에서 무얼 먹는 다는 건 매연 때문에 딱 질색인데, 유럽에서는 그리 거부감이 들지 않는다. 유럽의 큰도시 매연도 상당할텐데, 예쁜 건물 덕에 '매연 어쩌고'하는 마음이 싹 달아난다.
갑자기 밥을 먹고 싶게 만드는 기분좋은 날씨와 아름다운 노천 카페. 아무 카페에 들어가서 뭐라도 먹자고 카시에게 말했더니 비싸서 싫단다. 여기 유럽 아이들은 한국 사람들에 비해 비싸다는 말을 굉장히 자주 하는 느낌이다. 우리는 체면을 생각해서라도 비싸다는 말을 덜하는 느낌인데, 아무튼 그런 점도 또 다르게 다가온다.
에실링겐의 중심 광장에 위치한 교회 안으로 들어가자 담백한 느낌의 교회당이 펼쳐진다. 화려하지만 화려함을 뽐내지 않는다고나 할까. 그 느낌이 참 좋다. 삼각형의 서로 다닥다닥 달라붙은 건물들이 흡사 다시 암스테르담에, 혹은 코펜하겐에 온 기분이다.
이곳 에실링겐도 햇살이 잘 드는지 높지 않은 산 전체가 포도로 덮여 있다. 포도 농장과 야트막한 공원으로 올라가는 길, 다시 한번 좋은 날씨에 감사드렸다. 올라왔던 길을 다시 되돌아 보니 아름다운 유럽이 이곳에 있다.
포도밭과 함께 높지 않은 산 위는 에실링겐 성이 위치해 있었다. 성의 입구, 새로 탄생하는 부부가 웨딩사진을 찍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야외에서 웨딩촬영하는 걸 많이 보지 못했는데 유럽에서는 정말 자주 보고 있다. 사진도 포토그래퍼가 찍어주는 게 아닌 친구들이 찍는 것 같아서 더 보기 좋다. 색소폰을 불고 있는 신부에게 감탄하는 신랑. 뭔가 그림이 바뀐 거 같아 보이지만, 신나 보인다.
빽빽히 서 있는 포도 너머로 견고하게 서 있는 건물. 땅의 색깔과 닮아 있어 포도나무와 전혀 이질감이 없어 보인다. 이름은 '에실링겐 성'이지만 성이라기 보다는 요새에 가까워 보이는 곳. 바닥만은 보수공사를 한듯 아스팔트빛이지만, 벗겨지고 때가 탄 벽, 군데군데 낀 거미줄, 걸을 때마다 삐걱거리는 나무바닥이 에실링겐 성이 견뎌온 시간을 말해준다. 올라오고 보니 성의 한 쪽 면 전체가 포도농장과 시내를 내려다 보고 있다. 이 요새 같은 곳에서 누가 살았는지는 모르지만, 참 운 좋은 사람이었겠다.
공업도시에 왔지만 포도 농장을 섭렵하고, 카시 덕분에 로컬들만 가는 공원을 열심히 다녔다. 슈투트가르트의 명물이라는 명차 박물관에도 가지 않고 조금씩 내 스타일대로 여행하는 느낌이 든다.
카시는 굉장히 친절했지만, 나중에는 내가 좋다며 하루만 더 슈투트가르트에 있다가라며 졸랐다. 미안하게도 갑자기 카시가 징그러워진 나는 서둘러 그 아이와 헤어지고 게스트하우스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