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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라 Mar 09. 2017

한여름의 호주 아웃백 여행

망각 방지용 호주 여행 기록 

브리즈번에 있을 때는 모르겠는데, 브리즈번만 벗어나면 새삼 느낀다. 이 나라가 얼마나 넓은 지를. 조금만 시내를 벗어나면 허허벌판이 펼쳐지는 호주. 브리즈번에서 6시간을 가도 아직 퀸즈랜드 주 남쪽이라는 걸 깨달았을 땐 정말 '질린다 이 나라.' 싶었다.


한국과 날씨가 반대인 호주는 12월이 한여름이다. 한여름의 크리스마스 휴가를 맞이해 2주간의 일정으로 브리즈번에서 다시 브리즈번으로 돌아오는, 호주 아웃백 캠핑 +로드트립을 떠났다. 큰 도시를 제외하고서 대중교통이란 걸 아예 찾아볼 수 없는 호주이지만, 호주 전역이 고속도로로 잘 연결되어 있어서 차를 타고 호주 전체를 몇 달씩 여행 다니는 사람들이 많다. '이런 곳에도 캠핑장이 있다니!'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곳곳에 유료 캠핑장과 무료로 캠핑할 수 있는 공유지도 널려 있다. 그야말로 운전하고 가다 지치면 텐트 치고 잠자기 딱 좋은 환경. 

광활한 대륙을 찍고 싶었는데 로드킬 당한 캥거루도 같이 찍혔다...

첫날은 아웃백 트립에 설레어 모든 길이 그저 신기하지만, 이튿날부터 슬슬 질리기 시작한다. 그도 그럴 것이 도시를 떠나는 순간부터 눈에 보이는 시골길과 호주 평야와 사막의 지평선만 끝도 없이 이어진다. 차 내부 온도는 40도를 가리키고, 몇 백 km를 달려도 별다를 것 없는 풍경이 하루 종일 지속되니 좀 힘들어진다.

호주 내륙을 달리는 기차 (정말 길다..)
SA주의 소금 호수 Hart. 더운날씨임에도 불구하고 눈밭인 줄 알았다;; (소금 호수를 처음 봐서..)

특히 사우스 오스트레일리아주에 들어서면서부터는 푹푹 찌는 날씨는 기본이고, 황량한 벌판 한가운데 오직 고속도로만 길게 뻗어 있다. 그래도 내가 상상하던 모래사막이 아니라 붉은 땅에 키 작은 나무들이 자라고 있는 Bush(아프리카,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의 미개간지 - 출처: 네이버 사전)라고 불리는 황량한 사막이 몇 시간 내내 펼쳐진다. 300km를 달려야 겨우 만날 수 있는 마을. 사실 마을이라 부르기도 민망한, 로드트립 여행자들을 위한 주유소, 편의점, 모텔이 있고, 10가구 남짓한 사람들이 살고 있는 곳이다. 예전 미국 서부 영화에서 보던 마을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모래바람과 낡아빠진 주유소 간판이 인상적이다. 황량한 사막 마을에서 우연히 흘러나오던 루이 암스트롱의 노래는 이곳과 아주 잘 어울렸다. 고속도로에서는 아예 불통이던 휴대폰은 마을에 잠깐 들르면 안테나가 선다. 심지어 데이터도 2G까지 쓸 수 있다. ^^

황량한 마을

도시를 벗어난 시골이라 물건이 좀 저렴할까 기대했지만 그 기대는 여지없이 무너진다. 물자를 공급받는 게 어려워 그런지 가격이 도시보다 비싸면 비싸지 덜 하지 않다. 최근에 본 호주 뉴스에서 쇠퇴하는 광산업에 대한 기사를 보며 호주 중부의 휑한 마을이 오버랩됐다. 그 마을에 살고 있던 10가구 남짓하던 사람들은 무얼 하며 먹고살까? 그 작은 마을의 편의점에서 일하고 있던 젊은 아이들은 이 오지에서 무얼 얻고 있을까? 세상과 동떨어진 곳에서 너무나 편안한 웃음을 짓고 있던 아이들을 보며 문득 그런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난다.

쿠퍼 페디(Coober Peddy)의 오팔 광산

호주 중부를 계속 달리다 보면 군데군데 여전히 광산이 남아있지만 모두가 휴가를 간 건지, 자원이 고갈되어 가서인지 사람을 찾아볼 수는 없다. 묘하게 외로운 느낌이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곳은 너무 날씨가 더워 지하에 마을을 이루고 사람이 살고 있다고 했다. 지하에 상점, 서점, 호텔, 교회 등이 다 있다고 하는데 진작 알았으면 한번 들렀을 텐데... 좀 아쉽다.)

첫날 만난 무지개
첫날 텐트를 치고 잤던 공터
공터에서 두번째로 잔 날. 정말 주변에 아무것도 없다
마지막으로 공터에서 잔 날. 바람이 불면 바람개비가 돌아가는 소리에 조금 겁도 났다. 아침에는 맞은편의 소농장에서 산책하는 소들이 텐트 앞까지 와 울어댔다.

대부분은 캠핑장을 이용하지만, 고속도로 옆으로 캠핑을 할 수 있는 공유지가 있다. 넓적한 그곳에 간이화장실만 덩그러니 있고, 수도꼭지에서 물은 쫄쫄 거리며 나온다.(화장실도 물도 아예 없는 곳도 있다.) 물론 씻는 건 꿈도 못 꾸지만, 밤이 되면 주변에 불빛 하나 없어서 온전히 호주 아웃백의 밤과 별의 바다를 볼 수 있다. 정말 아름답고 고요하지만 광장 공포증이란 게 이런 걸까? 이렇게 끝도 없이 땅이 뻗어있는 곳에 있어보니 건물과 사람에 둘러싸여 있을 때와는 전혀 다른 단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싸한 기운이 느껴진다. 허허벌판에 떨어져 보는 경험은 이전에도 이후로도 아마 없을 것 같다. 호주의 치안이 좋은 편이고 고속도로를 지나가는 차도 거의 없지만, 가장 가까운 마을이 100km 어떤 곳은 300km나 떨어진 곳에 있는 데다, 사막 한가운데서 휴대폰은 먹통이 되어 버리니 여러 명이 함께 하는 캠핑이라면 모를까 자신 있게 공유지에서 캠핑하라고 추천하지는 못하겠다.


하루에도 몇 번씩 마주치는 길가의 로드킬 당한 동물들. 가장 많은 건 역시나 캥거루인데,  이 녀석들은 오히려 차가 오면 반가움에(?) 도로로 달려 나온다. 친구들은 "로드킬 당한 수많은 선배들을 타산지석으로 삼지 못하는 멍청한 캥거루들"이라며 나를 웃겼다. 아웃백 여행을 하던 다른 친구는 도로에 서성이는 캥거루를 먼저 보내려고 서행 중이었는데 마침 열려 있던 뒷좌석의 창문으로 다른 캥거루가 머리를 들이밀어 엄청 놀란 적이 있다고 했다. 그런 거 보면 참 호기심 많고 순진한 동물인가 싶기도 하지만, 그러기엔 리스크가 너무 크다. 서로 타이밍이 안 맞으면 사고가 나기 딱 좋다. 도로가에 서 있는 캥거루 가족들을 보며 차가 지나가길 기다리는 건지 차에 뛰어들려는 건지를 알 수 없어 조마조마한 적이 몇 번이었던지... 캥거루 이외에도 말과 소도 가끔씩 도로를 걸어 다니고 호주에만 서식한다는 에뮤와도 도로를 공유하고 정말 자연과 함께하는 아웃백 여행이었다.

차가 지나가는 걸 끝까지 주시하며 새끼를 보호하던 엄마 혹은 아빠 에뮤

사막이라던 말답게 호주 중부는 황량함 그 자체였지만, 내가 보고 있는 곳이 도대체 어디쯤인지 끝이 있긴 한 건지... 거칠 것 없는 시야 너머로 지평선을 마음껏 볼 수 있어서 참 행복했다.


*아웃백 여행 중 들렀던 도시 이야기는 여기서 보실 수 있어요.

https://brunch.co.kr/@swimmingstar/162


* 마을과 마을 사이의 거리가 적게는 100km 많이는 400km 가까이 날 때도 있다. 여차하면 사막 한가운데서 심한 갈증을 겪거나, 차가 멈춰버릴 수도 있다는 이야기. 아웃백 여행을 하려면 충분한 기름과 물과 간단한 음식을 싣고 여행을 다니는 게 좋다. 


* 위키 캠프를 이용하면 호주 전 지역의 유/무료 캠핑 장소 정보를 찾아볼 수 있다. 

http://wikicamps.com.a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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